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김밥과 떡볶이가 있다면 미국에는 햄버거와 감자튀김이 있다. 한정식도 파인 다이닝도 아니지만 이 음식들을 빼놓고 두 나라의 소울 푸드를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싸고 간편해서 서민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 음식들은 이제 정크푸드가 아닌 하나의 식문화로 자리 잡은 듯하다. 한국의 어딜 가더라도 프랜차이즈나 동네의 이름난 분식집이 각축을 벌이듯 미국도 지역별로 내로라하는 햄버거 집들이 자존심 대결을 펼친다. 한국에 있을 때도 ㅇㅇ시 3대 떡볶이집 같은 리스트를 보면 도장깨기 하듯 차례로 찾아가 맛을 보곤 했는데,미국에 있는동안햄버거 순례를 안 하면 섭섭하지. 흔히들 서부에 <인 앤 아웃>, 동부에 <셰이크 쉑>이라고 하는데 <셰이크 쉑>은 이미 한국에서 먹어 봤으므로 패스하고,그 외 동부에서 유명하다는 햄버거집을 소개한다. 미국의 햄버거를 소개하는 유튜브가 워낙 많아서 나는 철저히 주관적인 감상만을 담았다.
1. Five Guys
오바마 대통령이 머리 아플 때마다 두통약 대신 먹었다는 파이브 가이즈.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싶어서 찾아가 봤다. 그런데 주문 단계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여기는 햄버거에 넣을 야채나 소스를 직접 고르는 시스템인 모양이다. 한국에 있을 때 햄버거를 거의 먹지 않아서 뭐가 들어가 있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아 그냥 죄다 넣었다. 그래 놓고는 소스를 뭘 넣을지 몰라 어처구니없이 케첩만 넣었는데,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고도 맛있었다. 빵도 맛있고 감자튀김은 더 맛있다. 심지어 기다리는 동안 먹으라고 무료로 나눠주는 땅콩마저 맛있다. 과연 두통약의 대체제로 쓰일 만하다고 생각했다. 다음번에는 잘 알아보고 주문해서 제대로 맛보고 싶다.
2. Culver's
위스콘신 로컬이지만 미국내 햄버거 순위 10위 안에 드는 <Culver's>는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기에 가보았다. 맛은 있지만 내 입에는 <Five Guys>가 좀 더 맛있게 느껴졌다. 유제품이 유명한 위스콘신의 햄버거 가게라 아이스크림이나 밀크셰이크가 맛있대서 멋모르고 시켰는데 확실히 맛은 있었지만 추운 날 주문한 탓에 덜덜 떨면서 먹어야 했다. 여기도 뭔가 밀크셰이크를 커스터마이징 해서 먹는 분위기였는데 뭐가 뭔지 하나도 몰라서 주문하는데 굉장히 애를 먹었다. 제발 좀 자꾸 물어보지 말고 그냥 대충 하나 만들어 주면 좋겠다.
3. Chick-fil-A
남편의 연구실 교수님 가족들이 자주 간다며 추천해주신 애틀랜타 기반의 치킨버거 전문점. 버거에 치킨하고 피클 두 쪽 밖에 안 들어 있는데, 오로지 치킨 맛 하나로 수많은 프랜차이즈 햄버거집들을 무릎 꿇렸다고 한다. 실제로 먹어보고 보기와 달리 맛있어서 놀랬다. 클래식 샌드위치와 스파이시 샌드위치 모두 맛있고, 무엇보다 감자튀김과 함께 나오는 Chick-fil-A 소스가 맛있다. 달착지근해서아주 중독적인 맛.
4. Popeyes
위의 <Chick-fil-A>를 이겨보겠다고 칼을 갈고 있는 또 다른 치킨전문점 <파파이스>. 한국에서는 대부분 철수해서 이제 매장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여기 치킨버거가 <Chick-fil-A>보다 낫다기에 찾아갔는데, 가는 곳마다 코로나로 홀 운영을 안 해서 결국 드라이브 스루 매장에서 사서 차에서 먹어야 했다. 여기저기 힘겹게 돌아다닌 탓에 짜증이 좀 나서 맛없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잔뜩 별렀는데 완전 맛있어서 짜증이 눈녹듯이 사라졌다. 특히 클래식 버거는 <Chick-fil-A>보다 압도적으로 맛있다.앞으로도 치킨버거를 먹을 일이 있다면 무조건 <파파이스>를 가게 될 것 같다.
5. Hardee's
<하디스>는 맛집이라고 해서 간 게 아니고 추억이 떠올라서 찾아간 곳. 대학 다닐 때 친구들과 매일같이 <하디스>에 죽치고 앉아 트레이드 마크인 별 모양 너겟을 먹었었다. 한국에는 이제 매장이 없어 갈 수 없는 추억의 장소가 되고 말았는데, 미국에 와서 간판을 보고 신기하고 반가워서 무작정 들어갔다. 하지만 그리운 나의 별 너겟은 아쉽게도 팔고 있지 않았다. 한편, 햄버거 맛을 기대하고 간 게 아니어서 사진만 보고 대충 주문했는데 의외로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여태껏 살아남은 이유가 있구나 싶다.
번외. There on fifth
프랜차이즈는 아니지만 조지아텍 앞에 있는 햄버거 가게. 간판에 애틀랜타에서 제일 맛있는 햄버거 집으로 뽑혔다고 쓰여있길래 궁금해서 들어가 봤다. 맛이 있기는 한데 <Five Guys>보다 더 맛있지는 않다. 투표의 주최자가 의심되는 간판의 문구이다. 한국에도 프랜차이즈를 뛰어넘는 동네 맛집이 많은 것처럼 미국도 수제 햄버거집 중 숨은 맛집이 많다고는 하는데 아쉽게도 이곳은 그 정도는 아닌 모양. 진짜 맛집을 찾으려면 좀 더 발품을 팔아야 하려나 보다.
동부는 이렇게 여섯 곳을 가보았는데 사실 그다지 햄버거를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앞으로 얼마나 더 새로운 곳을 찾아가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서부에 가게 되면 <인 앤 아웃>을 비롯해 또 다른 햄버거 순례를 하게 될 것 같으니, 햄버거 견문록의 두 번째 파트는 그때 완성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