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정말 사고를 크게 저지른 적이 있었다. 대학 1학년 시절, 같은 과 친구의 생일이었다. 과 친구들과 여자 선배 한 명이 신천역(현재는 잠실새내역) 근처에 모여 술을 마셨는데,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도 돈이 술값으로 술술 새어 나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시간은 새벽 2시가 넘었고, 전원이 수중의 모든 돈을 술 값으로 탕진해 버린 것이다. 집이 멀었던 여자 선배는 집에 못 간다고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1999년 대학 1, 2학년생들은 신용카드도 없었나 보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음주에 의한 객기가 발동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소위 말하는 노는 아이들과 어울렸던 나는 오토바이를 훔치는 방법과 차를 훔치는 방법을 선배들에게 배웠었던 터라 그 객기는 범법으로 이어졌다.
나는 술기운에 비틀거리며 갓길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물색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검은색 각 그랜저의 조수석 창문이 살짝 열려있는 게 보였다. 그 창문은 마치 게임에서 중요 아이템을 발견했을 때처럼 반짝 빛났다. 나는 한 친구에게 망을 보게 한 후, 창문 사이로 잠금을 풀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키박스를 부수고 선을 연결하려 했다. 술기운이라 어떤 선을 건드려야 되는지 헷갈렸다. 10여분이 흘렀을까? 친구들이 초조해했다.
“아직 멀었어?”
나는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쫌 기다려봐! 집에 가기 싫어?"
이때 망을 보던 친구가 소리쳤다.
“야! 튀어!!"
뒤늦게 알았지만 내가 직선 연결을 잘못해서 차량 후방 브레이크 등이 들어와 있었고, 호객 행위를 하던 나이트클럽 삐끼(호객꾼)가 이를 발견했다. 그 삐끼는 차량의 주인인 그의 보스에게 이를 알렸다. 차주는 차 안에 사람이 보이자, 동료들을 여럿 데려와서 우리를 잡으려 했던 것이다.
차 밖으로 튀어나오자 친구들이 쫓기고 있었고 나에게도 두 명이 붙었다. 뒤늦게 나온 나는 그 두 놈을 가볍게 몇 대 때리고 도망갈 공간을 번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그 와중에 신발도 한 짝 잃어버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붙잡히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고, 한적한 골목 주택가에서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다들 무사했지만, 여자 선배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너무 걱정이 되었다. 다른 친구들도 그 선배의 행방을 몰랐다. 신천역(잠실새내역)에서 가락동까지 걸으며 계속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나는 신발을 한 짝만 신은 채 송파 일대의 파출소와 경찰서를 찾아 안을 엿봤다. 안전만 보장이 되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송파 경찰서가 눈에 보였다. 정문을 들어서려 하는데 근무를 서던 의경이 나에게 경례를 하며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누구… 좀 찾으려고요."
“찾으시는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때 주차장에 내가 훔치려 했던 그 각 그랜저가 보였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남자들한테 잡혀서 험한 짓 안 당하고 차라리 경찰서에 왔으니.
“아.. 아닙니다. 제가 전화해 볼게요."
“신발이 한 짝 없으신 데요?"
발을 내려다보니 양말에 구멍이 나다 못해 앞부분 전체가 터져 있었다.
“아.. 똥을 밟아서 버렸어요."
나는 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의심 어린 눈초리를 뒤로하고 잰걸음으로 나는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경찰서로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것도 좋아하는 여자 선배가 잡혀 있는데? 아니 근데 왜 전화는 안 받지? 저놈들 그냥 신고하러 간 건가? 안 잡혔나? 안 잡혔는데 내가 저기 들어가면 괜히 나만 잡히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벌써 집 앞이었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집에 가자. 그때 당시만 해도 책임감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여자 선배의 행방을 찾아 헤매며 돌아다니는 나의 모습에 스스로 만족했었다. 하지만 이미 시작 단계에서부터 책임감은 결여됐었다. 그리고 마무리도 짓지 못했다.
우리는 크고 작은 범법 행위를 저지르며 살아간다. 쓰레기를 무단투기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 교통 신호를 지키지 않는 것은 부지기수이고, 음주 후의 운전도 스스럼없이 한다. 목욕탕이나 여행지 호텔에서 가져온 수건이 집에 버젓이 걸려있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업무나 학업에서 타인의 사진과 글을 도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나열된 예 이외에도 많은 사소한 범법 행위들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저지르고 있다. 이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범법 행위를 저지르며 과연 우리는 법적 책임 결과에 대해 생각해 봤는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는 ‘무식이 용감’이라는 표현을 한다. 법에 기술된 책임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는 것이다. 오은영 박사님이 말했다. 아이에게 말없이 가져왔다는 표현을 쓰지 말고, 너는 물건을 훔쳤다고 분명히 말해 주라고. 양형의 수준에 따라 죄의 무게가 다르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법 앞에 무식하지 말고, 죄 앞에 용감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