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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Jul 13. 2022

기억 구석구석에 풍경을 새기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둘째 날

요세미티에서의 둘째 날. 어제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오늘은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다행히 부지런을 떤 보람이 있었는지 아직 주차장에 공간이 여유롭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안을 운행하는 셔틀버스는 두 개의 노선이 있어서 행선지에 맞게 골라 타야 하는데, 주차장이 아직 한산한 덕분에 두 노선이 만나는 동선이 편한 곳에 차를 댈 수 있었다. 오늘의 첫 일정은 미스트 트레일을 하이킹하는 것. 이 트레일을 따라 걸으면 차례로 Vernal 폭포와 Nevada 폭포를 만날 수 있는데, Nevada 폭포까지는 왕복 10km가 넘는 거리라 무리가 있어 우리는 Vernal 폭포까지만 걷기로 했다.


§ 미스트 트레일을 걸으며 만난 풍경. 봄, 여름에는 폭포수가 풍부한 덕분에 시종 이렇게 맑은 계곡을 따라 걸을 수 있다. 가을이 되면 폭포수가 줄어들어 시원한 맛은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 대신 단풍을 볼 수 있으니 언제 와도 매력적이리라 짐작한다.


Vernal 폭포까지는 왕복 5km 정도라 긴 거리는 아닌데 오르막이 있어 어제 미러 레이크 트레일을 걸을 때 보다 영 힘에 부친다. 나는 여러 번 멈추어 숨을 고르다 다시 걷기를 반복하며 트레일을 따라 걸었다. 산행을 하니 몸에 열기가 돌았지만 시원한 폭포수가 더위를 채 느낄 새도 없이 금세 땀을 식혀주어 상쾌하게 하이킹을 즐길 수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마침내 도착한 Vernal 폭포에는 세찬 물줄기가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물살이 워낙 거세서 한참 거리를 두고 서있는 데도 물방울이 쉴 새 없이 튀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젖는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폭포 아래 바위까지 기를 쓰고 내려가 절경을 만끽하고 있었다.


§ Vernal 폭포와 바위 사이로 콩알만 하게 보이는 사람들. 폭포에 왔으니 폭포수에 흠뻑 젖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물론 나는 멀찌감치 서서 구경만 했지만.


폭포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널찍한 바위가 하나 보이길래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 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조촐하지만 맛있는 점심을 마친 후 바위 위에 그대로 벌렁 누워 하늘을 보며 쉬었다. 머리 위에 드리워진 나뭇가지들이 산들산들 흔들릴 때마다 나뭇잎 사이로 푸른 하늘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마음 같아서는 강물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이라도 자고 싶은데 모기들이 가만 두지를 않는다. 자칫하다간 우리가 이 녀석들의 점심거리가 될 것 같아 서둘러 정리를 하고 일어섰다. 올라갈 때는 힘들었지만 내려가는 길은 그만큼 쉬워서 한달음에 내려온 기분이다. 우리는 요세미티 빌리지에 들러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목을 축인 후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 터널 뷰에서 바라본 요세미티의 풍경. 풍경의 장엄함과 사진의 초라함은 정확히 반비례하는 것 같다. 매체의 한계를 느끼게 해주는 대자연의 위대함.


두 번째 행선지는 요세미티 빌리지에서 한참 차로 이동을 해야 갈 수 있는 타나야 호수와 옴스테드 포인트이다. 거리는 좀 멀지만 산 위를 오르는 길이라 도중에 뷰포인트가 여러 군데 있어서 풍경을 조망하기 좋을 것 같아 겸사겸사 가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터널을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풍경에 숨이 멎는다. 드넓게 펼쳐진 초록 숲 너머로 웅장한 산들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는 풍경이 한국의 산들과 닮은 듯하면서도 묘하게 달라서 끊임없이 눈길을 끈다. 처음에는 예쁜 곳만 보이면 무작정 차를 세우려 했지만 그러다가는 날을 샐 기세라 두 눈에 열심히 풍경을 담으며 차를 달렸다.


§ 요세미티의 대표적인 뷰포인트 중 하나인 옴스테드 포인트. 저멀리 보이는 설산의 풍경이 시원하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바람이 상당히 세고 쌀쌀했다.


옴스테드 포인트에서 설산을 구경하다 예쁜 타나야 호수를 거쳐 마지막 목적지인 투올러미 초원을 향해 한참을 달려가는데 어째 길 상황이 심상치가 않다. 차들이 모두 서서 꼼짝도 하지를 않아 어찌 된 일인가 했더니 여기도 공사 중이라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수신호에 따라 일방통행만 가능해서 그토록 길이 꽉 막혀 있던 것. 그것까지는 어떻게 감수했는데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제대로 내려서 초원을 돌아보기가 어렵다. 일방통행이라 잘못 차를 세웠다가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서 결국 초원은 차에서 눈으로만 감상하기로 했다. 어차피 공사 중인 비포장도로라 속도를 낼 수가 없기에 느릿느릿 운전하며 천천히 초원을 구경했다. 나중에 국립공원 입구에서 받은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이곳 캠프그라운드가 모두 사용 불가하다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게 공사 중임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나의 실수이다. 국립공원 여행 시에는 홈페이지 공지를 수시로 확인해야 함을 다시금 떠올리며 아쉬운 발길을 돌려 숙소로 돌아왔다.


§ 맑고 깨끗한 타나야 호수. 바닥이 다 비칠 만큼 물이 투명했다.


고작 이틀 걸었다고 다리가 제법 피곤했다. 나는 손을 뻗어 뻐근한 다리를 주무르며 차에서 본 풍경들을 떠올렸다. 다시는 오지 못할 곳인데 어떻게든 내려서 사진을 찍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드려는 찰나, 그간 사진에 초라하게 담겼던 수많은 장엄한 풍경들이 눈앞에 스쳐 지나가며 후회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다 한들 단 한 장도 이 풍경을 제대로 담아냈을 리가 없다. 그럴 바에야 두 눈으로 실컷 보고 현장의 아우라를 온몸으로 느끼며 기억 구석구석에 새겨 두는 게 낫지. 어쩌면 나는 다리를 주무를 때 마다 요세미티를 떠올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종아리 어디 쯤에도 이 풍경을 한 장 새겨 두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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