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차는 언제 마셔도 좋지만 말입니다
요즘 부쩍 날이 선선해졌다. 여름에는 더위때문에 아이스 티를 많이 찾지만, 사실 차는 따뜻하게 마셔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요즘의 선선한 공기가 반갑다. 맑은 하늘에 시원한 공기를 마시다 보면 오늘은 어떤 차를 마시면 좋을지 절로 고민하게 된다.
사실 맛있는 차는 언제 마셔도 맛있지만, 계절에 좀더 잘 어울리는 차가 있기 마련이고, 차도 식물이라 계절에 잘 맞는 과일이나 꽃과 블렌딩되면 날씨와의 밸런스가 좋다. 이 글에서는 지금 시즌, 초가을에 마시면 기분 좋은 차를 추천해 보고자 한다.
떼오도르 THEODOR, 밀키 우롱 Milky Oolong
프랑스 브랜드인 "떼오도르"는 아마도 "황금의(D'Or) 차"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테오도르'라는 이름으로도 읽힐 수 있겠지만 - 근데 창립자 이름은 기욤인데? - 보통 알려진 의미는 'The Ô Dor'에 가깝다.
가향차 중심의 브랜드인데, 역시 향수의 나라 프랑스에서 만든 브랜드라 그런지 향을 기가 막히게 뽑아낸다. 국내에서는 한남동에 매장이 두 곳 있었는데, 지금은 구호 매장 1층에 있던 컨셉스토어는 없어졌고 본점 하나만 운영하는 듯 하다.
다양한 베이스의 차가 있지만 그 중에도 '밀키 우롱'이 매우 마실 만 하다. 우롱차인데도 불구하고 달콤한 우유향이 나는 것으로 유명한 '밀키 우롱'은 사실 브랜드마다 품질 차이가 꽤 나는 편이다. '떼오도르'의 밀키 우롱은 포근한 연유 향이 나면서도 순해서 몇 번이고 우려 마셔도 질리지 않는 차이다.
T2, 멜번 브랙퍼스트 Melbourne Breakfast
호주도 영연방 국가 중 하나라 홍차를 오래 전부터 마셔 온 곳이고, 게다가 커피 문화가 매우 발달한 곳이기 때문에 차의 품질도 좋은 편이다. T2는 호주의 차 브랜드인데, 요즘 꽤 인기를 얻고 있는 중이다. 깔끔한 패키지 디자인과 호주 차라는 독특함때문에 호기심을 가졌고, 꽤 여러 종류를 마셔 보았다.
전체적인 인상은 강하지 않고 순한 차들이 많고, 그 중에서도 '멜번 브랙퍼스트'는 매우 추천할 만한 맛있는 차다. 일단 뜯는 순간 확 풍겨오는 바닐라 향이 매우 향긋한데, 얼핏 맡으면 초콜릿 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달콤하면서도 코 끝에 달라붙지 않는 깔끔함이 있어서 차를 마시는 내내 기분이 좋아진다.
과연 호주의 대표적인 도시인 '멜번'의 이름을 붙일 만하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리시 브랙퍼스트는 그다지 특히 따뜻한 향과 분위기 때문에 가을에 매우 잘 어울린다.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 앞에서 마시고 싶어지는 훌륭한 차 :)
카렐 차펙Karel Chapek, 로얄 애플Royal Apple
가을은 과일이 많이 나오는 계절이지만, 그 중에서도 귤과 사과를 빼놓을 수 없다. 귤은 시트러스 계열이라 가향차가 워낙 많기도 한데,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것은 사과 가향이다. 청포도나 머스캣은 여름에 잘 어울리지만 기본적인 사과향, 혹은 구운 사과향은 역시 가을에 잘 맞는다 싶다.
카렐 차펙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대표인 야마다 우타코의 귀여운 일러스트로 유명한 브랜드인데, 대표가 직접 쓴 홍차 책 《홍차의 시간》도 꽤 유명하다. 그러나 차 자체만으로 따지자면 전체적으로 밋밋한 편이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많아서 제품에 따라 선호도 차이가 큰 편인데, '로얄 애플'은 기대 이상으로 향긋한 사과향이 물씬 풍기는 차이다.
사과 가향차로 유명한 '포숑'의 애플티보다 이 쪽이 좀더 깔끔하고 개운하게 마실 수 있었다. (제일 선호하는 사과향 차는 티 게슈벤트너의 '구운 사과'이긴 하지만) 그다지 떫지도 않고, 마지막 한 모금까지 기분 좋은 사과향이 느껴져서 핫티, 아이스티 둘 다 잘 어울리는 차이다. 이 차를 마실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빨간머리앤》 에서 앤이 지나가던 사과나무 길, 그리고 아삭거리며 베어먹던 빨간 사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