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불에 타 죽을 것이다. (4월 21일, 친강 중국 외교부장)"
"윤 대통령 발언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으며 엄중한 우려와 강한 불만을 표시한다. (4월 23일,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인 자신의 일이다. (4월 20일,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
"불장난하면 불에 타 죽는다"고 발언한 친강 중국 외교부장. 사진은 글 내용과 무관한 기자회견장에서의 사진. 신화사 캡처. 연합뉴스
중국이 연일 한국을 향해 날선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 19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대만 문제 발언 때문인데요.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중국과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고 남북한 간의 문제처럼 역내를 넘어서서 전세계적인 문제다."
얼핏 평범해보이는 이 두 문장인데, 중국은 왜 이렇게 날카롭게 반응하는 걸까요? 일단 첫 문장인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는 유엔이 일관되게 견지하는 국제 원칙이긴 하지만, 중국 입장에선 맥락에 따라 달리 들리는 문장입니다. 서방 지도자들이 주로 중국이나 러시아를 겨냥할 때 자주 써온 관용구 표현이거든요. 가령, 2015년도 미·일 정상이 중국을 겨냥한 공동성명을 발표할 때도, 지난해 쿼드(Quad : 미국·호주·인도·일본의 안보대화체) 정상들이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공동성명을 낼 때도, 각국 정상은 이 표현ㅡ'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ㅡ를 썼는데, 그 때도 중국은 발끈했습니다. 이 표현 어디에도 '중국'이라는 단어는 없는데도, 중국은 맥락상 각국 정상들이 중국의 패권 확장 시도에 견제구를 날렸다고 여겼거든요.
사실 이 문장보다 중국이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두 번째 문장인 대만 언급입니다. 중국이 대만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건 사실 처음이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 당시인 2021년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의 평화'가 처음 언급됐는데, 그 때도 중국은 "불장난하지 말라"며 발끈했습니다. 이 문제의 '불장난' 발언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1년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처음으로 회담할 때도 똑같이 나왔습니다. "(대만으로 중국을 제압하려는) 추세는 극히 위험하다. 불장난을 하다 타 죽을 것이다." 이게 시진핑 주석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한 말입니다. 참 살벌하죠?
2021년 11월 미중 화상 정상회담때 손 흔드는 두 정상. 둘은 저렇게 웃은 후에 "불장난" 같은 살벌한 이야기를 나눴다. 베이징 신화=연합뉴스.
이처럼 중국이 대만 언급에 민감한 이유는, 중국에게 있어 대만 문제ㅡ통상적으로는 '양안 문제'라고 부르지만, 여기서는 중국의 관점에서 '대만 문제'라고 하겠습니다ㅡ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 핵심이자 넘어서는 안되는 중국의 첫 번째 레드라인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역사적으로도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게 중국의 입장입니다. 이런 인식은 지난 24일 주한중국대사관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입장문에서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1335년에 중국 중앙 정부인 원나라가 대만에 정식으로 행정기관을 설치해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1895년,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 정부로 하여금 대만과 펑후(澎湖)열도를 할양하도록 강요했습니다. 1943년 중∙미∙영 3국 정부는 ‘카이로 선언’을 발표해 대만과 펑후 열도를 중국으로 반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1945년 7월 중∙미∙영은 ‘포츠담 선언’에 서명하고 ‘카이로 선언의 요구 조건들이 반드시 이행될 것임’을 재천명했습니다. 같은 해 8월 일본은 포츠담 선언의 수용과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했으며, 대만은 그해 10월에 광복되어 중국의 판도에 다시 편입되었습니다. (지난 24일, 주한중국대사관 대변인)"
이처럼 역사적 이유만으로 중국이 대만 통일의 입장을 견지하는 건 아닙니다. 대만은 동아시아의 중요한 해상교통로로서 세계 해상무역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남중국해에 있습니다. 게다가 대만은 남중국해뿐만 아니라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이기도 하죠. 따라서 중국으로선 대만이 중화질서 재건의 기틀을 마련하는 정치, 경제의 요충지이자 중국대륙의 시장과 홍콩의 금융, 대만의 무역자본과 기술을 잇게 되는 대중화경제권의 완성을 의미하는 존재입니다. 자칫 대만해협이 미국의 전략거점이 될까봐 우려할 수밖에 없는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죠. 중국으로선 대만 문제가 그 어떤 국가적 과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적으로나 군사적·경제적으로나 큰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게다가 중국은 대만이 여전히 통일되지 못하고 이 문제가 장기화된 데는 미국의 직접적 개입 때문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중국이 이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만의 생각은 다릅니다. 한국의 총리실에 해당하는 대만 행정원이 게재한 '중화민국(대만) 건국'의 이야기를 한 번 볼까요? 핵심 내용만 간추려보자면 이렇습니다.
