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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 박사 Dec 22. 2021

이론과 실무를 아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

미국에서의 경험은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도 점수에 맞춰 가려는 생각보다 내가 진짜 공부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아이들이 즐겁게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세우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교육과 관련된 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또 하나는 어릴 때부터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을 여행하며 관심을 갖게 된 호텔 & 관광 관련 학과였다. 특히 콜럼버스 휴일을 끼고 가족과 함께한 라스베가스 여행은 나에게 호텔 콘셉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호텔의 로비와 로비 화장실만 봐도
이 호텔의 디자인 콘셉트를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이때 나의 관심사는 호텔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구경하며 콘셉트를 연결 지어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비즈니스 고객을 대상으로 호텔은 드라마틱한 콘셉트를 갖고 운영하기가 쉽지 않지만, 'Entertainment capital of the World'로 불리는 라스베가스에는 독특하고 확실한 정체성의 호텔이 모여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 많은 호텔을 직접 투숙해볼 수는 없어 호텔 로비와 로비 화장실, 쇼핑 아케이드를 둘러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신기하게도 트레져 아일랜드는 호텔 로비와 로비 화장실의 인테리어가 보물섬으로 향하는 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었고, 쇼핑 아케이드의 직원들은 선원 의상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시저스 팔레스의 로비와 화장실은 로마시대의 건축을 활용한 인테리어 디자인에 쇼핑 아케이드 직원 유니폼은 로마시대의 튜닉과 토가 스타일이었다. 호텔을 지을 때 하나의 주제로 일관성 있게 곳곳을 디자인한 것을 확인하는 재미에 신나게 돌아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학시절 세운 목표

호텔관광경영학과로 진학한 나는 대학시절 공부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호텔경영론, 객실관리론, 와인과 소믈리에론, 주류학, 공간관리론, 외식사업관리론, 호텔마케팅 등 실생활에도 유용하고 공부하기도 재미있는 과목이 많아서 행복했다. 학기 중에는 수업을 듣고, 방학 중에는 호텔에서 실습을 하거나 인테리어 디자인, 웹디자인 등을 배웠다. 호텔에서 실습을 해보니 업계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고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현장에서 직접 사용하는 지식 간의 괴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괴리를 좁히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가가 되자!


대학교 4학년 2학기 졸업하기 전 호텔에 취업했다. 취업 소식을 알리러 지도 교수님을 만나 뵈었는데, 최근 우리 학과가 코넬 대학교 호텔경영학과와 자매결연을 맺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세종대학교에서 2년을 마치고 코넬에서 2년을 공부하면 두 학교로부터 졸업장을 받는 좋은 프로그램이라면서 지원해보지 않겠냐고 하셨다. 분명 좋은 기회이긴 한데, 나의 머릿속에는 ‘졸업학기인데 학교를 2년을 더 다녀야 하나? 그 기간이면 실무 경력을 2년 반을 쌓을 시간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실무경력을 쌓기로 결정했다. 그 몇 년 늦어지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는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여러 의사결정 중 이불속 하이킥을 부르는 순간 중 하나다.



첫 직장의 경험

일단 현장을 알아야 유용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 생각했다. 호텔 산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무직이 아닌 대고객 업무부터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그 당시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JW Marriott Seoul(강남 메리어트)의 프런트 오피스에서 3년 동안 경력을 쌓았다. 학교 다닐 때 조선호텔 프런트 데스크 및 리츠칼튼 호텔 GRO(Guest Relations Officer)로 실습을 해봐서 호텔 업무가 낯설진 않았다. 그러나 실습생 신분으로 일하는 것과 직원 입장으로 일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실습생은 직원들이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역할이 주 업무고 한가할 때 가끔씩 고객 응대하는 수준이었지만, 직원으로 일하는 건 호텔을 대변해서 행동하고 모든 업무를 홀로서기로 처리 해야 했다. 또 9시간을 종일 서서 일하는 것은 신체적으로도 무리가 많이 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각종 고객 컴플레인을 상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24시간, 365일 근무해야 하는 프런트 데스크에서 3교대 업무를 두루 경험하고, 부서 내 신입생 교육 담당을 맡았고, 당시 최연소 룸스 컨트롤러(Rooms Controller)가 됐다. 


