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마셔댄다는 것이 포인트다
수도권 2.5단계가 심각한 상황이긴 하다. 누군가 병에 걸려 나가지 않으면 재택 근무 안 할 것 같던 회사에서도 마지못해 재택을 시행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재택 근무는 쾌적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집에서 차를 마시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고, 업무를 하면서도 틈틈이 몇 가지 차를 우려 마시면서 기분 좋게 일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일단 일어나자마자 아침 식사를 하면서 홍차를 곁들일 수 있다. 보통 때는 출근 시간에 맞추어야 하니까 대강 먹고 일어설 수밖에 없는데 - 커피는 회사에 가서 마신다 - 출근 시간이 없어지니 차를 우릴 여유도 생긴 것이다.
요즘은 출퇴근 시간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느끼는 중인데, 이러니 직주근접과 도심, 그 중에서도 강남이 인기 폭발일 수밖에 없다.
아침에 가장 많이 고르는 것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와 아쌈 계열의 차. 많이 마시는 건 해로즈 아쌈과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포트넘 앤 메이슨의 로열 블렌드. 하니앤손스의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지만 최근에는 날씨가 워낙 흐리고 칙칙해서 정산 소종을 아침부터 마시기도 했다.
아침이니까 위를 보호하기 위해 우유도 조금 넣거나, 아예 밀크티로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참고글: 설거지가 싫을 때, 밀크티 레시피)
점심을 먹고 나서는 소화도 시킬 겸 애프터눈 블렌드나 실론(스리랑카)차, 혹은 얼 그레이를 마신다. 아침의 강하고 진한 홍차에 비해서 오후에는 좀더 향긋하고 목넘김이 부드러운 차를 마시는 것이 낫다. 점심을 먹고 나서의 가벼운 식곤증을 깨우기에도 좋고, 점점 딸리기 시작하는 에너지를 올리는 데도 그만이다.
항상 차만 마시는 것은 아니므로 오후에는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은데, 카페인에 약한 경우에는 오후 커피보다는 오후의 차를 권하는 편이다.
g당 카페인을 따지면 커피보다 차가 더 함량이 높다고 하지만, 한 잔에 들어가는 차와 커피의 양은 4~5배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한 잔의 카페인으로만 보면 커피가 더 높은 경우가 많다.
물론 차의 종류, 커피의 종류와 내리는 법에 따라 차이가 나기도 하므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4시 즈음은 영국인들이라면 애프터눈 티타임을 갖는 시간이다. 요새야 꼭 이 시간을 지켜서 차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말이다. 회사에서라면 이미 충분히 마셨다 싶어서 차를 더 우릴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만, 집에서 근무하다 보니 자꾸 향긋한 차들이 눈에 밟히는 것이다. 요즘은 집에 돌아다니고 있는 다소 오래된 가향차를 처리하는 시간으로 하고 있다.
「 애프터눈티를 마시려고 떼어 놓은 시간만큼 행복한 건 없지요. 」 - '오늘은 홍차' 中 타샤 튜더
회사 인사팀이 이 브런치를 알면 안되겠는데
재택 근무의 환상적인 점은 퇴근하자마자 바로 귀가인 것이다. 이른(?) 귀가를 기뻐하며 또 차를 한 잔 마셔 보는데, 오후이긴 해도 이미 꽤 늦었기에 주로 루이보스나 허브 인퓨전을 선택한다. 참고로, 루이보스는 '붉은 덤불'이라는 뜻의 남아프리카 원산 식물이고, 그러므로 루이보스티는 '차'가 아니다.
(참고글: 엄마의 유자차는 차가 아니에요)
집-회사만 오가거나 그나마 재택일 때는 집에만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코로나 집콕 시대에, 여러 다양한 차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위안을 준다. 그러나 저쯤 되면 화장실을 어마어마하게 가게 되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