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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호레 Jul 16. 2021

회피형 사람의 연애

친절하지만 어딘가 불편한 사람을 조심할 것

멋없는 나는 오늘도 오빠에게 묻는다. 왜 나를 사랑하느냐고.



그는 답한다.

응? 그냥 예뻐서.



 참 허무맹랑한 답변이었다. 뭐든지 팩트와 근거를 들어야만 하고, 심지어 대조군까지 들어 상대방을 이해시켜야만 하는 그가 내 질문에는 매번 이런 시시한 답변을 내놓곤 했다.

 아니, 그럼 내가 살이 찌거나 못생겨지면 사랑하지 않겠다는 거야? 라며 예쁨을 강요하는 거라고 짜증이 났다. 내가 예쁘다는 말에 동감하지 못해서 섭섭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예쁘다는 말은 세상에서 너를 가장 아끼고 있다는 말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아무런 조건 없이 널 좋아한다고.      

  

 그는 있는 힘껏 나를 이뻐해 준다. 한순간도 자기의 시선에서 나를 놓치지 않는다. 가끔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도 있다. 그토록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 나를 이유 없이 사랑해준다. 오빠 주위의 사람들에게 나를 어떻게 소개하는지 모르겠으나, 입을 모아 나를 놓치지 말라고 한다고 한다. 오빠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따뜻하길래 돌아오는 말들이 이리도 다정할까.         




어느 비 온 뒤 봄날의 분위기, 너무 좋다




 그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사랑을 못 되돌려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없이 나에게 사랑을 준다. 나의 일상을 늘 궁금해하고, 나에게만은 다른 기준을 두고 기다려주고 배려해준다. 그러나 나는 가끔 어리석게도 궁금해한다. 왜 나를 이렇게까지 이뻐해 주는 거지? 나를 알아갈수록 실망하지 않을까? 라며 마음껏 사랑을 주지 못하고, 되돌려 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한다. 상처 받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자존감 낮은 사람들의 사랑 유형이기도 하지만, 다른 말로는 이런 사람들을 회피형 인간이라고 한다.

   


 지나가는 글을 보다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회피형 사람과 연애하면 안 되는 이유’ 란 제목의 글이었다. 나열한 예시에 하나같이 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사람들. 그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가까운 정서적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편안하다.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다.

절체절명의 순간 ‘극단적인 이기심’을 드러낸다.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언젠가 뜬금없이 상대방에 당신이 ‘선을 넘었다’라고 정의해 버린다.

남에게 상처 주기 싫다는 말을 자주 한다.

충돌이나 대립을 마주하기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귀찮다는 속 편한 이유로 회피한다.

    


 그들은 상처 받을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온갖 핑계를 만들어 이 사람을 떠날 궁리를 한다. 머리가 아프니 이 모든 것을 정리하면 자유를 얻을 것이란 착각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맞춰가는 과정조차 힘들고 피하고 싶은 일로 여긴다. 내가 가장 별로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랑하는 그 마음조차 부정하는 것.


 그렇다면 난 정말 ‘찐 ‘ 사랑을 해본 적이 있을까? 회피형 사람들은 정말 참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걸까?  회피형 인간들(=나)은 내가 덜 상처 받았다는 우월감에 자주 빠지곤 한다. 그 덕에 내 이별들은 깔끔했다. 너 없인 안 되겠어, 너만큼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 없어라며 새벽 2시에 문자 오는 일 따윈 없었다. 문득 이런 이별이 옳은 이별일까 생각이 들었다. 후유증이 크게 없기 때문에 이별로서는 정답에 가까운 마지막일지 모르겠으나, 사랑의 측면에서는 틀린 답 같았다. 정말 사랑했다면 이렇게 칼로 벤 듯 깔끔할 수 있을까. 자고로 사랑이란 손으로 간신히 찢은 듯한 지저분함이 묻어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말 사랑해서 보내준다는 일은 내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40대, 60대 그리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두고두고 그려가야 하지 않을까.      


 사랑은 하지만, 너를 못 봐도 죽을 것 같진 않아. 사실 딱 그 정도의 마음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따라가 보면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은 '찐'으로 사랑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러나 오빠는 다르다. 내가 또다시 모든 것을 놓고 회피해버리고 싶을 때마다 나를 다잡아준다.

 내가 이런저런 이유로 줏대 없이 흔들릴 때마다 별일 아니라고, 괜찮다고 차분히 안정시켜준다.

회피형 인간을 안정형으로 변화시켜주는 사람. 내가 무슨 복을 타고났길래 오빠 같은 사람을 만났을까. 그러나 그걸 본인도 안다는 게 웃기다. 

 

"어떻게 나같이 좋은 사람을 이렇게 일찍 만났어~?"

"ㅋㅋㅋ뭐래~ 자존감이 좀 높은 편이네..?"


귀여운 생색을 듣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머리 아프단 이유로 이 사람을 놓치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피형 인간과 연애를 하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오빠. 내가 더 이뻐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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