프런트 데스크의 꽃 룸스 컨트롤러

룸스 컨트롤러는 스트레스는 많지만 프런트 데스크 업무의 꽃이다. 호텔은 당일의 성과를 객실 점유율로 판단하는데, 100%의 객실 점유율(호텔의 모든 객실을 판매한 상황)을 달성하면 본사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점유율 100% 달성은 프런트 데스크, 예약실, 하우스키핑, 인근 호텔의 협조까지 필요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이런 성과를 내기 위해 최적의 객실 배정을 하는 룸스 컨트롤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룸스 컨트롤러는 매니저 아래 시니어 레벨이 담당하는 역할로 당일 조의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업무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관리하는 업무를 한다. 프런트 데스크 사무실에서 컴퓨터 시스템으로 객실 점유율 및 예약 상황, 고객 요청 사항, 타 부서에서 남긴 메시지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팔로업하며 상황에 맞춘 최적의 객실 배정을 한다. 예약된 내역을 보고 신규 고객인지 재방문 고객인지를 확인해서 프로필 정리를 하는 것부터 VIP 고객, 그룹 및 단체 고객, 장기투숙 고객별로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객실로 배정하는 업무. 고객의 요청이나 외부 업체의 요청, 혹은 호텔 측에서 제공하는 선물(과일바구니, 초콜릿, 와인 등)의 세팅 여부도 누락되지 않게 확인해야 하므로 꼼꼼함이 요구된다. 또한, 당일의 상황뿐 아니라 3일 앞 상황까지 미리 내다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결단이 필요한 자리다. 근무하는 내내 컴퓨터 화면을 보며 씨름하면서도 프런트 데스크로 오는 거의 모든 전화를 받고 일처리를 해야 하는 자리라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이 업무를 담당하면서 얼마나 많은 전화를 받았는지, 개인 폰으로 전화가 와도 습관적으로 "안녕하십니까, JW Marriott Seoul 프런트 데스크..."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와서 당황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분명히 하루 종일 앉아서 일처리를 했는데, 퇴근할 때 거울을 보면 머리가 산발이 되어 있고 화장은 반쯤 지워져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메리어트의 다양한 직원 교육

"직원을 잘 돌보면 그들이 고객을 잘 돌볼 것입니다(Take care of associates and they will take care of the customers)"의 경영 철학을 가진 빌 메리어트(Bill Marriott)는 직원 교육 및 내부 브랜딩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메리어트 호텔은 서비스 및 브랜드 교육을 체계적으로 잘하는 호텔로 유명하다. 주기적으로 실행되는 각종 서비스 및 브랜드 교육은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습득해 브랜드 메시지를 고객에게 전할 수 있게 한다. 메리어트 브랜드에 대해 배우는 신입 교육은 입사 당일 교육, 30일, 90일 교육의 3단계로 나뉜다. 또 3-4개월마다 각종 서비스 교육이 행해진다. 서비스 교육은 다양한 부서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받는 것으로 서로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메리어트 본사에서 제공되는 교육 내용으로 진행하기도 하지만, 호텔 자체적으로 협동심을 기르거나 자신 및 동료를 이해할 수 있는 심리 검사(DISC 성향 검사 등)를 실시한다. 또한, 모든 직원은 입사할 때 직원카드를 받는데, 이는 메리어트의 브랜드 및 서비스 정신을 담은 'Spirit to Serve'라는 원칙이 적혀 있다. 크기는 유니폼이나 수트 주머니에 딱 맞는 크기라 직원들이 심심하거나 궁금할 때 언제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각 부서에서는 업무 시작 전에 매일 아침 교육팀에서 제공하는 데일리 패킷(Daily Packet)을 함께 모여 읽는 시간을 갖는다. 데일리 패킷에는 메리어트의 'Spirit to Serve'문구가 한 개씩 표기되고, 전 세계 매리어트 소식, 사내 소식, 호텔 점유율, VIP 리스트, 주요 행사들을 포함한다. 이는 직원들이 업무를 시작함에 앞서 메리어트의 서비스 원칙을 상기할 수 있게 하고 부서원 간의 정보 공유를 원활히 한다. 또한 '15분 교육'은 모든 직원이 정해진 스케줄과 주제에 따라 부서 업무 중 빈번하게 발생하는 실수나 중요한 업무, 새로운 정보 등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와서 업무 시작 전 공유하는 매일 교육이다. 이렇게 교육한 내용은 파일철을 해 부서 폴더에 보관해두고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누군가는 업무로도 바빠 죽겠는데 이런 교육까지 받아야 하냐고 불평하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비금전적인 혜택으로 여겨졌던 활동이었고, 3년의 회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기도 하다.



