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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호레 Jun 05. 2024

엄마의 집

집밥이 최고라 했던가


방 2 거실 1 화장실 1. 신혼부부도 좁다고 못 살 집에서 십여 년을 옹기종기 살아낸 우리 가족은

어느 순간부터 밥벌이를 이유로 아빠집, 엄마집, 광주집, 당진집, 원주집으로 나뉘어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덕에 누군가 나에게 본가가 어디야?라고 물을 때마다 엄마 집을 말해야 하는지, 아빠집을 말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하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대충 태어나고 자란 포항이라고 얼버부리곤 했다.


돌고 돌아온 엄마의 집. 집 떠나와 살아온 지 수년이 지난 탓에 편히 누울 내 방도 없는 이곳. 주차 방문증을 2주 등록하고 트렁크에 가득 실린 2주용 짐들을 풀어냈다.


2주라니. 새삼 놀랍다. 늘 캐리어 풀자마자 다시 싸는 일을 지난 반복 했었는데 이렇게 긴 시간 있을 수 있다니. 꿈꾸는 것만 같다.

바쁜 현생 탓에 밀키트와 배달음식에 의존했던 밥벌이 생활. 플라스틱 용기가 주는 은근한 이질감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나였다.

그런 내 눈앞에 막 썰어진 고기가 왕창 들어있는 김치찌개와 엄마표 반찬통들이 자신감 있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식탁 위에 하나 둘 올려졌다.


국물 한입. 밥 한 숟갈. 진미채 한 젓가락. 아- 역시.


입덧 탓에 지난 한 달간 모든 음식의 맛에 60%만 느끼고 있던 나였는데.. 엄마의 밥은 여전했다.



- 와, 진짜 맛있다- 엄마

- 급하게 만든 건데, 괜찮아?



한동안 4쌍의 기분 좋은 젓가락질이 밥상 위를 바삐 날아다녔다.

홀몸이 아닌 둘이 되어 7년 만에 돌아와 장시간 숙식을 예약한 딸을 위한 엄마의 밥상.

음식마다 뿌려져 있는 참깨 토핑에 엄마가 느꼈을 따뜻한 뿌듯함이 느껴졌다.


‘톡톡- 맛있게 먹어주길.’



엄마가 차려준 밥을 네 가족이 옹기종기 먹고, 출근하는 가족을 배웅하고, 글을 쓰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었다.

당분간은 더 이상 돌아갈 곳의 내가 할 일에 부담을 느끼지도, 320km의 돌아갈 거리를 계산하지도 않아도 된다.

무엇인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으니 충만함이 찾아왔다. 이런 기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느 문턱을 넘기 위한 공부가 아닌,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오늘 하루 빈 노트를 몇 시간 끄적인 나의 결론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6개월이란 짧은 시간 동안 온전히 나에게 몰입하기로 했다.


9 to 6 나의 삶의 한가운데서 나를 관통하고 있던 무겁고 두꺼운 기둥이 사라졌다.

그 한가운데 기둥 중심으로 흩날려있던 나의 생각과 감정들이 드디어 하나 둘 모이는 느낌이 든다.

내일은 뭘 계획하고 채워나갈까. 아,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 이제야 살아있는 것 같다.



다음날 혼자 먹는 아점도 당연히 집밥.

엄마의 밥은 설거지도 단출하다. 수저 세트 하나. 시레기 국을 담은 국그릇 하나, 밥그릇 하나.

어느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없는 식사가 또 한 번 끝이 났다.

밥그릇에 남은 밥한 톨을 긁어먹으며 나는 다짐했다. 저녁에도 똑같은 한 끼를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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