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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미 Jun 16. 2020

<마음이 아플까봐> 병 속에 담아둔 마음

그림책으로 마음 안기

그림책으로 마음 안는 시간,


" 오늘 당신은,

당신의 하루에서

어떤 그림을 그렸나요? ”





난 솔직하지 못한 아이였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감정을 잘 숨기는 아이였던 것 같다.


누가 새 옷을 사줘도 속으론 엄청 좋아서 방방 뛰고 싶었지만 입술만 씰룩씰룩 댈 뿐 활짝 웃으면서 좋다고 표현한 적이 없었다.


의젓하고 어른스럽다는 칭찬을 자주 듣자 어른스러워야 착한 아이로 인정받는 것 같아서 더욱 그런 감정들에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어른스럽다'와 감정을 숨기는 것은 의미가 엄연히 다르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주 속마음 감추기를 잘했다.


학교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친한 친구들에게 조차 절대 속내를 보여주지 않고 혼자 끙끙 앓기만 했다.

부끄럽지만 그렇게 몰래 좋아하다 끝난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누군가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진심을 들킬까 봐 마음에도 없는 엉뚱한 이름을 둘러대기도 했다.


마냥 부끄러움이 많았던 것인지 아니면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인지 혹은 그냥 기질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감정을 숨기는 버릇은 내가 살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일단 문제 앞에서 감정을 잘 처리하지 못하고 회피하게 만드는 습관을 만들어 버렸다.


어느새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이 되었다. 제 때에 감정 처리를 못하고 마음에 쌓아두고 쌓아두고 하다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 폭발해 버려서 주변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아도 그냥 넘기고 마음이 아파도 그냥 넘기고 다음으로 넘기고 넘기고, 넘겼을 뿐인데 그것들은 고스란히 내 안에 독소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내 진심은 아마 마음이 아플까봐 지레 겁을 먹고 속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부단히도 애를 썼던 것 같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이 어려서부터 계속되면서

‘마음이 아플까봐' 그냥 딴청을 피우고 모른척하고 했던 것이다.


어른들의 세계에 속해 있는 아이들은 힘이 없다. 그래서 그런 상황들을 이겨 내려면 각자만의 방식으로 방어를 한다. 내가 택한 방어는 나를 숨기는 것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힘이 없는 어린아이였던 우리는 각자만의 방식으로 나를 지키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마음이 아플까봐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사랑하는 할아버지 곁에서 세상에 대한 가득 찬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밤하늘의 별과 바다의 신비로움을 알아가면서 세상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내는 일은 즐겁고 기쁘기만 했다. 할아버지의 빈 의자를 보기 전까지.


이제 소녀의 곁에 할아버지는 없다. 소녀는 두려웠다. 그래서 잠깐만 마음을 병 속에 넣어두기로 했다.


마음이 아플까봐
<마음이 아플까봐> 글•그림 올리버 제퍼스 / 아름다운 사람들


소녀는 마음을 빈 병에 담아 목에 걸었다. 그러자 더 이상 소녀의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이제 소녀의 마음은 아프기를 멈췄지만 소녀를 둘러싼 모든 것이 달라졌다. 호기심 가득하던 소녀의 눈에서 신비로운 세상을 발견해 나가는 힘은 사라졌다. 소녀는 더 이상 이 세상에 궁금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쩐지 마음을 담아둔 병은 무거워졌고 불편해졌다. 하지만 소녀의 마음만은 안전하니 다행이었다.


소녀는 빈병을 목에 걸고 바다로 갔다. 소녀는 바다에서 예전 소녀처럼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한 작은 아이를 만났다. 소녀는 자기가 알았던 세상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눠주고 싶었지만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소녀는 이제 마음을 빈병에서 꺼내고 싶어졌다. 마음을 꺼내서 작은 아이에게 소녀가 아는 세상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소녀는 병에서 마음을 꺼내는 방법을 몰랐다.


병을 던져도 보고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도 보고 두드려도 봤지만 병은 도무지 깨지지 않았고 뚜껑이 열리지도 않았다.


그저 통통 튀어서 데굴데굴......


소녀의 마음을 담은 빈병은 바다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빈병은 호기심 많은 작은 아이의 곁으로 굴러갔다.

호기심 많은 작은 아이는 왠지 병을 여는 방법을 아는 것만 같았다. 작은 아이는 병을 들어 병 안에 있는 마음을 톡 꺼냈다. 마침내 마음은 소녀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병은 다시 비었다.


<마음이 아플까봐> 글•그림 올리버 제퍼스 / 아름다운 사람들


소녀는 이전에 품었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앉았던 의자에 똑같이 앉아서.


소녀는 작은 아이를 만나 아픈 마음을 꺼낼 용기를 다시 가졌다. 혼자 힘으로 애를 썼지만 결국 작은 아이의 힘을 빌려 마음을 되찾았다. 마음을 병에 담는 방법까지는 알았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리는 방법을 몰랐던 소녀는 결국 작은 아이의 도움을 받는다.


마음이 아플까봐 병 속에 안전하게 마음을 담아 두고 보관하고 있다가 마음이 필요할 때 자유자재로 꺼내는 일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가끔 느끼는 인생의 꿀맛 같은 포인트들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삭막해진다.


소녀에겐 다행히 작은 아이가 있었다. 나도 돌이켜 보면 속마음을  감추려고 그토록 애를 썼지만 내가 신뢰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끊임없이 했다. 여기 아픈 마음이 있으니 꺼내어 보여주면서 어서 나를 안아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냥 단지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속마음을 감추고 끙끙 댈 때는 무거웠던 문제들을 그들에게 던지면 생각보다 가벼워져서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마음을 그렇게 숨기는 사람이 아니다. 어떨 때는 너무 솔직하게 감정을 보이고 어리광을 부려서  한 친구가 나에게 우스갯소리로  '너는 어떻게 유아기로 다시 퇴화하고 있는 것 같다?'라는 말을 한 적 이 있다.

그 말이 싫지만은 않았던 것은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보이고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 어느 정도 편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픈 마음을 꺼낼 용기가 없다면 나의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 나의 손을 잡고 또 누군가 그의 손을 잡아주면서 조금씩 서로를 보듬어 주는 시간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인생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시간은 찰나이지만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었던 온기는 따뜻하게 계속해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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