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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an 02. 2023

함께 있어 좋은 사람

한 해의 마지막 날 '꽃을 든 남자'가 된 사연

여유가 생길 때마다 브런치를 돌며 곳곳에 숨어 있는 좋은 글 찾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2023년 새해가 밝기까지 이틀 앞둔 12월 30일에도 그랬다.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하고 아침 발주를 하기까지 시간이 남았던 나는 여느 때처럼 브런치 여행을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글이 있으면 읽어 보고 거기에 달린 댓글들을 읽고 댓글 속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분의 글도 읽어 보고.


그 과정을 반복하던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문장 하나를 읽었다. 짧은 기간 너무 많은 글을 읽어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반려묘와 남편을 몇 개월 차이로 거의 동시에 잃었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해 보일 수도 있는 문장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문장 한 줄이 나를 이끌었고 그렇게 그분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매거진 하나에 담긴 82개의 글, 한 편당 2분 정도만 잡아도 3시간 가까이 걸릴 정도의 짧지 않은 분량이었다. 한창 책에 빠져 살던 시절이었다면 우습게 읽고도 남았을 텐데 해야 할 업무에 노안까지 겹친 지금의 나로서는 선뜻 도전하기가 두려웠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상 중도에 그만두고 나올 수는 없고 그렇다고 3시간 동안 거기에 묶여 있기에는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은 상황에서 갈등하던 나는 결국 일단 읽어볼 수 있을 때까지는 읽기로 했다. 


글은 기대 이상이었다. 적나라하다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시종일관 차분함을 잃지 않는 작가의 글솜씨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을 읽었다.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갑작스럽게 아들을 잃을 처지에 놓인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그 과정 중에서 발생하는 시어머니와의 갈등, 어쩔 수 없이 아들의 병간호를 자처하게 된 시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까지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읽는 동안 내 눈은 자연스럽게 흐려져갔다. 차라리 눈물이라도 펑펑 쏟았으면 좋으련만 정제된 언어와 절제된 표현은 그마저도 못하게 내 눈물샘을 막았고 글을 읽는 내내 잔뜩 찌푸린 늦가을 새벽 날씨처럼 내 눈앞에는 안개와 구름이 가득했다.


비록 목표로 했던 당일에 논스톱으로 다 읽기에는 실패했지만 그날 읽었던 약 60여 편의 글은 퇴근 이후까지 진한 여운을 남겼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지만 늦은 아침까지 방에서 곤히 잠든 아내를 보자 새벽에 읽었던 문장 하나하나가 수시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사람,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인 사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다시 옷을 챙겨 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어딜 그리 급히 가냐는 아내의 물음에 음악감상하러 나간다는 핑계를 대고 서둘러 헤드폰을 머리에 끼고 집을 나섰다. 현관 거울 앞에 비친 내 모습이 흡사 스타워즈에 나오는 '마스터 요다'처럼 보여 흠칫 놀란 것도 잠시, 집을 나선 나는 그 길로 곧장 꽃집으로 향했다. 


"자녀 분이 졸업했나요? 생일이에요? 어떤 꽃을 찾으시는데요?"

조금은 수다스러운 꽃집 사장님의 연이은 질문 공세에 짤막하게 대답을 했다.

"그냥요. 그냥 집사람한테 주고 싶어서."

내일 아침 반찬이 달라질 거라느니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로맨티시스트라느니 하는 여사장의 말을 뒤로하고 오는 길에 빵집에 들러 딸아이에게 줄 작은 케이크 하나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여는 순간 "어??"라는 외마디와 함께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내를 보는 순간 한눈에 알았다. 그게 무덤덤하기로는 웬만한 경상도 남자 저리 가라인 아내가 드러낼 수 있는 기쁨의 표현 최대치라는 것을. 어리둥절해하는 두 여자가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생색 내기 전문가인 사람이니 왜 샀는지 스토리를 들려주면 더 감동스러웠지 않겠냐는 페친의 말에도 차라리 모르는 편이 더 낫겠다고 말했던 나였다. 그 꽃을 사려고 마음먹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슬픈데 굳이 그걸 알려서 아내에게 아픔을 전하고 싶지는 않았다.


짧은 파티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언제 감동을 받았냐는 듯 다시 리모컨을 손에 쥐고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제대로 보지도 않는 TV 삼매경에 빠졌다. 해줘도 먹지 않았겠지만(육식을 좋아하지 않음) 고기반찬은 없었고 저녁상의 반찬이 달라지는 기적 또한 없었다. 그래도 아내가 건강한 모습으로 내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고 한 해의 마지막을 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여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잖아. 나는 그 작가님처럼 그렇게 버틸 능력이 없어. 언제까지나 당신 곁에 로맨티시스트로 남을 테니 당신은 지금처럼 분위기 깨는 테러리스트가 되어도 좋으니 항상 내 옆에 있어줘.' 

끝내 꺼내지 못한 이 말 한마디가 여전히 입 속에서 맴돌고 있다. 눈치 없는 아내가 이 마음을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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