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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by 징계 Mar 21. 2025
삶의 가르침

그 난리를 치르고 집에 들어간 나는 샤워를 하고 잠을 청했다. 새벽 5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막 잠이 들려는 순간 핸드폰 전화벨이 울렸다. 전날 함께 술을 마신 여자 선배였다. 그녀는 울먹이며 나를 불렀다.


“재훈아..”


“응.. 어디예요? 괜찮아요? “


"응. 난 괜찮아. 지금 여기 경찰서야. 송파 경찰서.."


"그래도 다행이다. 난.. 또…"


"지금 길게는 얘기 못할 것 같아. 지금 경찰서로 와 줄 수 있어?"


"응. 가야죠. 금방 갈게요."


"미안해. 경찰들이 주동자를 얘기하라고 해서 네 이름 얘기할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김 XX도.. 같이 있었다고 했어"


"응응. 잘했어요. 지금 바로 가면 20분 정도 걸려요. 걱정 말아요."


나는 한숨을 크게 한번 쉬고, 부모님 몰래 집을 나섰다.


엄마한테 얘기를 했어야 하나?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다른 친구들은 안 와도 되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경찰서 앞이었다. 아까랑 다른 의경이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그 의경에게 얘기하자 그 의경이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잠시 후, 사복형사 한 명이 나오더니 나에게 최재훈 학생이냐고 물었다. 맞다고 얘기하자 바로 나에게 수갑을 채웠다.


그전에도 파출소는 여러 번 가서 훈방을 받고 나오곤 했지만, 경찰서는 처음이었다. 신기하긴 했지만 그런 걸 즐길 여유 따윈 없었다. 영화처럼 취조실 같은 데는 들어가지 않았고, 그냥 넓은 사무실 같은 공간에 한 형사 책상 앞에 앉았다. 그 형사 뒤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여자 선배의 뒷모습이 보였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 주먹을 꽉 쥐며 조용히 말했다. 


"씨발.."


그 모습을 본 형사가 말했다. 


"왜 억울해?"


"아니요.. 미안해서요."


"그러게 미안할 짓을 왜 해!!??"


경찰이 소리치는 소리에 여자 선배가 내 쪽을 돌아봤다. 그녀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마 그녀도 내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듯했다. 내 담당 형사는 날 자리에 앉히고 조서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꾸밈없이 다 얘기를 했고, 내가 주동자가 맞다고 했다. 그랬더니 나는 특수절도, 음주운전, 폭행을 저지르고 긴급 체포된 놈이 되었다. 억울했다. 나는 차를 훔치는 데 성공하지도 못했고, 운전을 하지도 않았다. 폭행은 인정. 그리고 나는 자수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긴급 체포란다. 억울했지만 법이란 게 그렇단다. 두 명 이상이 계획 하에 물건을 훔치려 한다면 특수절도에 속한다. 도구를 이용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음주 후 운전석에 앉아 있으면 음주운전이 된다. 긴급체포라는 부분 역시 나는 형사들에게 사전 영장 없이 긴급 체포 된 게 맞았다. 자수에 대한 감형은 그다음 문제인 것이다. 죄지은 놈이 억울은 무슨 억울이냐 싶었다.


조서를 꾸미고 있는데 사건 당시 뒤늦게 망을 봤던 친구 역시 경찰서 문을 들어섰다. 피해자 측에서 3명 이상이 있었다고 해서 여자 선배는 그나마 마음 튼실한 친구 하나를 더 부른 것이었다. 우리는 모든 조서를 꾸민 후, 손에 수갑을 찬 채로 나선형 철제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아래에서 위로 급히 도망치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곳은 유치장이 있는 공간이었다. 나랑 망을 봤던 친구는 칙칙한 방으로 끌려가 온몸을 수색당하고, 무기나 자살 도구가 될 만한 모든 것들을 압수당한 채 옷만 입고 유치장 안으로 들어갔다. 당시 힙합 바지를 질질 끌고 다니던 나는 벨트를 뺏기는 바람에 줄줄 흘러내리는 바지를 부여잡고 있어야만 했다. 유치장 안에는 약간의 피가 묻은 흰색 티셔츠를 입은 30대 초반의 남자가 있었다. 키는 작았지만 아주 다부져 보였고, 인상도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건달의 모습이었다. 그는 우리를 보자마자 한마디 던졌다. 


