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초등학교를,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보내며 경험한 교육 시스템
나는 초등학교를 영국과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미국과 한국에서 다녔다. 나라를 이동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친구를 사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덕분에 다양한 교육 시스템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나의 인생 목표를 세우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20년도 더 된 경험이지만,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한 영국과 미국 학교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적어본다.
생일이 2월 말인 나는 7살에 초등학교 입학을 했다. 학교에서 한글 받아쓰기를 배우던 중 우리 가족은 영국으로 이주했다. 당시는 8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영어 조기 교육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영국에 가기로 결정 난 후, 알파벳 책을 사서 글자 따라 그리기 연습을 한 기억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그렇게 영어 한마디 알아듣지 못하던 7살의 나의 영국 학교 생활이 시작됐다. 첫 며칠은 말 한마디도 못 알아들어 바디 랭귀지로 소통했다. 그나마 놀이를 하면서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는 나이라 다행이다 싶다. 매일 아침 학교 가기 전 30분씩 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 영어책을 한 줄씩 읽고 번역해주셔서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함께 또 따로, 각자의 진도에 맞게
영국 학교는 함께 또 따로 놀면서 공부하는 환경이었다. 한 반에 5-60명에 육박하던 우리나라와는 달리 한 반에 20명 남짓한 학생뿐이라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오전 시간에 반 아이들과 함께 특별활동을 하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각자 문제풀이를 한다. 지정된 좌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원형, 사각형 테이블에 자신이 편한 자리에 앉아 기본 원리에 대해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다. 그리고 각자 교재의 문제를 풀고 선생님께 1:1로 검사를 맡는 방식이다. 맞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틀리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도저히 모르겠다고 하면 선생님이 설명해준다. 문제풀이 시간이 끝나면 반 아이들은 책꽂이가 있는 카펫 공간으로 옹기종기 모인다. 문제풀이를 빨리 끝낸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을 방해하지 않고 이 공간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책을 읽는다. 모든 아이들의 문제풀이가 끝나면, 선생님은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 아이들은 앉아서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듣는다.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새로운 단어와 표현법을 익히고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상상력을 키운다. 책 읽기가 끝나고는 책상에 앉아 자신만의 그림책을 만들고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이야기하는 시간도 갖는다.
직접 경험하며 배우는 특별활동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다녔던 학교는 요일별로 하는 특별활동이 있었다. 월요일은 수영, 화요일은 채소밭 체험, 수요일은 공작활동, 목요일은 체육, 금요일은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 가져가서 놀기. 특별활동은 이론 위주로 배우는 교육이 아닌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는 살아있는 교육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수영과 채소밭 체험이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아이들에게 수영을 필수로 가르쳤다. 아이들의 수영 실력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수준에 맞게 배운다. 수영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은 팔에 끼우는 튜브(arm band)를 착용하고 연습한다. 한국에서 어릴 때 물에 빠져 죽을뻔한 경험이 있던 나는 물을 무서워했는데, 영국에서 이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암밴드를 끼고 물에 겨우겨우 들어갔던 아이가 몇 개월 만에 암밴드 없이 수영장 풀을 왕복으로 완주했고 돌고래가 그려진 완주 증서까지 받았다. 이후 수영은 나의 최애 운동이 되었다. 채소밭 체험은 학교 근처 비닐하우스나 텃밭에서 직접 작물을 키워보고 돌보는 활동이었다. 파슬리, 감자, 강낭콩 등을 직접 심고 매주 자라는 모습을 관찰하고 일지를 작성한다. 영국에서 내가 경험한 교육은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최소화하고 직접 경험하고 놀며 배우는 교육이었다.
점심시간에 자연스럽게 익히는 매너교육
신사의 나라 영국답게 점심시간에는 매너 교육을 실시한다. 영국의 테이블 매너는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아 양손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상태에서 식사하는 것이다. 양손은 위로 올리되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괴거나 팔짱을 끼는 행동은 하면 안 된다. 음식을 먹으면서 소리를 내거나 음식을 입에 넣은 채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런 내용을 교과서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배운다. 모든 학생이 강당에 세팅된 테이블에서 모여 식사를 한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학생도 있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급식을 먹는 학생도 있다. 학생들이 모여 식사를 할 때 선생님 몇 명이 돌며 아이들의 자세 교정, 잘못하는 점을 지적하며 교육한다. 아이들은 다른 학생들이 지적받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자세를 바르게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 시카고에서 1년간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미국의 5대 공립학교 중 하나였고, 교사 중 상당수가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근처의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언어가 통해서인지 미국에서의 고등학교 생활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공부하는 재미를 깨달아 장학생 명단(Honor roll)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짧았던 1년은 나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내 수준에 맞는 수업 선택을 위한 레벨 테스트
고등학교 전학 첫날, 영어와 수학 시험을 봤다. 모든 아이들은 영어와 수학 레벨 테스트를 거쳐 각자에게 맞는 반에 배정된다. 레벨은 총 5단계. 평균이 3 레벨이고, 5 레벨은 대학 수준의 실력을 가진 아이들이 들어가는 반이다. 내가 어떤 레벨인지는 다른 학생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친구의 레벨을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한 명의 담임 선생님의 반에 속한 아이들이 다 함께 같은 과목을 수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과목을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수강신청을 하고 듣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대학 수업처럼 본인의 관심사에 따라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을 적절히 조합해 수강 신청을 한다. 각자의 시간표대로 교실을 이동하면서 수강하기 때문에 서로를 신경 쓸 일도 별로 없다.
