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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대협 May 23. 2024

미켈란젤로의 부캐는 건축가

DAY 4 로마 버스 투어

캄피돌리오 언덕은 강과 가까이 있어 로마인들이 상대적으로 나중에 점령한 땅이다. 처음에는 로마의 최고 신 유피테르와 유노, 미네르바를 모신 신전이 위치해 있었다. 이 언덕에 교황 바오로 3세의 의뢰를 받고 미켈란젤로가 광장을 조성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로마에 방문할 때, 그를 영접할 장소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언덕 아래 입구에서 볼 때 완벽한 사각형이 아니라 안쪽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사다리꼴이다. 이렇게 하여 입구에서 볼 때 넓어 보이는 투시효과를 냈다. 입구 코르도나타(계단언덕, cordonata)는 아래쪽 폭이 좁고 위쪽 폭이 넓게 만들었는데, 아래에서 볼 때는 원근법이 무시되어 소실점을 잃고 가깝게 느껴진다. 높은 곳에 있는 광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리감은 느껴지지 않게, 사람들에게 접근성이 좋아 보이도록 만들었다. 계단은 한 칸 한 칸은 직각이 아니라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폭이 굉장히 넓다. 황제가 말을 탄 채로 계단을 오를 수 있게 해달라고 의뢰했기 때문이다.

광장에 들어서면 하얀 직선으로 장식된 바닥이 보인다. 지상에서는 직선밖에 보이지 않지만 공중에서 광장을 바라보면 꽃모양이 확연히 드러난다. 다이아몬드 형태의 꽃잎을 타원으로 감싸고 있다. 직선으로는 구사하기 어려웠을 텐데, 광장 주변을 주변보다 약간 높이고 주변부로 갈수록 선을 얇게 해서 꽃을 완성했다. 미켈란젤로가 누누이 말하듯이, 피에타도 그렇고 캄피돌리오도 그렇고 '지상의 천한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신께 바치는 정성'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집에 앉아서 구글어스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신께 바쳤던 정성을 후손들이 받고 있다. 이것도 미켈란젤로의 예상일까. 옛적에 신이라고 여겨졌던 것에게 점점 인간이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세 채의 궁전이 캄피돌리오 언덕을 감싸 안고 있다. 궁전들이 감싼 광장은 포로로마노를 등지고 바티칸을 바라보고 있다. 다신교 중심의 고대를 밀어버리고 등진 채, 하느님께 향한다는 기독교의 의지이다. 입구 정면의 舊 원로원, 現 로마시청사(Palazzo Senatorio), 그 양 옆으로 콘세르바토리 미술관(Palazzo Conservatory), 캄피돌리오 미술관(Palazzo Nuovo)이 있다. 시청사 앞면에 분수가 있는데, 미네르바가 가운데 중심을 잡고 양 옆으로 테베레강과 나일강의 신이 바깥쪽을 보며 기대앉아있다. 광장 가운데에는 5 현제 중 한 명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 모작이 있다. 황제의 기마상은 원래 라테라노 궁전 광장에 있었고, 현재 진품은 캄피돌리오 미술관에 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명상록'의 저자로 유명하나, 기독교를 극심하게 박해했다. 잘 알았다면 중세 기독교인들이 분노에 차서 파괴했겠지만, 그들은 이 동상을 위대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오인하여 잘 보존했다. 역설적으로 기독교를 가장 탄압했던 황제의 동상이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사랑받으며 살아남았다.




