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웬 Jul 28. 2022

월요병이 없는 직업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인 자영업자의 대오각성

SNS에 출근하기 싫다는 글이 유독 많이 올라오는 날이 있다. 볼 것도 없이 월요일이라는 얘기다. 그런 글을 볼 때마다 '배부른 소리 하고 자빠졌네'라는 생각만 든다. 불타는 금요일이 어쩌고 저쩌고 술판을 달리고 자랑 가득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주말 내내 쉬고 놀 때는 언제고 다시 출근하라니 싫다고? 적어도 내 기준에선 아주 배부른 투정을 하고 있는 거다.


매일 똑같이 일하는 내가 요일을 구분하는 방법은 일반인과 많이 다르다. 냉장식품이 들어오지 않는 날은 월요일이고 비식품 상품이 들어오는 날은 화요일이며 스낵과 쿠키가 쏟아져 들어오는 날은 수요일이다. 입고되는 상품이 현저히 줄어드는 날은 목요일이고 평소 보지 못했던 신상품이 쏟아져 들어오면 금요일이다. 이틀 치 물량이 한꺼번에 들어와 이 정도면 물건 나르다가 과로사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날은 토요일이고 배송 상품에 치이지는 않지만 새벽 내내 취객들이 좀비처럼 쏘다니는 날은 일요일이다.(모든 것은 새벽 기준임)


이 모든 것이 일주일 단위로 계속 반복되다 보면 날짜의 흐름에도 무감각해진다. 회계사무소에서 업무 관련 서류를 요청하는 문자가 오면 15일이 되었구나 싶고 어느 날 느닷없이 다음 달 행사 홍보물들과 상가 관리비 영수증이 날아오면 벌써 한 달이 흘러 월말이 되었구나 싶은 생각에 서글픔이 한없이 밀려온다.


문제는 이런 쳇바퀴 인생이 매일 시간대별로도 적용이 된다는 점이다. 새 하루를 열고 그날 할 일을 다 마칠 즈음인 새벽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인근 해장국집 사장님이 레종 블랙 담배를 사러 오시고 6시면 바로 옆 건물 헬스장 사장님이 레쓰비 캔커피를 들고 카운터로 오신다. 6시 15분에는 바리스타 커피와 던힐 6mg 담배를 사는 직장인이 오고 7시에는 상가 지하 식당에서 일하시는 이모가 생수와 단백질 음료를 구매하신다.


이모님이 문을 나서는 순간 본사 프로그램에 접속을 해서 상품 발주에 들어가고 그 주의 신상품과 빵 발주를 마칠 무렵인 7시 20분에는 길 건너 상가 목욕탕 사장님께서 모닝 음주를 위해 소주와 함께 담배 한 갑을 구매하시고 10분 뒤에는 신상품 킬러인 다소곳한 외모의 여성 고객 한 분이 당일 입고된 신상품 음료를 귀신같이 찾아내서 카운터로 온다. 


발주 화면이 음료 냉장고 쪽 매대로 옮겨갈 즈음인 8시에는 근처 횟집 사장님이 담배와 함께 아이스티 두 개를 구매하시고 9시가 되면 주변 커피 전문점 아르바이트 생이 바나나를 구매하러 온다. 상품 발주를 마치고 누락된 상품이 있는지 확인하는 9시 40분쯤에는 바로 옆 휴대폰 매장 직원이 전날 휴대폰 개통을 했던 고객들에게 보낼 사은품을 발송하기 위해 택배 접수를 하러 온다.


발주 마감 시간인 9시 50분쯤에는 뒷건물 경비 아저씨가 500ml 콜라 3개와 즉석 밥 하나들 들고 와서 늦은 아침 식사 준비를 하시고 발주 마감과 함께 나는 새벽에 판매된 상품들의 보충 진열을 하며 전체적으로 점포 전체를 체크하고 시식대 정리 및 쓰레기통 비우기를 끝낸 후 치킨 기계와 커피 머신 세척을 한다. 


모든 일과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 때쯤인 오전 11시에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기 위해 점포 밖으로 나가면 어김없이 그 시간에 출근하는 4층 피아노 학원 원장님과 마주치고 30분쯤 후 매일 그 시간대에만 오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 고객이 샐러드를 결제하고 시식대에 앉을 무렵이면 저 멀리서 아내가 짧은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걸어오는 게 보인다.


이렇게 하루하루 복사해서 붙여놓은 듯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자주 벌어진다. 한 번은 그전날 오신 것을 당일로 착각하고 헬스장 사장님께 좀 전에 오셨으면서 왜 또 오셨냐고 물었던 적도 있고 반대로 오늘은 왜 캔커피를 안 사시냐고 물었다가 10분 전에 왔다간 거 기억나지 않냐는 소리를 들었던 적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사람이 거의 동일한 물건만 구매하다 보니 그게 어제인지 오늘인지 헷갈려서 발생한 일이다.


사실 처음 얼마 동안은 반복되는 일상에 적응이 되지 않아 너무 힘들었다. 중간중간 스쳐 지나가듯 다녀가는 뜨내기 손님들의 점포 방문이라는 변수가 없었다면 아마 정신병에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정도로 심각한 마음의 병을 앓게 되니 그 화살은 오롯이 단골고객님들을 향해 날아갔고 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원망 가득한 마음에 이기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저기.... 오시는 시간을 조금만 달리 해주신다면....' 

'매일 같은 거 사지 말고 다른 거 좀 사주시면 안 될까요?'


이런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19 사태라는 사상 유례없는 위기를 통해서였다. 새벽 내내 홀로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방문하는 고객의 수가 정확히 절반으로 떨어져 나를 괴롭히던 취객과 진상 고객마저 그리워질 정도가 되니 매일 찾아오시는 단골 고객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그분들도 각자만의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것일 뿐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고 넓게 보자면 그분들 또한 나와 똑같은 쳇바퀴 인생을 살고 있다는 단순한 깨달음을 얻으니 그동안 내 주위를 감싸고 있던 숨 막힐 듯한 고통이 사라지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여전히 나는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다만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의 쳇바퀴 인생이 행여 멈추면 넘어지기라도 할까 두려워 쉬지 않고 달리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바빴던 것에 비해 지금은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쉬엄쉬엄 즐기며 달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불교의 사상,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을 좋아한다. 날이 밝으면 또다시 어제와 같은 날의 반복이겠지만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려 마음을 다잡아 본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헬스장 사장님은 여지없이 캔커피를 들고 오신다. 돌고 도는 쳇바퀴 인생 속에서도 여유를 가지니 가끔은 실없는 농담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사장님, 6시 땡~!! 하고 오셨어야 하는데 오늘 7분 지각하셨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J가 내게 준 작은 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