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군데 지원하고 2군데 면접 본 후기
학술 논문이 출판된 후부터 학교에서 원하는 스펙도 볼 겸 미국 대학 교수 자리 공고를 관심 있게 보기 시작했다. 보스턴과 뉴욕을 오가며 케이스 발굴 및 칼럼 작성, 브랜딩 컨설팅을 하며 보스턴에 있는 대학 교수 채용 공고에 하나둘씩 지원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Tenure track보다 풀타임 기간제 조교수 자리를 위주로 제출했다. 총 7개 대학에 지원했고, 면접 연락이 온 곳은 세 곳으로, 그중 두 대학은 풀타임 테뉴어 트랙이었고, 한 곳은 겸임교수를 채용하는 곳이었다. 테뉴어 트랙의 두 개 대학은 보스턴에서 차로 편도 30분 - 1시간 20분을 이동해야 하는 곳이었고, 겸임교수 자리는 보스턴의 시내에 위치한 곳이었다. 난생처음 본 대학 교수 포지션 면접, 드디어 EAD(Work Permit_일할 수 있는 허가증)를 활용할 수 있을까?
미국의 교수 채용 프로세스는 단순히 직원으로서의 교수를 채용하는 것이 아닌, 함께 일하는 동료를 채용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쫒기 듯한 채용 스케줄보다 몇 개월에 걸쳐 다각도의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테뉴어 트랙의 두 곳은 팬데믹 기간인 2021년에 지원했기에 Zoom으로 면접 진행했고, 겸임교수 공고가 난 대학은 2022년에 진행해 대면 면접이었다.
교수 포지션에 지원할 때 중요한 것은 공고가 난 자리와 나의 연구 분야와의 연관성이다. 아무리 훌륭한 경력과 실적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공고가 난 자리와 무관한 것이라면 면접까지 갈 가능성이 낮다. 보스턴에 있는 대학의 경영학과에서는 빅데이터, 데이터 분석 쪽을 전공하고 연구하는 포지션이 많이 나왔다. 세부 전공으로 마케팅학과에서도 역시 데이터 분석, 디지털 마케팅 쪽 포지션이 많았다. 나의 관심 연구 분야인 브랜딩 전략 쪽은 공고 자체도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 그리고 내가 지원한 대부분의 학교 공고 Ph.D와 DBA 모두 지원 가능하다고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DBA는 교수 지원할 때 불리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었는데, 그렇지 않은 걸로!! 연구 분야 연관성과 연구 실적이 있다면 둘 간의 차별은 없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다.
그래도 내가 지원한 일곱 학교는 어떻게든 내 연구와 경력과 연결 지을 수 있는 곳이었다.
2021년에 지원학 학교들
A: 전략 및 국제 비즈니스(Strategy and international business)
B: 환대산업(Hospitality)
C: 기업가정신 (Entreprenuership)
D: 마케팅(Marketing)
E: 마케팅(Marketing)
F: 경영학과/환대산업(Business Administration/Hospitality)
2022년에 지원한 학교
G: 마케팅 (Marketing) - 마케팅 원론 & 소비자행동론
일곱 개 학교 중 굵은 표시한 세 곳에서 면접 요청을 받았다.
준비해야 할 지원서류는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다음의 항목들을 준비하면 큰 무리가 없다.
Cover letter(자기소개서)
Curriculum Vitae(이력서)
Statement of teaching philosophy(강의 철학)
Statement of contribution to diversity(다문화 기여문)
Teaching evaluation scores(강의 평가 점수)
Referee list(추천인 명단)
Transcript(성적표)
Writing sample(작문 샘플)
지원서 작성을 할 때 학교 교훈, 역사, 교수진 명단 및 이력, 개설 과목, 외부 평가 등을 살펴봤지만, 면접 연락을 받으면 다시 한번 더 꼼꼼하게 살핀다. 현재 교수진의 전공과 연구 분야도 꼼꼼하게 살펴보고, 내가 이들과 함께 일할 때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 보는 것이 필수다.
