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발인 날이었다. 교수로 재직하셨던 아버지 친구 한 분이 오셔서 화장터까지는 못 가볼 것 같다고 연신 미안하다 하시며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내미셨다.
“아버지가 생전에 정치에 대한 소신을 글로 보내왔었네. 아버지 글이 너무 좋아 내가 이 글을 모아서 아버지랑 같이 책을 내려고 했는데, 소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구나. 아버지 생각이 책으로 전달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이렇게라도 자네에게 전해주려 하네.”
선물 포장도 아닌, 그렇다고 편지도 아닌 그저 네모 반듯이 신용카드 크기로 잘 접힌 A4지였다. 평소 같았더라면 궁금증에 그 자리에서 종이를 펼쳐 보았겠지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에 경황이 없던 나는 생각의 짐을 덧지고 싶지는 않았다. 받은 종이를 상복 상의 안주머니에 던지듯 집어넣으며 메마르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화장터로 향하는 운구차에 올라탔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글 쓰는 것을 참 좋아하셨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시는 소위 말하는 노가다 셨지만, 책과 글을 가까이하셨다. 영정 사진을 만지작거리며 그런 아버지와의 추억을 생각하다 보니, 무심히 얽혀있던 생각의 타래가 내가 군대에 있던 시절에서 풀어졌다. 아버지는 아들이 한창 힘들 이등병 생활에 멀리서나마 힘을 보태주고 싶으셨었는지, 작은 손글씨로 빼곡히 채운 11장의 A4지를 하얀 돈봉투에 담아 보내셨었다. 언뜻 보면 두툼한 축의금 봉투로 보일 듯한 투박한 편지였다. 아버지에겐 미안하지만 솔직히 그 장문의 편지에서 힘든 군생활의 활력이나 동력이 될 만한 글보다는 왜 우리나라가 징병제를 고집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역사적 고증과 내가 군대에 가야만 하는 정치적 사유에 대한 내용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오히려 내게 자극이 되었던 건, 그 편지의 분량을 본 선임의 한마디였다.
“아버지한테 잘해라.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책 한번 읽어 준 적 없다.”
장례 절차를 모두 마무리하고 집에 와서, 3일 동안 갈아입지도 못한 상복을 벗는데 상의 안주머니의 A4용지가 느껴졌다. 종이를 펼쳐보니 핸드폰에 들어가는 마이크로 SD 메모리 카드가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 친구분이 아버지와 핸드폰으로 주고받은 글을 저장해 두신 것 같다. 나는 잠시 멍하니 그 메모리 카드를 바라보다가 책상 서랍에 넣었다. 나는 정치 중립인이다. 애초에 끝나지 않을 정치라는 싸움에 보잘것없는 나 같은 유권자의 사상은 무의미라 생각하기에 개인적인 감정까지 들이고 싶지 않았다.
며칠 후, 아빠 유품을 정리하고 엄마와 둘이 저녁 식사를 했다. 아버지는 친구들하고 술 마시면서 현 정부 욕하다가 열받아서 돌아가셨다는 농담을 주고받던 중, 엄마에게 넌지시 아버지의 글을 보고 싶냐고 물었다. 엄마는 지긋지긋하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피식 웃음이 났다. 이렇게 외면받는 것은 아버지 일까? 아니면 정치 일까?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정치는 그런 것 같다. 누군가에겐 외면받고, 누군가는 열받게 하는.
1945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에 전쟁을 경험한 아버지에게 정치는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화두 셨던 것 같다. 언젠가 정치 얘기로 나와 의견 대립이 있던 아버지는 내게 그런 말을 하셨다.
“네가 전쟁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 모른다.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내가 생각하는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과 이유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정치[政治]: <명사>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그래도 우리 부자가 생각하는 정치의 목적성은 사전에서 말하는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는 정치의 목적성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정치인들의 목적은 국가 권력의 획득과 유지에만 집중되어 있기에 외면하는 사람들과 열받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 아닐까? 그 화를 정치적 논쟁의 술 안줏거리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상호 간 이해의 에너지로 쓰면 어떨까?
흔히들 말한다.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와 종교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의 차이가 결국엔 다툼으로 끝나기에 그런 우스개 소리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다툼이 싫은 사람들은 대화를 피하고 관심을 멀리 두기 마련이다. 하지만 타인의 다른 의견을 배우고 받아들여 조금 더 넓은 포용력으로 내 생각을 펼쳐 간다면, 외면했던 사람들이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모두가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면 국가 권력의 획득과 유지에만 욕심을 내는 탐관오리들이 활개 칠 수 없게 하는 보안 카메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처럼 정치 때문에 열받아 돌아가시는 분이 또 계시기를 원치 않기에 나 역시도 조금씩 외면했던 정치에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걸 내가 할 수 있다.”
건강한 정치 참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단한 일이다.
돈 앞에 미소 짓고,
권력 뒤에 무릎 꿇고,
왼쪽엔 친구 두고, 오른쪽엔 친지두고,
아래로는 학교 후배, 위로는 고향 선배.
이러니 우아래는 커녕
좌우도 못 살피우고,
앞뒤도 볼 줄 모르는구나.
내가 널 욕보이는게 아니니
삐지지 마라.
씨댕아 밴댕아
하찮은 니들이 세상을 바꾸리라
기대는
전혀없다.
씨발아 좆밥아
남 깎아 내리는 일이 정치라면
니들은 일류 정치인이다.
개새야 깍새야
다시한번 말하지만,
내가 널 욕보이는게 아니니,
삐지지 마라.
씨댕아 밴댕아
미안하다. 이런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미안하다. 내가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