"1911년 12월 난징(南京)에서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쑨원(孫文)을 임시 주석으로 선출했다. 중화민국이 선포되었고 주권은 모든 공민에게 귀속되었으며 아시아 최초의 민주공화국이었다."
"중앙정부는 충칭으로 수도를 옮기고,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중화민국, 미국, 영국, 소련이 동맹을 맺어 나란히 싸우게 되었고, 1934년 8월 마침내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 결과 국제적 위상이 높아져 (대만은) 유엔의 창립이사국이자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중화민국 35년(1946년)에 중화민국 헌법 채택 후 중화민국(대만) 초대 대통령으로 장제스를 선출했다. 같은 시기에 국군과 중국공산당 사이에 전면전이 일어났고, 연이은 전쟁 패배로 인해 중앙 정부(대만)는 본토 지방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고 1949년 12월 타이베이로 옮겨갔다."
"중화민국(대만)의 관할권은 대만, 펑후, 진먼, 마추, 동사군도, 난사군도 등 지역으로 크게 축소됐다. 중국공산당은 그해 10월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언하고 대만해협을 가로질러 분단과 통치라는 장기적인 정치적 현상을 형성했다. (대만 행정원)"
보시다시피, 대만의 입장에서는 원래 중국의 본토도 중화민국, 즉 자신들의 땅이었지만 1946년 시작된 국공내전의 패배로 그 통제권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파는 국제사회에서의 입지가 축소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당초 대만은 유엔의 창립이사국이었지만,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국가로 인정됨에 따라 유엔에서 퇴출당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서울 명동에 있는 주한중국대사관도 원래 8·15 광복 후부터 중화민국(대만) 대사관이었지만, 유엔에서 퇴출된 직후부터 중화인민공화국에 넘겨줘야 했지요. 이후 대만은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들과 줄줄이 단교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국이 미국,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과 수교를 하면서 '대만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필수 조건으로 요구했고 상대국들이 대부분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만은, 중국을 발끈하게 한 윤 대통령의 발언이 반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대만 외교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 공식적으로 환영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것도 윤 대통령의 인터뷰가 공개된 4월 19일 당일에 자신들의 입장이 담긴 글을 게시하면서요. 대만 외교부는 윤 대통령의 발언에 "진심으로 환영한다"면서 한국이 자신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국가이자, 인도·태평양 지역 민주 진영의 중요한 구성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만해협과 한반도,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번영을 함께 수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중국을 겨냥해 권위주의 국가들이 공개적으로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시기에, 자신들은 뜻을 같이 하는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도 했습니다. 대만이 윤 대통령의 발언에 쌍수들고 공개적인 지지와 환영 의사를 밝힌 것이죠.
대만 외교부가 4월 19일 게재한 환영의 글 일부. 윤 대통령 발언에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대만 외교부 홈페이지 참고.
게다가 대만 외교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5월 이후부터 한국 정부가 국제행사에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것도, 윤석열 정부 시절인 지난해 8월 중국이 대만 주변에서 군사훈련을 벌였을 때 한국 정부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한 것도, 모두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즉 대만을 무력으로라도 통일시키려고 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중국의 무력시위에 제동을 걸려고 나서는 모습으로 본 것입니다. 이 시각은 대만의 시각이나, 중국의 시각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니 이번 윤 대통령의 발언뿐 아니라 최근 2년 내 한국 정부의 '대만해협의 평화' 입장 표명에, 대만은 내심 반갑고 중국은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대만은 자국의 안보와 국익 수호에 한국이 편을 든다고 생각하고, 중국은 자국의 내정 문제에 한국이 간섭을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 참고 : 대만 행정원 홈페이지 https://www.ey.gov.tw/state/62879155A536D543/bf75db05-30af-4c3a-bdda-3fe32e3f8e5a
대만 외교부 홈페이지 https://www.mofa.gov.tw/News_Content.aspx?n=95&s=100149
문성진,「미중관계와 대만문제의 상호작용 연구」, 2011.
허원순,「대만은 국가다」, 한국경제, 2019/6/10.
※ 사진 참고 :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하는 모습. 신화사 캡처. 연합뉴스. 2023/3/7.
화상 회담서 손 흔들며 인사하는 미중 정상. 베이징 신화 = 연합뉴스. 2021/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