필수 과목과 선택 과목
레벨 테스트를 통해 필수로 수강하는 영어와 수학 외에도 체육, 과학, 사회도 필수 선택해야 한다. 음악, 미술, 기술, 가정, 제2외국어 등의 과목은 본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 가능하다. 과목 선택의 폭이 상당히 넓다. 체육은 내가 선택한 시간대에 선택한 같은 학년의 아이들과 함께 듣는다. 한 학기에 수영, 농구, 배구, 라크로스 등 다양한 운동을 한다. 체육시간엔 체육관이나 운동장에 모여 직접 경기를 하면서 규칙을 배운다. 책상에 앉아 체육 교과서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공부하던 한국과는 매우 다르다 (요즘은 한국도 교과서로 체육을 배우진 않겠지?) 과학은 1학년 때는 종합 과학을 듣고, 2학년부터는 생물, 화학, 물리 중 하나를 선택해 심화 학습을 한다. 사회는 지리나 역사 등의 큰 줄기가 있고, 그 안에서도 미국 지리, 세계 지리, 미국 역사, 미국 건국 역사, 미국의 70년대 역사, 세계 역사 등등 세부 과목 중 선택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예습 및 응용
미국에서 경험한 것은 자연스럽게 예습 및 응용을 하도록 하는 교육방식이었다. 수업 전 예습이 중요하다는 것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예습을 하면 배울 내용에 대해 나의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고, 궁금증이 생긴다. 모르는 것이나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부분을 선생님께 질문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예습의 중요성에 대해 익히 들었지만, 실행에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미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예습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수업 전에 선생님은 읽을거리를 숙제로 주고, 학생들은 이를 읽고 리포트를 작성해서 제출하거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그리고 수업시간에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또 배운 내용을 응용해서 이해도를 높이도록 한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수업 중 하나는 70년대의 미국 문화 수업이다. 70년대의 히피 문화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는데, 첫 시간엔 이론적인 내용을 다루고, 다음 시간엔 관련 영화를 봤으며, 이어서 당시의 상황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고, 마지막으로는 조를 짜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연극을 만들고 발표까지 했다. 하나의 주제를 갖고 몇 시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배우니 사회적 현상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건강한 도전 정신과 동기부여
대부분의 수업시간에서 학우들과 경쟁을 해 등수를 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음악 수업에서 나는 승부를 통해 내 자리를 지키는 것과 그를 위한 노력의 필요성에 대해 배웠다. 음악수업은 악기를 다루는 경우, 오케스트라 활동이나 밴드에 속해 수업시간 동안 연주곡을 연습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플루트를 연주했던 나는 관악기로 구성된 밴드(고적대) 활동을 했다. 수업 시간에 다양한 연주곡을 함께 연습하고 인근 학교와 미식축구 경기가 있을 때면 이 멤버와 함께 참석해 연주했다.
이 밴드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사전에 실력 테스트를 거친다. 지휘자 선생님 앞에서 1:1로 악기 연주를 하고, 각자의 역할을 배정받는다. 플루트를 연주하는 친구들은 나포함 10명 정도 있었는데, 소프라노 파트를 연주하는 제1플루트 연주자 6명, 알토 파트를 연주하는 제2플루트 연주자 4명으로 구성됐다. 실력에 따라 1등부터 10등까지 순서대로 배정된다. 이 자리는 한번 정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자기 앞사람에게 도전하면 그 둘은 선생님 앞에서 다시 시험을 보고 그 결과에 따라 자리를 바꿀 수 있다. 나는 제1플루트의 6번째 자리였는데, 내 뒤의 제2플루트의 1번 친구가 나에게 도전하겠다 해서, 나 또한 나의 앞의 제1플루트 5번째 친구에게 도전하고 재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은 아이들에게 건강한 도전 의식과 도태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동기부여 정신을 길러준다.