1차 면접에서는 내 연구 분야에 대한 발표 및 강의 시연, 질의응답을 한다. 학교에서 정해주는 것에 따라 발표 준비를 하면 된다. 학교에 따라 1시간 발표를 하는 경우도 있고, 짧게 2개의 주제로 각각 10분-20분 발표를 하기도 한다. 그에 맞게 준비할 것. 미국 대학은 질문에 관대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문의하는 것이 좋다. 괜히 눈치 보다가 준비했어야 하는 것을 놓치는 불상사가 없도록 할 것.
1차 면접 - 캠퍼스 투어 - 교수진과 1:1 만남 등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이 역시 학교마다 다르다. 내 경우, 위 F 대학은 갑작스럽게 교수를 채용하는 케이스라 1차 면접이 곧 파이널 면접이었다. E 대학은 2022년 9월부터 근무하는 포지션이었는데, 1차 면접을 2021년 8월에 봤다. 2022년에 지원한 G 대학은 MS팀즈로 1차 인터뷰를 거쳐 캠퍼스 방문해 교수진들과의 심층 면접 및 강의 시연까지 진행됐다.
면접에는 학과의 교수들이 참여해서 1인당 최소 1-3개씩 질문하기 때문에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질문도 많은 편이다. 내가 면접 본 세 개 대학에서 받은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겹치는 질문도 꽤 많았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 비자 지원 문제와 언제까지 보스턴에 거주할 것인지에 대한 이슈가 있으니 현명하게 대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주권이 있거나 취업 비자가 해결된 경우는 문제없음).
보스턴에서 현재 하고 있는 일은?
한국에서 가르쳤던 과목 + 마케팅 외에 다른 경영학 과목도 가르칠 수 있는지?
나의 관심 분야와 현재 진행 중인 연구
교수가 되고 싶은 이유
이 학교에 지원한 이유와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
나의 경쟁력은?
다양한 배경과 나이대의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Diversity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
현 대학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학생들을 학교에 engage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학생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게 할 것인가?
수업 커리큘럼은 어떻게 계획하는가?
수업 진행 방식에 대한 질문
학교 수업 외에 학생들과 시간을 보낸 경험은?
학교 수업을 진행할 때 힘들었던 점이나 실수했던 부분, 거기서 얻은 깨달음은?
수업시간에 활용한 기술 (Technology)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행동이나 노력
성적 평가는 어떻게 했는가?
온라인 수업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최신의 업계 트렌드 정보를 어떻게 얻고 있는가?
취업 비자가 있는지 (미국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인지, 학교에서 비자를 해결해 줘야 하는지 여부)
언제까지 보스턴에 살 예정인지
자기소개서나 이력서에서 흥미로운 부분에 대한 추가 질문
내가 학교에 할 질문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이는 해당 학교에 대한 나의 관심도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학교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의 문화, 이 포지션에 원하는 사람(기대하는 바), 학과에서 설정한 향후 5년간의 목표 및 비전, 졸업생들은 어떤 진로를 선택하는지,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만족도는, 교수를 위한 연구 지원 및 혜택 등의 질문을 준비했다.
거의 1년 반 동안 외부와 차단된 채 집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영어로 대화를 하려니 처음에는 꼬이고 정신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졌다. 면접 전에 최대한 입을 많이 풀어놓고 물도 옆에 준비해 놓자. 면접에 앞서 카메라에 자신이 발표하는 모습과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을 담아보고 리뷰해 볼 것!
1차 면접 때 발표 및 강의 시연과 질의응답 순서를 인터뷰이가 선택할 수 있을 경우, 무조건 발표 및 강의 시연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질의응답을 하길 바란다. 내 경우, 첫 번째 면접에서 질의응답을 먼저 했는데 잘못된 선택이었다. 강의 시연/발표를 먼저 하면 전반부에서 조금 망친 것 같아도 질의응답으로 분위기를 좋게 만들면서 다음 기회를 노려볼 수 있다. 그런데, 강의 시연/발표를 나중에 하면 만회할 기회가 없다. 그리고 면접 자체가 되게 애매하게 끝나서 후회가 남더라. 모든 강의에서 질의응답을 뒤로 미루는 것은 이유가 있다.
