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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by 징계 Mar 06. 2025
열리지 않는열리지 않는

나는 송파구 가락2동 극동 아파트 6동 102호에서 20년을 살았었다.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산 첫 우리 집이었다. 입주 당시 여섯 살이었던 나는 유치원이 옮겨진다는 안 좋은 기억과 엄마가 행복해하는 좋은 기억이 공존한다. 그 후, 나의 모든 유년기, 청소년기의 기억은 극동 아파트와 함께이다. 아직도 나는 우리 집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극동 아파트를 회상한다. 


많은 추억이 깃들어 있는 극동 아파트를 떠나 유학생활을 하고 있던 중에 아빠는 대장암 선고를 받으셨다. 나는 이 사실을 아빠가 암이 완치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랑 아빠는 유학 중이던 누나와 내가 공부하는데 신경 쓰이게 하지 않으려고 완치되실 때까지 숨기셨다. 고마운 마음이지만 한 편으로는 섭섭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힘든 시간을 옆에서 함께 하지 못함은 꽤나 큰 미안함으로 평생을 남아 있기도 한다. 특히나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라면 더욱 그렇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년퇴직 후 힘겹게나마 지켜오던 아빠의 건설 사업은 연이은 실패 속에 사기까지 당하며 결국 도산해 버렸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고, 유학 생활에 대한 지원이 현저히 줄었다. 나는 비행기 티켓을 살 여력이 없어 몇 년간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고 했다.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5년 만에 한국에서 방학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에 왕복 비행기표 값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지만 가족과 친구들이 너무도 그리웠다. 

  

한국에서의 하루하루는 너무 소중했다. 매일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하루는 친구들과 술을 한잔 하고, 새벽 즈음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집 열쇠가 없다는 걸 알았다. 당시는 경비실에 열쇠를 맡기고 다니던 시절이라 혹시나 엄마가 경비실에 맡겼을까 하고 아파트로 들어가 경비 아저씨께 여쭤봤다. 열쇠는 맡기지 않으셨다. 벨을 눌러서 부모님을 깨울까 하다가 발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그날 같이 술을 마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집에 못 들어간다. 술 한잔 더 하자.”


그 친구는 차를 돌려서 극동 아파트로 왔고, 나는 친구를 보자 왈칵 눈물이 났다.

우는 나를 보고 당황한 친구는,


“아니 벨 누르고 들어가면 되지, 왜 애처럼 길바닥에서 집에 못 들어간다고 울고 있는 건데?”


“우리 집이.. 우리 집이… 아니야.”


연이은 사업 실패와 사기를 격은 아빠는 사업을 지키기 위해 집을 담보로 돈을 쓰셨고, 회사가 도산하면서 결국 극동 아파트는 경매에 넘어가게 된 상황이었다. 이를 한국에 와서 알게 되었고, 그 순간 그 설움이 복받쳐 올라왔던 것이다. 우리는 근처 호프집으로 가서 어묵탕에 소주를 시켰다. 술잔을 기울이며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친구는 오늘은 사우나에 가서 자자고 했다. 두어 시간 후, 우린 얼큰하게 취해 사우나로 자리를 옮겼다. 그 친구는 사우나에서 맨 몸으로 나와 함께 있어 주었다. 우리는 딱히 많은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늦은 밤, 홀로 어두운 골목을 걸어 본 적이 있는가? 혼자라는 것은 외로움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두려움 마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함께 걷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외로움도, 두려움도 잊을 수 있다. 단지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날의 기억은 어떠한 언어로 느껴지는 위로가 아니었다. 서로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대화로 이어갈 위로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날의 분위기는 내가 지금껏 받았던 그 어떤 위로의 언어보다 따듯하고 강렬했다. 때론 누군가의 존재 자체가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 존재는 어디에나 지을 수 있는 튼튼한 집이다. 나의 친구들은 우리 집이다. 나의 가족들이 우리 집이다. 나는 지금 우리 집에 산다. 


때론 같이 울자

때론 같이 웃자

사우나의 온탕이 

너의 마음이구나


차디찬 냉탕 기운이

나를 깨웠구나

친구의 말이구나


우리 집에 초대할게

고맙구나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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