이혼 소송이 진행되면서 전남편은 더 잔인하게 굴기 시작했다. 매일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잠을 자기도 힘들었고 내일 눈을 다시 뜨고 싶지 않았다. 그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의미가 없고 목적을 잃었다.
전남편이 나와 관련된 모든 보험료를 미납하고 있다. 운전자보험, 생명보험, 공실이 돼버린 상가의 관리비 등등... 이런 식으로 야비해지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 사이 김경아에게 갖다 바친 돈과 시간은 얼마인데, 이렇게 야비하게 나오는구나. 희원이에게 나에게 실망을 주었다고 이야기했다는데 이건 실망이 아니라 배신이지...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고 날 찾지도 않았으면서.. 영주권까지 신청하고 신나서 난리도 아니었으면서 정말 너무 웃긴다.
그 말을 듣는 희원이는 얼마나 어이가 없고 맘이 아팠을까? 정말 너무 가식적이고 위선적으로 느껴진다.
병원에 8시 반에 도착해서 기다리다 보니 선생님이 나중에 오셨다. 간호사는 출근 전이고... 상담실에 들어가자마자 내가 너무 우울해서 어제는 죽고 싶었다. 자살충동이 생긴다는 말에 선생님은 깜짝 놀랐다. 여태까지 너무 이성적으로 잘 버티고 계시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우울해졌냐고 물으셨다. 아마도 이성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감정을 억제하고 있다가 이제 내가 할 일이 거의 끝나니 감정이 터져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너무 한심하고 억울하고 이런 지경까지 온 게 내 탓인 것만 같고 내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끝날 텐데라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선생님은 놀란 눈으로 커피를 한 모금 드시고는 한참을 쳐다보았다.
"잠은 잘 주무세요?"
"보통 3시쯤 일어났다가 이것저것 하다가 1~2시간 정도 더 자고 일어나요."
"우선 잠을 잘 주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약을 좀 바꿔보고, 항우울증제도 좀 늘려볼게요. 처음 오셨을 때의 그 단호함은 어디로 가셨어요?"
"버틴 거죠. 오기와 복수심으로... 그런데 그 새끼가 날 비난하고 내 탓이라고 비난하니까, 앞으로 어떻게 버틸지 자신도 없고 나의 잃어버린 28년이 너무 억울한 거예요."
희원이가 자신에게 대출금이 2000만 원 정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그렇게 큰 부채를 지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아빠가 용돈으로 20만 원(재산분할에는 70만 원씩 주었다고 거짓말을 했다.)밖에 주질 않으니 할 수 없이 카드빚을 지고 대출을 받아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런 이야기도 조목조목 따지고 이야기하라고 했다. 나도 재산분할을 하면서 희원이의 빚을 변제해 줄 것을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나와 통화한 그날 희원이는 용기를 내서 전남편에게 대출금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대학 다니는 내내 적당한 용돈을 주질 않아서 대출받아서 살았다고. 그런데 전남편의 대답은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네 엄마가 많이 주면 뭐라 할까 봐 그랬어. 내가 알았으면 안 그랬을 텐데”
라며 끝까지 내 탓을 하더란다.
너무 서러워서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평소의 주량보다 많이 먹었더니 바닥이 솟아오르고 몸을 가눌 수 없어서 기어서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희원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전화를 했다.
“희원아~ 희원아~”
“네.. 엄마 술 마셨어요?”
“조금 마셨어.. 엄마는 너무 억울해... 이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네 아비의 야비함 때문에 죽고만 싶어!”
“엄마 그러지 말아요. 난 아빠가 그런 이야기하던 날 빠져 죽고 싶어서 한강에 갔었어요. 한강 다리 중간에서 한참 서있는데, 내가 죽으면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할까? 엄마가 누굴 의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까 죽을 수가 없었어요! 엄마~ 우리 살아요! 그 미친년 놈들 때문에 우리가 죽으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그 년놈들이 바라는 게 우리가 사라지는 것 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 엄마도 너희에게 더 큰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 그래서 버티는데 너무 힘들다... 흑흑”
“ 엄마 이제 좀 자고 나서 내일 통화해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오른쪽 눈이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어젯밤 바닥에 쓰러지면서 멍이 든 것이다. 술도 못 먹는 내가 나에게 벌을 준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