하나의 정해진 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다니던 중학교에 아버지가 디자인 전문가라는 소문이 났고, 미술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너는 아버지를 안 닮았나 보다”라는 이야기를 수시로 했다. 황당한 것은 완성본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밑그림을 그리고 이제 막 채색을 시작할 때쯤에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의 평가에 나는 괜히 움츠러들었고 학교 미술 시간이 싫었던 기억이 있다. 나 스스로도 수채화나 데생 등에는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도형 배치를 하고 포스터 칼라로 색을 조합해서 색칠하는 등의 작업은 취미로 할 정도로 좋아했던지라 미국에서도 fundamental art 수업을 신청했다. 이 수업은 매 시간 선생님이 준비한 재료로 학생 스스로 즉석으로 주제를 잡고 그 주제에 맞게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작품이 완성하는 데까지는 1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여러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어느 날, 검은색 철판과 침이 준비됐고 침으로 철판을 긁어 ‘빛 표현’을 해보는 시간이었다. 내가 잡은 주제는 ‘내 방의 작은 불빛들’이었고, 약간의 픽션을 섞어 책상에 켜진 스탠드,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스탠드, 그리고 바닥에 켜진 채 놓인 손전등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작품은 아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 작품을 본 선생님은 극찬을 했고, 이 작품을 전시회에서 발표하자고 했다. 작품에 자신이 없었던 나는 살짝 당황해서 “이 작품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나?”라고 계속 되물었다. 선생님은 내가 빛을 표현한 방식이 너무 좋다고 했고, 그렇게 나는 작은 갤러리에서 다른 학생들의 작품과 함께 내 작품을 전시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전시를 위해 이 작품은 특별 제작된 액자에 담겨 갤러리 벽에 전시됐다. 영화에서처럼 나는 내 작품 앞에 서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작품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을 담아 피드백을 해줬고, 이 경험으로 나의 자신감 레벨이 한 단계 오름을 느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작품은 액자채로 아버지의 서재에 놓여 있다.
‘그림은 이렇게 그리는 것이 정석이다’, ‘이런 게 예술이다’라는 어떤 정해진 답을 강요하는 주입식 예술 교육에 익숙했던 나는 이 경험을 계기로 예술에는 답이 없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미국에서의 경험은 예술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하나의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다른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을 찾고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 영국, 미국에서 학창생활을 보낸 경험은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꿈으로 연결됐다. 어릴 때는 그저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조금 더 커서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바꾸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기도 했다. 그래서 교육 관련된 학과로의 진학을 고민하기도 했다. 결국은 어릴 때부터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을 여행하며 관심을 가졌던 호텔 & 관광 관련 학과로 진학했다. 이어 석, 박사 과정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이제는 교육 시스템을 바꿔버리자는 생각보다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지식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물론 학교를 세우는 꿈은 아직도 갖고 있다. 다만, 학교의 형식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었다. 생각의 변화를 가져다준 계기는 경영학 석사 면접장에서였다. 십여 년 전, 석사 입학 면접에서 "자네의 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역시나 파워 당당하게 "언젠가 학교를 세우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3명의 면접관 중 두 명이 이 대답에 황당하다는 듯 웃으시며 "학교 세우는 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아나"라고 물으셨다. 막연히 좋은 교육에 대한 열망만 앞섰지, 정작 이런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땅을 사고 인프라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에 대해서는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순간 부끄러움이 엄습했고, 얼굴이 벌게진 채 멋쩍게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바로 그때 다른 한 명의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나에게 한 줄기 희망으로 남았다.
학교가 꼭 규모가 클 필요도, 돈을 많이 들여 만들 필요도 없다. 일본의 한 브랜딩 학교는 건물 한 층에 교실을 만들고 거기에서 교육을 한다.
요즘 시대에 비추어보면, 이제는 정말 학교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지 않은가? 한국에도 교수님이 말씀하신 건물 한 층을 빌려 교육을 하는 전문학교도 생겼고, 더 나아가 온라인을 통해서도 다양한 지식이 전파되고 있다. 이제는 좋은 콘텐츠만 있다면 누구든지 학교를 만들고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세상이다. 관건은 팩트 기반으로 사람들에게 유용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로 어릴 적 막연하게 세웠던 꿈, 나의 인생 목표도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살아보니 목표 달성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완벽한 준비와 타이밍은 없다. 조금은 부족하고 망설여지더라도 실행을 하면서 수정해나가는 결단이 필요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