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 - 증언의 신빙성에 관하여

The Battle of Credibility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최근에 작은 민사 사건의 피고를 대리하여 운이 좋게 승소하였다. 사실 민사 소송사건을 잘 맡지 않는 편인데, 워낙 의뢰인의 입장이 억울하기도 하고 내게는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수임하게 되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증언의 신빙성과 이를 다투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 볼 기회가 있어서 글로 남기게 되었다.


형사 사건도 그렇지만, 민사 사건은 오히려 당사자간의 주장이 엇갈리는 경우가 심한 것 같다. 형사 사건의 경우 대부분은 경찰의 진술과 피고인의 진술이 큰 문맥에서는 일치하지만, 사소한 부분에서 디테일의 차이가 있다. 이러한 부분의 차이를 잘 파악하여 정확한 진실을 파악하고 우리에게 유리한 사실 관계를 최대한 이용하여, 최종적으로는 유리한 유죄협상을 이끌어 내거나 재판에서 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을 이끌어 내는 것이 주 목표가 된다.


그런데 민사 사건의 경우는 일단 당사자들 사이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사실 관계에서 주장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흔한 교통사고 관련 사건에서는 상당수의 피고와 원고가 동시에 "나는 파란불이었는데, 상대방이 신호위반을 해서 사고가 났다"라는 주장을 하게 된다. 서로 다른 방향의 신호가 동시에 파란불이거나 빨간불일 수는 없기 때문에,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사자(혹은 목격자)의 진술 외에는 이를 정확하게 밝혀낼 증거가 부족하고(미국에는 한국처럼 카메라(dashcam)가 보편화되어있지 않다), 내가 본 신호등이 파란불이라는 거짓말을 하기는 참 쉽다는 것이다. 게다가 적지 않은 돈이 걸려있는 만큼, 양 당사자 모두 거짓말을 할 동기도 충분하다.


그러다 보니 결국에는 변호사의 증인신문(witness examination) 능력에 따라 증인의 신빙성이 갈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주로 활동하는 버지니아 주 법원의 1심(General District Court)의 경우에는 형사든 민사든 기본적으로 재판 전까지 증거 개시(discovery)를 통해 상대방의 증언을 파악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형사의 경우에는 검사의 증거 공유 의무가 있어서 좀 나은 편이다. 관련 포스팅) 기껏해야 원고의 청구 취지(Bill of Particular)와 피고의 그에 대한 답변서(Answer)가 전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 전에 우리 측 증인(혹은 의뢰인)의 주 신문(direct examination)을 연습하고 상대방의 반대신문(cross examination)을 대비하는 시간을 갖게 되고, 변호사는 개인적으로 상대방 증인을 어떻게 반대 신문할 지에 대하여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상대방이 정확하게 무슨 증언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정하지만 실제 반대신문은 상당 부분 임기응변에 의존해야 한다.


피고(혹은 피고인)를 대리하는 입장이라면 그나마 좀 사정이 낫다. 왜냐면 입증의 책임은 항상 원고에게 있기 때문에, 피고의 입장에서는 원고 측 증인과 비슷한 정도의 신빙성을 가진 증언을 내놓을 수 있다면 판사나 배심원이 피고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대리한 민사 사건에서 승소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상대방과 우리 모두 신호등이 파란불이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양측 증언의 신빙성에 큰 차이가 없을 경우, 판사는 피고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럼 변호사 입장에서 증언의 신빙성(credibility)을 어떻게 강화 혹은 약화시킬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증거법의 핵심이다. 증거법이라는 것은 결국 어떤 증거가 채택이 되는지, 채택된 증거의 증거력이 얼만지, 변호사가 증인신문 시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지/없는지에 관한 모든 내용이 증거법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얼마나 잘 숙지하고, 재판 진행 시에 순발력 있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순발력이 중요한 이유는 이의제기(objection)할 때, 이를 즉시(contemporaneous)에 하지 않으면 이의제기를 포기(waive) 한 것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증인이 전문 증거(hearsay, 즉 제삼자의 말을 인용)를 기반으로 한 증언을 하려고 할 때 이를 상대방 측 변호인이 즉시 이의제기를 하지 않으면, 해당 증언은 증거로 채택되고 나중에 이를 문제 삼을 기회도 없다. (물론 전문 증거도 예외적으로 채택될 수 있는 경우가 수십 가지라서 이를 다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재판을 진행할 때는 상대방 증인이 말 한마디, 표현 하나, 단어 하나에도 초집중을 하되, 상대방 변호사의 신문 내용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상대방 증인을 반대 신문할 단서를 찾으면서도, 상대방 변호사가 행여나 부적절한 질문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증거를 제시하려 할 경우 즉시 이의제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정신없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에서 스포츠 경기와도 비슷한 박진감이 있다. 물론 여기에 참여하는 당사자는 죽을 맛이겠지만.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마치 필자는 재판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꼭 그렇지는 않다. 언급한 대로 재판에는 변수가 너무 많아서 결과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변호사의 기본 성향이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피하는 것이기 재판을 준비/진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준비가 필요하고 상당한 심적 부담을 가져온다. 그러다 보니 어떤 변호사들은 평생 재판이나 소송과는 거리 간 먼 분야에만(예를 들어, 계약서 자문이나 유언장 작성 등) 종사하여, 실제로 법원에 한 번도 안 가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필자는 법정이나 법원에 대한 두려움이 딱히 없고, 일단 젊을 때는 사서 고생해봐야 한다(?)는 주의라서 재판이나 소송에 대한 부담감도 적은 편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재판 경험을 통해 의뢰인에게 도움이 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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