인터뷰 질문은 인터뷰이를 평가하고 그의 성향을 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생각지 못한 것 등에 대한 영감을 얻는 과정으로도 활용된다. 질문을 하고 나의 답변을 진지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화면을 통해서도 느껴졌다. 세 학교 모두 면접에서 나의 답변에 "고맙다"는 답변을 꼭 했고, "좋은 방법이다. 고맙다"라는 코멘트를 듣기도 했다. 인터뷰이를 굉장히 존중하는 느낌. 비록 탈락하긴 했지만, 면접 후에 이 학교들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이 생겼다.
면접을 보고 나니 지원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잡혔다. 또, 지원 공고를 보면 내 경력과 연구 내용으로 지원해 볼 승산이 있는지의 여부가 어느 정도 예상된다. 뭐든지 의미 없는 경험은 없다. 면접에서 탈락했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나와 맞는 곳이면 어떻게든 이어질 것이고, 그렇지 않은 곳이면 빨리 접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 번째 학교인 G대학에 지원할 때는 공고를 보자마자 '이 자리는 나를 위한 자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뭔가 확신이 든 만큼 G대학의 면접은 모든 것이 편안했다. 특히 팀즈로 진행한 1차 온라인 면접이 끝날 때쯤 "혹시 풀타임 교수 자리에는 관심이 없는지"라는 질문을 받았다. 알고 보니 이 대학에서는 풀타임 포지션 교수 공고를 냈으나 한동안 적임자를 찾지 못해 파트타임 겸임교수로 공고를 냈고, 그 공고를 보고 내가 지원한 것이었다.
겸임교수로 지원했지만, 풀타임 조교수에 마케팅 학과장 자리를 제안받았기에 다른 두 대학보다 더 심층면접이었고 역할에 따른 추가적인 질문도 받았다.
학생들을 교실 밖에서도 engage 할 수 있는 방법?
채용업무를 진행해 본 경험 유무 (겸임교수를 채용해야 하니까)
새로운 과목 커리큘럼 개발 경험 유무
학과장으로서 교육뿐 아니라 학교 외부 사람들과 컨택하면서 관계를 쌓는 것도 가능한지 여부
학생들 인턴십 과정 지도 가능 여부
수업 진행 및 평가 방식 상세히 설명 요청
마케팅학과에 새로운 과목을 추가해야 한다면 어떤 과목이 적합할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어려웠던 점과 좋았던 점
장시간의 면접이 끝났고 강의 시연이 이어졌다. 강의 시연은 교수진과 선발된 학생들 앞에서 진행됐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5분.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내용으로 진행하는 것이었지만, 15분 안에 내가 원하는 바를 전달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내용을 너무 압축하면 알맹이가 없어지고, 설명을 많이 넣으면 시간이 부족하니.. 내 전문분야인 브랜딩에 대한 기초 지식을 전달하고 버거킹의 리브랜딩 사례로 마무리를 했다. 생소한 내용이면 이해하기 어려우니 브랜딩의 기초 지식에 대한 유인물도 준비해 갔다. 다행히 반응은 좋았고, 흥미진진한 눈빛들에 힘입어 연습 때보다 편안했다. 강의 시연 후에는 인사행정 담당자로부터 학교에서 제공하는 혜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캠퍼스 투어를 진행했다. 이 학교는 보스턴의 대표적인 부촌 중 하나인 백베이 지역의 브라운스톤 건물의 캠퍼스로 1800년대 중후반에 지어져 1890년대 후반까지 가정집으로 사용되던 곳이라는 역사가 담긴 곳이다. 고풍스러운 느낌이 가득한 캠퍼스를 투어 하는 내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남기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고, 이곳에서 일하면 어떨까를 상상하게 됐다.
G대학의 캠퍼스 투어까지 마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최종 오퍼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나의 EAD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최종 오퍼를 받자마자 2022년 6월에 뉴욕에서 만난 유명 호텔 기업 디렉터로 일하는 선배가 한 말이 생각났다.
이곳에서 나에게 기회를 준 사람들 덕분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고, 그 기회를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초등학교때 영국에서, 고등학교 때 미국에서 몇 년간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미국 학교 졸업장이 없는 외국인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게다가 나는 언제까지 보스턴에 있을지도 불명확한 언젠가는 떠나야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가능성을 보고 기회를 준 G대학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작은 기회라도 허투루 생각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고 내가 적임자인 자리라면 작은 기회가 큰 기회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임을 깨닫는 기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