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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Jul 25. 2023

빛, 찬란한 빛

밝아오는 태양

프리랜서로 일할 때였다. 통역이 없고, 하루 종일 번역을 해야 하는 날은 아침 일찍 짐을 챙겨 근처 스타벅스에 가곤 했다. 사실 일의 능률을 따지자면, 집에서 하는 편이 집중도 잘 되었고 책상도 더 편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집안에서 번역을 하고 있다 보면 이따금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래서 나름 생각해 낸 것이, 아침에 두 시간 정도 스타벅스에 가서 번역을 하는 것. 매장을 여는 시간에 카페에 가면 테이크아웃 손님은 많아도 매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 조용하기도 했다.


그날도 노트북을 싸가지고 아침 일찍 스타벅스에 갔다. 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집에서 나갈 때 아직 어둑어둑했던 것 같다. 창가에 설치된 바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전원에 연결하고, 번역할 파일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래층에서 커피가 완성됐다며 내 이름을 불러 아메리카노를 받아왔다. 다시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만지려는데, 창밖에서 해가 떠올랐다. 통유리로 된 창가자리였는데, 밖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겨울엔 참 해가 늦게 뜨네'라고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이 범상치 않았다.


저 멀리서 떠오르던 태양이 눈앞으로 다가온 느낌이 들었다. 어? 해가 뜰 땐 이런 것일까? 어쩐지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경외심도 들고 노트북을 만지던 것을 중단하고 창밖을 보게 되었다. 태양이 한 발자국 더 눈앞에 다가왔다. 그러더니 빠른 속도로 태양이 창을 뚫고 들어오려는 듯 다가왔고, 난 눈이 부신 와중에도 태양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종교가 없는 나인데 이건 마치 신비 체험을 한 것 같았고, 가슴이 벅차오르고, 내 주변이 빛으로 가득 찼다.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고, 빛에 압도당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태양은 점점 다가와 내 눈이 멀 것 같은 빛을 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알람이 울렸다. 그리고 눈을 떴다. 내 침대옆 스탠드는 한 번 터치를 할 때마다 더 밝아지는 제품이었는데, 잠결에 계속 터치를 한 모양이다. 스탠드가 내 눈앞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원효대사의 해골물이 생각나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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