공부를 더하고 싶어

회사 업무가 능숙해지고 후배들이 많아질 때쯤 공부를 하고 싶었다.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경영학 지식을 더하고 싶어 MBA에 지원하기로 했다. 이런 결단을 내린 것이 10월 초였고, 마침 국내 MBA는 10월 말까지 지원서를 제출하면 합격자에 한해 11월에 면접을 보는 일정이었다. 해외 MBA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시간이 더 필요할 테니 일단 국내 MBA에 지원해보고 탈락하면 제대로 준비해서 해외 MBA를 도전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토익, 토플, IELTS를 거의 매년 봤기 때문에 영어 점수는 준비되어 있었고, 회사 다니면서 틈틈이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내가 생각한 국내 MBA 옵션을 2가지였는데, 하나는 당시 처음 시작하는 서울대학교의 1년 과정과 KAIST의 2년짜리 과정이었다. 서울대학교 과정은 방학 없이 5학기로 굉장히 빡빡하게 운영되는 과정이었다. 석사 과정 중 방학 때 실습도 하고 석사 논문도 작성하고 싶었던 나는 후자로 선택했다. 결단을 내리고 원서를 내고 면접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여 나의 20대 중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나의 핵심역량 키우기

입학해서 보니 동기들의 연배는 나보다 평균 3-5살 위였고, 직급은 대리, 과장 급이었다. 내 또래들도 사무직 출신이라 보고서 작성 등에 매우 능숙했다. 내가 다녔던 회사의 부서는 보고서다운 보고서를 작성하는 환경도 아니었고, PPT를 활용한 발표를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나의 문서 작성 실력은 대학생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실력으로는 팀 프로젝트를 할 때 누가 되겠다는 생각에 나만의 핵심역량을 키워야겠다 생각했다. 당시 팀 프로젝트를 할 때 PPT장표를 만드는 것은 귀찮아서 다들 기피하는 일이었는데, 나는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았다.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기에 장표를 보기 좋고 깔끔하게,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연습을 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큰 자산으로 남았다. 


내 적성에 맞는 진로 탐색하기

내 적성에 맞는 진로를 탐색하기 위해 방학 동안 실습과 아르바이트를 했다. 마침 1학년 겨울방학 때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에서 대고객 서비스 경험이 있는 인턴을 모집했고 3달간 모바일 2.0과 퓨쳐 TV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모바일 2.0 프로젝트는 휴대폰 안에서 AR 기술을 활용해 유용한 정보를 찾고, SNS에 게시하는 등의 활동을 예측하는 데스크 리서치였다. 당시는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전이었던 시절이었기에 이런 결과 도출이 매우 신기했다. 퓨처 TV 프로젝트에서는 사람들이 TV를 활용하는 행태의 변화에 관한 데스크 리서치와 필드 리서치를 병행했다. 방송을 TV를 보는 것 외에 다양한 용도로 TV를 활용하는 사람들, TV 없이 컴퓨터로 미디어를 보는 사람들 7그룹을 대상으로 인터뷰 및 그들이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법을 관찰한 후 앞으로의 TV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도출했다. 몇 년 후 내가 직접 참여했던 프로젝트의 결과로 신제품 출시가 되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고도 뿌듯했다. 


나의 또다른 관심 산업 중 하나는 명품 업계였고, 2학년 2학기 논문 작성하던 학기에 우연히 구찌 한국 지사장 비서 및 인사업무 자리에 단기 아르바이트 공고가 났다. 이에 짧게 명품 업계를 경험할 수 있었고, 매력적인 업계이긴 하나 나와는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의 기존 경력과 석사 때 공부한 내용으로 내가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는 역시 호텔업계였다. 운명처럼 내가 관심 갖고 있던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식음전략기획팀'을 신설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인터컨티넨탈 호텔은 GS그룹이 소유한 호텔로 외국계 체인 호텔에서 위탁경영을 하는 곳이었다. 보통 외국계 호텔에서 전략기획 업무를 하는 부서가 별도로 없기 마련인데, 이 호텔은 독자경영을 준비하기 위해 이런 팀을 신설했기에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렇게 20대 후반의 나의 새로운 삶의 한 페이지가 시작됐다. 물론 새로운 직장에서 장밋빛 미래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경력직 입사가 처음이었던지라 입사하면서 경력 네고를 잘못한 것을 깨닫고 한동안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회사에서 역시 나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은 성과를 내는 일. 내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이런 노력은 새로운 도전과 기회로 나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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