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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Apr 13. 2022

미국 햄버거 견문록, 두 번째 이야기

서부편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서부로 여행을 떠나온 김에 지난번 미국 햄버거 견문록 동부 편에 이어 이번에는 서부에 있는 햄버거 맛집들을 순례해 보았다. 내가 사는 애틀랜타 지역에 없는 가게들 중 Spoon University라는 사이트의 햄버거 순위를 보고 찾아갔다. 입맛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에 이런 맛집 순위가 크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기준은 있어야 하기에 일단 참고해 보았다.


1. The Habit Burger Grill

서부의 햄버거는 보통 인 앤 아웃을 가장 먼저 꼽는데 어디선가 우연히 읽은 기사에 더 해빗 버거가 인 앤 아웃을 제쳤다는 내용이 있어 한번 찾아가 보았다. 여기는 사이드로 완두콩을 튀긴 <Tempura Green Beans>가 맛있다기에 대표 메뉴인 <Double Charburger>와 함께 주문했다. 확실히 콩이 고소해서 감자튀김보다 맛이 있다. 어차피 튀긴 마당에 건강을 논하는 것이 우습지만 일단 심리적으로나마 조금 더 건강하게 먹은 듯한 위로도 얻을 수 있다. 햄버거 역시 맛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고기 맛이 강한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아서 더블이 아닌 일반 버거를 주문했으면 더 맛있게 먹었을 것 같기는 하다.


2. In N Out

드디어 인 앤 아웃이다. 인 앤 아웃이 맛있다는 얘기를 워낙 많이 들은 데다, 매장에 들어서니 불난 호떡집보다 사람이 더 많아서 굉장히 기대가 컸다. 시그니처 메뉴인  <더블 더블>과 인 앤 아웃의 히든 메뉴로 꼭 먹어야 한다는 <애니멀 스타일 프라이>를 받아 들고 신이 나서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음? 맛이 너무 별로인데? 첫 입만 별로인가 싶어 계속 먹어 봐도 먹을수록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빵도, 패티도, 심지어 감자튀김 조차 그저 그래서 여기가 왜 유명한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굳이 더 해빗 버거나 동부의 셰이크 쉑, 또는 파이브 가이즈 같은 맛있다고 알려진 프랜차이즈들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그냥 맛이 없다. 물론 가게 안의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내 입에만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으나, 어쨌거나 나의 기준으로는 소문만큼 맛있는 곳은 아니었다. 누가 인 앤 아웃을 두 번 가야 한다고 했던가. 한 번도 안 가도 되고, 정 궁금하다면 한 번만 가봐도 충분한 곳이다.


3. Red Robin

레드 로빈은 프랜차이즈이기는 해도 나름 수제 버거를 표방하기에 위의 두 브랜드와 비교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일단 총평을 하자면 맛 자체는 훌륭하다. 내가 주문한 <로얄 레드 로빈 버거>는 달걀 프라이가 들어가서 고소함이 더해 한층 맛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문제는 가격인데, 수제버거이다 보니 아무래도 가격이 비싸다. 햄버거 프랜차이즈 중 비싸기로 유명한 파이브 가이즈 보다 더 비싸니 상당히 고가인 편이고, 그 값을 하려면 이 정도는 맛있어 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햄버거 하나를 2만 원 가까이 내고 먹는 것이 역시 적응이 되지 않는 한국인이다. 그래서 여기는 비록 맛은 있었으나 한 번 가 본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4. Gordon Ramsay Burger

고든 램지 버거를 여기에 넣어야 할지 말지 사실 고민이 많았다. 일단 그가 영국인이기도 하고 지점도 런던을 포함해 아직 네 군데밖에 없기 때문에 프랜차이즈로 보기에 무리가 있는 데다, 무엇보다 내가 자기 레스토랑을 미국 햄버거로 소개한 것을 알면 당장에라도 쫓아와 예의 찰진 욕설을 날려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여기에 적는 이유는 미국 서부에서 먹었고, 햄버거가 원래 미국 음식이니 어쨌든 미국 입맛에 맞게 조리했을 거란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식당에 약간 감정이 상했기 때문으로, 처음 갔을 때 테이블에 앉고 나서 무려 40분을 기다렸는데도 식사가 나오지 않아 예약해 놓은 공연 시간이 촉박해 그냥 가게를 나와야 했었다. 식사가 그렇게 늦어지면 통상 주문 단계에서 알려주는 것이 상식일 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기다리던 우리는 결국 배를 곯으며 공연을 봐야 했다. 그날은 장시간 운전으로 점심도 먹지 못한 상태였는데 졸지에 저녁까지 굶어야 했으니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따라서 고든 램지 버거를 미국 햄버거로 소개하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하려 한다.

그러나 개인감정을 떠나 맛은 진짜 흠잡을 데 없다. 어니언 링은 신기할 정도로 쫄깃하고, <헬스 키친 버거>도 매콤해서 맛있다. <24시간 버거>는 고기가 아주 푸짐해서 고기 맛이 강한 것을 싫어하는 내 입에는 잘 맞지 않았으나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행복해할 맛이다. 무엇보다 빵이 예술인데 폭신하면서도 겉이 바삭해서 마지막 한 입까지 눅눅하지 않고 맛있다. 함께 주문한 화이트 상그리아도 배 향이 향긋하면서도 과하게 달지 않다. 그래서 값이 얼마냐고? 팁 포함 100달러. 처음 한국에 고든 램지 버거가 오픈했을 때 어떤 미친 사람이 햄버거를 그 돈 주고 먹나 했는데, 그게 나였다. 물론 이 레스토랑의 햄버거는 고급 요리로 분류해야 맞을 수도 있겠으나, 아무리 그래도 햄버거 가게에서 100달러는 역시 내 정서에 맞지 않는다. 아주 훌륭한 식사였고 한국에는 대기가 많아 먹기 어렵다는 만큼 맛이라도 볼 수 있어 좋기는 했지만 로또라도 당첨되지 않는 이상 두 번 가지는 못할 것 같다.

이렇게 동부와 서부에서 유명하다는 햄버거 레스토랑을 어느 정도 섭렵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폭스 애틀랜타 뉴스에 텍사스 기반의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왓 어 버거> 매장이 생긴다는 기사가 올라온 것이 생각난다. 햄버거 가게의 오픈 소식이 대단한 뉴스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의 반응은 꽤나 열광적이어서 이곳도 한 번 맛보고 싶어졌다. 혹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오픈한다면 <왓 어 버거>를 포함해 나머지 햄버거 가게들을 모아 번외 편으로 한 번 정리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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