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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Dec 06. 2021

회 먹으러 갔다가 땅콩만 먹고 오지요

회만 보면 헛구역질을 하는 여자

"우짜꼬....애미는 뭐하고 밥을 무야 되겠노."

"그라지 말고 애비 니가 나가서 닭 한 마리 튀겨 온나. 여기 사장한테는 내가 말하꾸마."

"동서, 메뉴판 보고 먹을 수 있는 거 아무 거나 골라서 먹어."

"그래요, 제수씨. 비용 신경 쓰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거 드세요."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가족 모임 자체가 힘들지만 한 번씩 온 가족이 모여 외식이라도 할 때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곤 했다. 육식을 전혀 못하시는 어머니 때문에 외식이라고 해봤자 늘 한정식 아니면 횟집이 대부분이었던 우리 가족이 횟집을 갈 때면 늘 벌어지는 진풍경이었다.


"아니에요. 저 그냥 기본 반찬이랑 먹으면 돼요. 신경 쓰지 마세요." 아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오랜만에 만나는 분들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그와 달리 그 모습에 익숙한 나는 회 킬러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아내야 땅콩을 집어 먹든 기본 반찬에 밥을 비벼 먹든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내 입에 털어 넣기 바쁘다.


그럴 때면 식구들의 따가운 눈총이 이어진다.

"니는 우째 니밖에 모르노? 니 댁 니가 안 챙기면 누가 챙기노?"

"도련님 결혼하시면 안 그러실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그냥 두세요. 못 먹는 걸 어떡합니까? 정 그렇게 마음에 걸리시면 나중에 나오는 매운탕 미리 해달라고 하면 됩니다. 이 사람, 국물은 떠먹으니까 그렇게 하면 되고 나머지는 제가 집에 가서 양계장을 폭파시키든 닭집을 털든 해서 먹일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드세요."



아내와 내가 입맛이 다른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회와 닭일 따름이지 세부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도무지 일치하는 것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극과 극을 달린다. 세월이 흘러 딸까지 생긴 마당에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리 가족은 그 어떤 식당에 들어가더라도 누군가 한 명은 반드시 피해를 입게 되는 희한한 가족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어디 여행을 갈 때면 나는 비상이 걸린다. 계획을 짜거나 정보를 취합하는 쪽으로는 아예 담을 쌓고 사는 여자를 만난 죄로 출발에서 종료까지의 전 과정을 준비해야 하는 내게 삼시 세 끼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중에서도 3년 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가 백미 중의 백미였다. 다른 사람들은 먹방을 찍으러 간다며 식비에만 몇만 엔을 쓰고 왔네 어쩌네 그러지만 우리는 4박 5일 내내 컵라면, 햄버거, 삼각김밥만 먹고 다녔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인간이 바다 건너가서까지 패스트푸드를 못 벗어나다니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스시를 먹으러 가자니 아내가 못 먹고 그렇다고 닭을 먹으러 가자니 내가 못 먹고 아내와 내가 어느 정도 조율을 해서 일본 가정식 백반을 먹으려고 했더니 식당 내에 자욱한 담배 연기가 싫다고 딸아이가 떼를 쓰고 그때만 생각하면 정말....... 몇 달에 걸쳐 맛집이란 맛집을 검색하고 구글맵에 저장을 해둔 내가 한심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제대로 된 식당 한 번 못 가고 늘 열차 내에서 맥모닝과 김밥 한 줄로 흑흑    사진출처 : 본인 아이폰


마지막 날 겨우 의견 일치를 본 히메지 맨매 우동, 히메지 가실 분들에게 강추합니다. 국물이 끝내줘요 사진 출처 : 본인 아이폰



여전히 우리 집은 먹거리에 있어서만큼은 평행선을 달린다. 딸아이가 태어나면 조금 나아질 줄 알았는데 평행선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아내와 나는 조개와 게, 새우 같은 어패류, 갑각류를 좋아하는데 이 아이는 그 냄새가 너무 싫다고 기겁을 한다. 그나마 우리 부부가 먹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메뉴가 사라지게 된 거다.


이 외에도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탕수육을 먹을 때도 '부먹파'와 '찍먹파'로 나눠지고 라면을 끓일 때도 누군가는 건더기 수프가 필수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건더기 수프를 절대 넣지 말아야 한다. 밥도 흑미밥, 백미밥, 잡곡밥으로 고르게 나눠져 있고 만두도 군만두와 찐만두, 만둣국으로 양보 없는 기세 싸움이 이어진다. 쓰다 보면 이 주제만으로 책 한 권은 거뜬히 만들어낼 정도다.


누군가   양보를 하지 않는 이상 먹거리 앞에서 항상 이어지는  다툼의 끝장을 봐야  텐데 그게 언제쯤 일지 모르겠다. 솔직히 이젠 걱정이 된다.  훗날 사위될 사람이 나타나서    먹는다고  것인지 두려운 생각까지 든다. "아버님,  야채를 싫어합니다." 만약 이러기라도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남의  귀한 아들 입을 쥐어박을 수도 는 노릇이고 고민만 늘어간다.


아무거나 잘 먹는 사람들, 그런 가족들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이전 편 <닭 먹으러 갔다가 무만 먹고 오지요>를 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길 바란다.

https://brunch.co.kr/@arwen/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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