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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by 징계
hh_0394_1.jpg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와이프는 어린 시절 받은 상처들을 마음에 남긴 채 지금껏 살아가고 있다. 아직까지 딱지가 떨어지지 않은 큰 상처들도 몇 남아 있는 듯하다. 솔직히 나로서는 잘 이해하기 힘들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억력이 나쁜 나는 쉬 삶의 기억들을 잊곤 한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래서인지 나는 마음의 상처에 대한 치유가 빠르다. 와이프는 오히려 그런 나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가끔씩 둘이 술에 취해 정서적 근육들이 말랑해질 때면 그런 차이점들이 문제가 되곤 한다. 술기운에 내가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들이 와이프 마음속 상처를 건드리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술은 역시나 염증에 좋지 않다. 상처를 덧나게 한다.


하루는 일을 하다가 조명 장비에 손가락 살이 집혀서 살이 조금 뜯겨 나갔다. 사진 촬영 일을 하다 보면 흔히 있는 일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반창고를 붙이고 며칠을 흘려보냈다. 어느 저녁, 와이프와 아들과 함께 외식을 하며 간단히 반주를 했다. 기분 좋을 정도로 마시고 집으로 향하는데 아들 녀석이 내 손을 잡았다.


“아!! 아파~! 살살 잡아!! 아빠 여기 다쳤잖아.”


나는 짜증을 내며 아들 손을 뿌리쳤다. 손을 보니 일하다가 다친 상처 자리에는 시커먼 딱지가 져서 붙어 있었다. 8살짜리가 손을 세게 잡았으면 얼마나 세게 잡았겠나? 이 작은 상처 하나가 내 마음을 이토록 뾰족하게 할 일인가?


집으로 돌아와 아들을 재우며 짜증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아들은 흔쾌히 사과를 받아 주었다. 그리곤 거실로 나와 TV를 보는 와이프 옆에 가만히 앉았다. 아들과의 일을 생각하니 문득 와이프 마음속 상처들이 떠올랐다. 내 손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봤다. 아팠다. 이미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소한 자극에도 아픔을 느낄 수 있다. 몸에 작은 생채기가 있다면 그곳을 살포시 눌러봐라.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접촉 일지라도 상처를 가진 자에게는 아픔일 수 있다.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마음의 상처에는 약을 바를 수도, 반창고를 붙일 수도 없다. 누군가 그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를 바라며,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의학적으로도 우리 뇌가 감지하는 신체적 고통과 정서적 고통은 유사하다고 한다. 2011년 한 연구에서 원치 않은 이별을 한 실험 대상자에게 한 번은 헤어진 연인의 사진을 보여주고, 다음에는 통증을 유발할 정도의 뜨거운 자극을 주었을 때의 뇌기능 영상(fMRI)을 비교하였다. 연구 결과, 두 가지 통증 모두에서 신체 감각을 이차적으로 해석하는 배후측 뇌섬염(dorsal posterior insula)이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마음의 상처 역시 우리 뇌에서 신체 감각적인 통증으로 인식하는 셈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상대방의 상처에 대해서는 조심스레 행동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상처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편이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주먹이 운다(2005)’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세상에 사연 있는 사람. 너 하나뿐이 아니야.” 그렇다. 이 세상엔 사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사연은 마음의 상처로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고 이해해 간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적어본다.



눈물이 닿지 않는

그 거리를 걸어 본 적 있는가?

내 홍창이 닿을 때마다 들리는

날카로운 비명소리


하지만

누구도 함께 울어줄 수 없다.


하지만

슬퍼하지 마라. 아해야.

우린 모두 같은 거리를 걷는

동행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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