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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Sep 08. 2020

82. 아주 오래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

그건 바로 씨에스

아주 예전에 온라인 스토어는 가급적 (최대한)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건 거의 모두 CS 때문이었다. 고객의 불만사항 혹은 의견 등을 수렴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일. 물론 대부분은 불만사항을 처리해야만 하는 경우다. 


나는 어쩌다 보니 회사 생활을 처음 시작하고부터 가게를 운영하는 지금까지 CS 업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온라인 쇼핑몰의 DVD파트 담당자로 또 운영자로 오래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CS를 직접 맡게 되었었고, 나중에 브랜딩, 마케팅 담당자가 되었을 때도 직접 사용자들의 CS를 해결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을 오래 맡기도 했다. 특히 온라인 쇼핑몰의 담당자로 있을 때는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잦을 수 밖에는 없었는데, 안타깝지만 대부분은 안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경험들이었다. 


나중에 서비스를 운영하고 기획할 땐 전체적인 서비스의 운영 톤 앤 매너나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을 작성하고 교육하는 업무까지 맡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일은 매번 힘든 일이었다. 회사를 관둔 여러 이유 중 하나도 오로지 소비자(고객)로만 살고 싶어서였는데 그렇게 관두고 새로 시작한 일이 오프라인 가게에 온라인 스토어라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이렇게 오래 관련 업무를 해왔으면 이제 좀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 업무는 스트레스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일이라 그런지 조금도 익숙해지지가 않더라. 현재 우리 온라인 스토어는 만약 조금이라도 늦게 시작했더라면 이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버텨낼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안 했다면 큰 일이었을 선택이었지만 정말 그 당시에만 해도 끝까지 하고 싶지 않았던 선택이었다. 온라인 쇼핑몰이라는 건 얼굴을 대면하지 않는 수많은 고객을 상대하기 때문에 오프라인에 비해 훨씬 더 많은 CS를 처리해야 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은 오프라인에 비해 제반 비용이 덜 드는 강점이 있지만 그만큼 더 많은 CS를 처리해야만 한다 (등가교환의 법칙!).


직접 쇼핑몰을 만들거나 운영하지 않고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 중인데 여러 가지 장단점이 있지만, 게시판으로 주로 문의하던 쇼핑몰 시스템과는 달리 메신저 형태로 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어 있는터라, 고객의 질문이 시간을 정해두지 않을 때가 많다. 오히려 밤늦은 시간과 새벽 시간에 문의가 많은 편이다. 물론 고객의 입장에서는 별도의 게시판 같은 것이 없으니 게시판에 남기듯 (즉, 직접적인 대답이 오지 않더라도 괜찮은) 질문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가끔은 내용을 보면 바로 대답을 왜 안 하는가 묻는 형태의 질문들도 있다. 그럴 때면 지금 몇 시인지 되묻고 싶지만, 당연히 그런 실수는 범하지 않는다. 가끔 작은 가게나 서비스의 사장들이 욱해서 실수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당연히 잘못된 실수지만 이해는 된다.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게 메신저 형태로 톡이 올 때가 많다 보니 휴대폰으로 시도 때도 없이 문의가 올 때가 많다. 자려고 누운 상태에서도 톡이 자주 오고. 새롭게 온라인 스토어를 운영하면서 정한 몇 가지 규칙 가운데 영업시간이 아닌 시간에는 CS도 (아주 심각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응하지 말자라는 것이 있는데, 그래서 늦은 시간 톡이 와도 대응을 하지 않지만 그 내용은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불만에 관한 것이다 보니 그 내용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 역시 종일 기분이 좋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보는 것만으로 다음 날 아침 그 CS를 해결할 때까지 마음이 답답해지곤 한다. 많은 경우 잠 못 이루기도 하고. 그래서 요즘엔 아예 톡이 뜨는 걸 보지 않으려고도 하는데, 혹시 모를 일 때문에 슬쩍슬쩍 보게 된다. 보고 나서 별 일 아닌 재고 문의 같은 일이면 마음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완벽하게 CS의 스트레스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있다. 완전히 기계처럼 대응하는 것이다. 감정을 섞지 않고 손해를 더 보더라도 커뮤니케이션 과정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스트레스보다 그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협의 혹은 논의를 생략하고 무조건 고객이 원하는 대로 처리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이 것이 반품 혹은 교환 사유인가 아닌가에 대해 소비자와 판매자의 의견이 다를 때 제품 비용을 손해 보는 것보다 그 커뮤니케이션 과정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더 큰 비용이라고 생각되면 애초에 첫 단계에서 고객이 원하는 대로 처리를 하는 것이다. 내가 오랜 시간 CS 업무를 하며 얻게 된 단 하나의 노하우라면 이걸 꼽을 수 있겠다. 좀 더 나아가자면 고객의 성향을 재빨리 파악해 어느 것이 더 비용을 덜 들이는 일인지 빨리 알아채는 촉이 좋다는 것 정도. 


그렇게 이제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매출이 더 커진 마이페이보릿 온라인 스토어는 그런 촉으로 CS를 처리하며 하루하루 보이지 않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중이다. 이쯤 했으면 어떤 고객의 무리한 요구도 (물론 정당한 요구도 많다) 크게 마음 쓰지 않고 기계처럼 깔끔하게 처리하고 심리적 타격도 없어야 할 텐데, 아직도 한 건 한 건 불만사항이 접수될 때마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하루 종일 마음이 쓰인다 (아 물론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덕에 고객은 전혀 그런 내용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표면적인 처리는 잘하고 있다. 그건 당연히 잘해야 하고). 


다른 힘든 일은 어려움을 해결했을 때 쾌감이나 보람이 있기 마련인데, 물론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고객과의 CS는 해결 이후에도 쾌감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냥 버텨냈다 하는 안도감 정도. 그래도 경력자라고 수많은 사전 대비를 해 놓은 탓에 우리는 지금 규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악성 CS의 비율은 아주 적은 편이다. 확률적으로 어느 정도는 존재할 수 밖에는 없고 비례해서 증가할 수 밖에는 없는데,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아주 적은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아... CS에서 완전히 독립하는 날이 다시 올까. 행여나 사업이 잘 돼서 내가 일일이 작은 일을 하지 않게 되더라도 고객이 남긴 작은 댓글이나 리뷰에 움찔움찔하겠지. 흑. 빨리 더 높은 완성형의 AI가 개발되어서 인류의 건강을 좀먹는 스트레스 유발 CS는 시스템이 모두 처리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아니야, 그래도 대부분은 상담원 연결을 누를 거야.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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