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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Apr 29. 2020

벌써 일 년, 혹은 이년

아킬레스 건과 코로나 바이러스

오늘은 내가 작년에 테니스를 치다가 아킬레스 건을 끊어 먹은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히 기억난다.


2019년 4월 28일 일요일, 오전에 친한 지인들과 커플/부부 동반으로 디시에서 브런치를 맛있게 먹고, 오후에 알링턴 테니스 리그전을 치르던 중이었다. 그날의 내 파트너는 아버지 뻘 되는 백인 아저씨였는데, 다리는 느리지만 노련미가 있어서 1세트는 생각보다 쉽게 이겼다. 2세트 첫 포인트, 상대방이 우리 파트너 쪽으로 드롭샷을 했는데, 파트너 대신 그 공을 넘기려고 급히 체중을 앞으로 실으며 오른발을 크게 내딛으며 대시하는 순간, "딱" 소리와 함께 나는 무너졌다. 순간 누군가 뒤에서 내 왼쪽 종아리를 때린 것으로 알고 뒤를 돌아보았으나, 거기엔 아무도 없었고, 딱히 고통은 없었지만 다시 일어나려는데 왼쪽 다리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아 무언가 잘못된 것을 직감했다. 


당일 urgent care에서 아킬레스 건 파열을 진단받고, 다음날 정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았다. 15년 전에 사랑니 발치로 전신 마취를 받은 이후로 전신 마취는 참 오랜만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나는 옆에 있던 와이프가 마시던 스타벅스 아이스라테를 엄청나게 탐냈다고 한다 ㅋㅋㅋ 물론 간호사는 수술 직후엔 금식이라며 커피를 주면 안 된다고 했고, 나의 몽롱한 자아는 나중에 사주겠다는 말에 만족하고 단념했던 것 같다.


수술하고 깁스를 착용한 두 달 정도는 참 힘든 시기였다. 태어나서 깁스는 생전 처음이라 이렇게 갑갑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한 동안은 테니스를 못 친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기까지 했었다. 게다가 목발 사용도 처음이라 몇 번 미끄어지며 재파열이 될 뻔한 적도 있어서 식겁한 적도 있었다. 


아킬레스 건 부상으로 인한 거동의 불편은 자연히 내 업무의 감소로 이어졌다. 아무래도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판단에 당분간 새로운 사건을 수임하지 않기로 했다. 그나마 있는 사건들은 목발이 짚거나 혹은 무릎 스쿠터를 타고 법원을 들락거리며 재판에 출석하기도 했다. 이때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지 거의 딱 1년이 되는 시점이었는데, 마침 수임도 늘어나며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는 즈음에 부상 때문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도 역시 의학 기술이 발달해서 그런지 약 6개월 이후부터는 보조기 없이 걷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테니스는 불가였고, 사실 그때만 해도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테니스를 다시 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던 와중에 테니스 대용으로 골프를 시작했고, 꽤 흥미를 갖게 되어 작년 10월부터 올해 3월 초까지 매주 꾸준히 레슨을 받기도 했었다. 


내 아킬레스 건이 회복되어가면서 그동안 잠시 쉬었던 사건 수임도 재개하여, 비즈니스가 다시 발전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수입도 안정화되는 단계였고, 하는 일도 점점 손에 익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테니스에 대한 자신감도 다시 회복하여 조금씩 코트에서 재활을 했고, 3월 초부터는 경기도 조금씩 재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그에 따라 사망자도 증가하는 추세에 따라 미국 각 주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버지니아도 마찬가지였다. 주지사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각 법원도 이에 따라 사건 심리 및 재판을 중지했다. 거의 매일 법원에서 심리 및 공판을 치르는 것이 내 주 수입원이었던지라, 이는 곧바로 내 사업에 타격이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연방정부 컨트랙터인 와이프가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연방 정부가 핵심 기능을 제외하곤 비상 체제로 돌입하고, 대다수의 회사들은 재택근무로 돌린 상태였는데, 와이프의 직장도 마찬가지로 재택근무로 업무가 가능하였다. 어차피 개업 초기에 수입이 거의 없을 때에도 와이프의 월급으로 생활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기에, 다행히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업상 고정 지출은 있기 때문에, 각종 불필요한 비용을 없애고, 남은 현금으로 법원 업무가 재개될 때까지 최대한 긴축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3월 직전까지는 수임이 괜찮았던 편이라 어느 정도 현금을 마련할 수 있었는데,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나마 다행으로 CARES Act로 인해서 나 같은 자영업자도 비즈니스 감소로 인한 손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는 중이다.


이렇다 보니 내 개업 활동은 시작 초기부터 두 번의 큰 난관을 겪게 된 셈이다. 개업 1주년에는 아킬레스 건 부상으로 인한 수임 중지, 2주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법원 폐쇄. 그것도 시기가 막 개업을 했던 4월 말, 5월 초로 비슷하다는 게 신기하다. 어쩌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쉬어가라는(?) 신의 계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남는 시간을 저술 활동과 공부로 보내고 있다. 저술 활동이라고 해서 뭐 거창한 건 아니고, 매주 라디오 방송에 내보낼 대본을 작성하고 녹음하는 일이고, 공부는 현재 주 업종인 형사 사건 외에도 연방정부 조달법을 공부해서 전문성의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역시 아무리 이렇게 경제가 어려워도 정부는 잘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정부를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를 대리/자문하는 게 최고인 것 같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마침 내가 사는 알링턴 카운티는 단일 기관으로서는 세계 최대의 구매자인 미 국방부 펜타곤 본사가 위치한 곳이다)


마침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고,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이나 차량도 거의 볼 수 없다. 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집안에 한 달 넘게 갇혀있는 상황이지만, 나중에 지나고 보면 인생이란 책의 짤막한 한 구절에 해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고 새 생명이 돋아나듯, 이 시기가 지나가면 다시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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