캄피돌리오 언덕 아래, 포로로마노 북쪽에 '조국의 제단'을 품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있다. 통일 이탈리아 초대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사망 30년 이후에 건립하였다. 건물은 다른 색이 전혀 없이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신전 같다. 애초 기념관 건립을 위해 이 지역 주민들을 집단이주 시키고 구역을 초토화한 데다가, 지어진 건물은 겉에만 번지르르하고 속내용물은 보잘것없어서 시민들이 '웨딩케이크'라고 부르며 욕했다. 혹은 미국인들은 당시 인기를 끌고 있던 신문물과 비슷한 데서 영감을 받아 '타자기'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쨌든 지금은 국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고, 그 앞에는 전몰용사를 기리기 위한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나 이런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는데, 이 불꽃들은 정말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 것일까.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판테온에 당도했다. 그리스어로 pan은 '모든', theon은 '신'을 뜻하니, 판테온은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인들이 수백 년간 각종 신들을 모셨던 다신교의 본산이다. 애초 제우스, 마르스 등 다양한 신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나, 위치나 모양 등 현재는 자료가 없다. 지금은 기독교 성당이다. 기독교가 로마에 유입된 것이 1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진장을 발행한 것이 313년이니, 3세기의 역사가 판테온의 운명을 전환시킨 분기점이다. 그래도 콘스탄티누스 황제 사후 300여 년간 판테온은 여전히 다신교 신전이었고, 그 이후에야 기독교에 기증되어 성모마리아께 헌정되었다. 판테온이 기독교에 이관되지 않았다면 현재까지 다신교 신전일지, 혹은 존재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공식적으로 박물관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판테온이 최초로 건립된 것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기 아그리파 장군에 의해서였다. 기원전 27년 최초 건립되었으나 서기 80년 화재로 전소되었고, 재건 이후 110년 번개로 다시 파괴되었다. 다들 나르시시즘 한가닥씩 하는 신을 모두 한 곳에 모으려 하다니, 신들이 허락하지 않은 건물 아니었을까. 하지만 흉가에는 시멘트 공구질이 답인 것처럼 인간의 의지는 신보다 강한 법이다. 기어코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기에 다시 재건하였다. 

건물의 형태는 원통을 중심으로 지붕에 돔이 얹혀 있고 입구에 신전 같은 직사각형 현관이 붙어 있는 꼴이다. 블록놀이를 하다가 떠오른 구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단순하고도 명료한 도형들의 종합은 오늘날의 눈으로 보아도 재기 발랄하다. 진취적이고 현대적이라고 느낀 것은 건축 대가들도 마찬가지였는지, 팔라디오의 빌라 로톤다(Villa Rotonda)나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본관 등 수많은 건물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인류 역사상 가장 고전적인 건축의 정석이다. 미켈란젤로조차 '판테온은 신이 만들었다'라고 할 정도였다. 

바닥부터 돔 꼭대기까지 높이는 43미터, 본체건물인 원통의 지름도 우연의 일치가 아닌 43미터로써 구조로 본다면 판테온 안에 43미터의 거대한 구가 들어갈 수 있다. 베드로 대성당의 쿠폴라부터 바닥까지가 42미터인데 베드로 대성당보다 더 큰 돔건물을 지을 정도로 고대인들의 기술이 뛰어났다는 증거일 수도 있고, 베드로 대성당조차 판테온의 위명을 경외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돔의 높이는 건물 전체 높이의 정확한 절반이다. 말하자면 컵의 지름에 딱 맞는 공이 딱 절반 나와있는 모습으로 건축적으로나 미적으로나 군더더기 없고 균형적인 꼴이다.

판테온은 우주이고, 꼭대기에 구멍이 난 돔은 하늘 혹은 하늘과의 연결고리를 상징한다. 오쿨루스(눈, oculus)의 지름은 8.3미터로 거의 모든 다른 건축물들에서 보기 힘들 정도의 거대한 크기이며 건축적으로 매우 도전적인 과제였을 것이다. 일설에는 실내 공기가 오쿨루스로 유출되기 때문에 비가 와도 오쿨루스로 안으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비가 오면 실내에 비가 많이 떨어진단다. 

건물 지름과 똑같은 지름의 거대한 반구를 얹기 위해 건물 벽 두께는 6미터에 이르게 튼튼한 골격으로 만들었으며, 위로 갈수록 얇아져서 무게를 분산한다. 돔은 5개의 동심원으로 되어 있고, 각 층마다 음력 한 달을 상징하는 28개의 격자로 들어차 있다. 벽돌 안에 심은 말총이 현대로 보면 콘크리트 안에 심은 철강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현관의 삼각파사드는 원래 청동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나, 베드로 대성당 천개를 만들려는 베르니니에 의해 뜯겨나갔다. 돔도 원래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로 천도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고자 반출했다. 고대에도 유네스코라는 게 있었다면 그 직원들은 아마 스트레스받아 죽었을 것 같다.

