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아들이 저녁식사 도중 이런 말을 했다.
“아빠,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가 자전거 타고 무단횡단 했다고 자랑했어.”
깜짝 놀랐다. 벌써 이런 치기 어린 영웅담을 늘어놓고 용감한 척하는 나이가 된 건가?
“아들. 그 얘기 듣고 어땠어?”
“잘못됐다고 생각했어.”
“아들은 옳은 행동, 잘못된 행동 잘 알지?”
“응.”
“앞으로 아들이 친구들, 특히 남자 친구들하고 놀다 보면 이런 일 들이 많이 있을 거야.”
“어떤 일?”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자랑처럼 얘기하는 일. 무단횡단을 하고 용감한 척하는 친구도 있을 거고, 약한 친구를 때리고 센 척하는 친구도 있을 거야. 또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고 멋진 척하는 친구도 있을 수 있어. 이런 친구들만 피해서 놀 수는 없을 거야. 때론 이런 친구들과 놀다가 아들 역시도 잘못된 행동들을 하게 될 거고.”
“아니야. 난 안 그럴 거야.”
“그럼 만약에 나중에 2학년 되고 3학년 돼서 친구들하고 자전거 타고 가다가 친구들은 빨간불에 무단횡단해서 저만치 가면 아들은 어떻게 할 거야? 따라서 건너게 되지 않을까?”
“아니야. 나는 파란불로 바뀌면 건너가서 친구들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할 거야.”
“그래. 그게 용감한 거야. 그게 멋있는 거고. 그렇게 말하는 게 강한 거야. 앞으로 아빠가 어떤 행동이 용감한 행동인지, 어떤 게 강한 건지, 멋진 모습은 뭔지 알려줄게.”
이렇게 말해 놓고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의 어린 시절. 초등학교(나 때는 국민학교) 4학년 때쯤인 것 같다. 내가 살던 극동 아파트 상가에는 작은 문방구가 하나 있었다. 워낙 작다 보니 물건들이 켜켜이 쌓여있었고, 매대에서는 입구 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당시 워낙 BB탄 총을 좋아했던 나와 내 친구들은 학교가 끝나면 문방구에 들러 총을 구경하곤 했다. 당시 BB탄 총의 가격은 5,000원에서 15,000원을 호가하는 초등학교 4학년생들에게는 꽤나 비싼 완구였다. 하루는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너 먼저 들어가서 주인아줌마랑 얘기 좀 해봐.”
도적질의 기획 단계였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대충 합을 맞추고 들어갔던 것 같다. 내가 아줌마에게 학용품 가격을 물어보는 틈을 타 친구는 BB탄 총하나를 들고 도망쳤다. 나는 친구들과 처음으로 불법이라는 하면 안 될 쾌락의 맛을 보았다.
이후, 우리는 날개 돋친 듯 종횡무진했다. 책 대여점에서 만화책, 슈퍼에서 과자, 비디오 대여점에서 비디오테이프, 게임숍에서 게임팩. 장르와 종류를 불문하고 막 들고 나왔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들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문방구에서 크기가 꽤나 큰 조립식 장난감을 훔치다 주인아줌마한테 들통이 났다. 나와 다른 친구들은 도망을 쳤지만, 걸린 친구가 걱정이 되어 다시 문방구 앞으로 가서 서성였다. 한 친구가 안 되겠다며 대뜸 문방구로 들어가더니 본인이 훔치자고 했다며 잘못했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나와 나머지 친구들도 문방구로 들어가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워낙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인 문방구 아줌마는 우리에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선뜻 용서해 주셨다.
우린 잠시 공백기를 가진 후 다음 타겟을 물색했다. 그런데 문방구에 자진해서 들어가 용서를 구한 친구가 얘기했다.
“우리 안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 그만하자. 커서 나쁜 어른이 되지 말자.”
당연한 말이고 별거 아닌 말 같지만, 그런 말을 하는 그 친구가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느꼈었나 보다. 우리는 마치 도원결의라도 하듯 다시는 도적질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어린 시절의 이 에피소드는 잠시 스치는 치기 어린 모험심이었을 수도 있다. 물론 이후에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많은 나쁜 짓들을 했다. 유치장에 들어가기까지 했으니 꽤나 사고뭉치였음 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용기 내어 그 행동을 저지하는 친구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떤 아빠였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잘잘못의 경계 파악이 되지 않던 나이에 묵직한 울림이 된 그 아이의 행동은 내가 아빠가 된 후에 다시금 귀감이 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나도 아들에게 이런 조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매운맛도 먹어봐야 얼마나 매운 지 안다. 그만큼 경험은 중요한 것이다. 물론 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일은 경험하지 않아도 나쁘다는 것쯤은 배운다. 하지만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누구나 어떤 이유에서건 크고 작은 잘못들을 하고 살아간다. 그 이후, 경험으로부터의 깨달음과 방향의 재정립은 각자의 몫인 것이다. 지금의 작은 실수를 간과하지 말자. 우린 언제까지나 그 나이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허영만 화백님의 만화 ‘비트’에서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맨날 싸움만 하고 사고만 치다가 소매치기로 오해를 받아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한 주인공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네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건 그건 너의 인생이고, 너의 마음이다. 하지만 나는 네가 앞으로의 너의 자식이 가정환경 조사서를 가져왔을 때, 거짓을 작성하는 아버지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