"신고식 해야제."


"….."


우린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러자 그는 발가락으로 걸레 집어 우리에게 던지며,


"여기 한번 싹~ 딲아라이."


"넵!"


우린 둘이서 한 걸레를 쥐고 바닥을 닦으려 하자


"야! 한놈은 저기 화장실 청소해야제~"


"넵!"


나는 흘러내리는 바지를 움켜쥐고 허리 높이까지 올라오는 벽 하나에 가려져있는 양변기를 닦았다. 서러웠지만 생각해 보니 좀 웃기기도 했다. 신고식이 고작 청소라니. 청소가 끝날 때 즈음, 점심시간이 됐는지 식사가 나왔다. 호명하며 넣어주는 식판의 음식이 꽤나 맛있어 보였다. 하지만 우리 음식에 비해 건달 아저씨의 식판은 굉장히 초라했다. 식사를 가져온 경찰은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건달 아저씨가 아마 우리 부모님이 특식을 신청했을 것이라 말했다. 우리는 건달 아저씨에게 같이 먹자고 했고, 아저씨는 마치 생일 선물을 받은 초등학생처럼 기뻐하며 반찬을 나누어 먹었다. 아저씨는 특식에 대한 고마움이었는지 자신의 영웅담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처럼 낄낄대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옆방에 있던 여자 선배가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지 싶을 정도로 우리가 유치장에서 너무 편안해 보였다고 했다. 


어째 저째해서 우리 셋은 이틀 만에 유치장에서 풀려났다. 말은 어째 저째라고 대충 썼지만, 사실 부모님들이 피해자와 만나 합의를 했고, 검찰과 경찰 쪽 지인들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추후에도 자세한 얘기는 부모님한테 묻지 못했다. 괜히 좋지 못한 일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킬 필요 없을 것 같아서였다. 나는 집에 가자마자 밥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았다. 그런 나를 보고 아빠가 소리쳤다.


"저 새끼 갖다 치워!!"


나는 일주일 정도 깨끗이 치워졌다. 그리고 민사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기에 우리 범죄자 셋은 사이좋게 서초동 법원검찰청의 한 검사실에서 반성문을 쓰고, 컴퓨터 전과 기록을 남긴 채 나왔다. 컴퓨터 전과 기록이란, 일정 기간이 되면 범죄 기록이 말소가 되는 유형을 말한다. 그 후 나는 다시 밥상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 현재 나의 범죄 기록은 사라졌다. 모든 것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가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 기억 속엔 너무도 선명히 남아있다. 유치장을 내려가던 계단, 반원형의 유치장 구조, 냄새, 건달 아저씨의 티셔츠, 핏자국, 변기의 오물, 내가 먹었던 특식들. 어떻게든 지우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 실수와 과오를 기억하려고. 내가 유치장 안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처럼 시시덕거리고 있는 동안, 밖에서 마음 졸였을 부모님을 생각하며.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평생을 경험을 통해 학습하며 살아간다. 인간이 경험하고 사고하는 모든 것은 자신 안에 축적되어 자아가 된다. 학습하지 않는 인간은 제자리걸음을 걸을 뿐이다. 아니, 학습하지 않는 인간은 사회적 지위와 책임에 따라 인간 사회 자체를 와해시킬 수 있다. 학습하지 않는 대표이사에 의해 조직이 와해되는 것을 나는 직장 생활을 통해 경험했다.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고 한다. 역사를 알면 과거의 인간 생활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현재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현재를 잘 이해한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판단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나온 삶의 역사에는 많은 배움의 교본들이 있다. 이는 내 현재의 모습을 이해하는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미래의 내가 나아갈 길에 대한 길라잡이가 된다. 나의 삶을 학습하자.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나의 세상이려니 했다.

내가 주인공이려니 했다.

아니

아니

세상이 매섭더라

무대는 차갑더라

그래,

그래

그게 삶이더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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