다신교 성전에서 기독교 성전으로 변모한 이곳에는 다양한 신과 인간들의 묘지가 혼합되어 있다. 제우스, 마르스,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 트로이의 장군 아예네이스, 통일 이탈리아의 초대왕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와 그 아들 움베르토 1세, 왕비 마르게리타도 같이 모셔져 있다. 또한 천사들의 애도를 받는 라파엘로의 묘지가 있다. 라파엘로는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매일 판테온을 방문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 천장 안쪽 구멍마다 붙어있던 별 조각이 영감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라파엘로는 사후에 자신이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판테온에 묻혔다.




판테온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 근처 코르소 거리(코모 코르소, Como Corso)는 유명 브랜드가 되어 이탈리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하다. 그 브랜드의 기원이 되는 만큼 먼 옛날부터 로마인의 삶의 터전으로 의식주와 관련된 가게들이 즐비하고, 한 땀 한 땀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장인들의 공방과 골동품을 모으는 가게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오래된 식당들이 번영하기 때문에 새로운 식당들도 도전하고 있고, 메뉴도 다양하다. 로마 3대 젤라토 중 하나인 '지올리띠(Giolitti)'와 생크림 에스프레소인 카페콘파냐가 유명한 '타차도르(Tazza'dor)'가 근처에 있다. 카페콘파냐는 생크림으로 에스프레소의 쓴 맛을 잘 중화하면서 먹어야 한다. 얼죽아의 나라 출신인 나로서는 음료라기보다는 디저트 같았다. 지올리띠의 젤라토는 2 스쿱에 2.5유로로, 또 다른 3대 젤라토 파씨가 3 스쿱에 1.6유로인 것에 비해 좀 비싸다. 재료의 질이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맛의 차이는 별로 못 느꼈다.




점심식사 이후 서쪽으로 이동하여 나보나 광장에 이른다. 스페인 광장과 더불어 로마에서 가장 활발한 광장이다. 광장에는 크리스마스마켓이 한창이고,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회전목마가 바쁘게 돌아간다. 나보나 광장은 최초 도미티아누스 황제 전차경기장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좁고 긴 형태로서, 경기장이었던 곳은 광장, 관중석이었던 곳은 여러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곳도 모의 해상전투장, 공공극장, 대소규모 축제장소 등 복합문화시설이었고, 나중에 경기장이 파괴되고 흔적이 사라진 후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애용했다. 이 광장 중 성 안드레아 성당이 과거 카이사르가 암살되었던 폼페이우스 극장이다.

광장에는 북쪽의 넵튠 분수, 중앙의 피우미 4대 강 분수, 남쪽의 모로 분수 등 3개의 거대한 분수가 시민들을 즐겁게 해 준다. 광장 북쪽의 넵튠 분수는 문어와 싸우는 넵튠을, 남쪽의 모로 분수는 돌고래와 싸우는 모로인(이디오피아인)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광장 중앙의 4대 강(피우미, Fiumi) 분수는 베르니니가 설계했으며, 가운데 오벨리스크의 꼭대기에는 베르니니의 후원자였던 교황 인노첸시우스의 가문인 팜필리 가문을 상징하도록 올리브 가지를 물고 있는 비둘기가 조각되어 있다. 오벨리스크 아래의 4명의 거인은 각각 아시아의 갠지스, 유럽의 도나우, 아메리카의 라플라타, 아프리카의 나일 강으로서, 5대양 6대주까지는 아니더라도 전 세계를 아우르는 교황의 위세를 상징한다. 

갠지스 강은 노를 젓고, 도나우 강은 비둘기를 향해 손을 뻗치고, 라플라타 강은 은화 동전 위에 앉아 있다. 나일 강은 마치 바로 앞에 있는 성당이 못 볼 꼴이라는 듯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 그 성당은 로마 건축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가 건축한 고난의 성 아그네스(산타녜졔 인 아고네, St. Agnese in Agone) 성당이다. 일설에 따르면 보로미니와 베르니니는 서로 증오하는 라이벌인데, 보로미니의 성당 앞에 분수를 지으라는 의뢰를 받고 베르니니가 이렇게 성당을 폄훼하는 포즈의 동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분수는 1651년, 성당은 1666년 완공으로 성당이 더 늦게 지어졌으니 보로미니를 깎아내리는 베르니니가 아니라 베르니니를 놀리는 보로미니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 베르니니가 의도한 나일 강의 거인 포즈는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고, 크고, 오래되었다는 뜻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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