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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erJ Jun 11. 2024

남편 안에 있는 아이를 만나다1

불 꺼진 안방에서 펑펑 울었다

금요일 밤, 남편은 야근을 하고 피로한 얼굴로 집에 들어왔다. 역시도 일과 집안일, 육아로 파김치가 상태로 남편을 맞이했다. 남편이 화장실로 씻으러 들어가며 말했다.

나 내일은 좀 쉴게요
쉰다는게 무슨 말이에요?
음악회에는 자기랑 애들이랑만 다녀와요


 

지난 달부터 예약해 두고 다 같이 가기로 했던 가족음악회를 나 혼자 아이들과 다녀오라니. 쉬어도 되냐고 양해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쉬겠다 안 가겠다 하는 말이 나에게는 과한 당당함으로 느껴져 마음이 상했다.  따지고 보면 둘 다 쉼이 필요한데 한 쪽만 쉬겠다 말할 수 있는건 그가 돈 버는 가장이기 때문일까...? 자격지심인지 사실인지 이제는 분별하기도 어려운 생각이 스쳐갔다. 쉬는 건 둘째치고 잠든 아이들 방은 들러보면서도 나에게는 애썼다, 오늘 하루 어땠냐 말 한 마디 건네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그 모습에는 서운함이 복받쳐 올랐다. 나도 조용히 내 공간에 들어와서 이 치솟는 마음을 어째야될지 잠시 망설이다 카톡을 보냈다. 뭐라도 말해야 좀 나을 것 같았다.


오늘 많이 피곤한가보네요~ 그래도 다음엔...여력 있음 나도 한번 안아주거나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물어봐줘요...내일은 오전엔 운동 애들하고 다녀오고 음악회도 내가 다녀올테니 저녁먹고는 나도 나갔다 올게요~

걸어서 몇 발자국 거리에 있는 남편으로부터 바로 답이 왔다.


자기도 피곤하면 일로 와요
나 좀 어지러워서 그래요

남편과의 관계에서 유독 속 없는 사람이 되는 나는 이 카톡에 바로 속상함이 안쓰러움으로 바뀌어 안방으로 건너갔다. 무리하면 어지러워지는 사람. 내가 짐작한 돈 버는 유세도, 나에 대한 무심함도 아니고 정말 몸이 안 좋을 정도로 힘든거였구나 싶어서 마음이 금새 누그러졌다.


이미 불 끄고 누워 있는 남편의 옆에 누웠다. 사실 나에게도 중요한 날이라 더 남편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남편이 물어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그 이야기부터 나누었다. 남편이 그간 나에게 권유했던 일을 해 보기로 마음 먹게 된 이야기에 대해서. 남편은 적극 동조하다 끝에 덧붙였다.


그래도 자기가 부럽네요. 나는 자기랑 반대로 오늘 이 일을 계속 해야 되나 회의가 들었는데...


전혀 몰랐던 남편의 오늘 마음. 좋게 말하면 집중력이 좋은 거지만 때론 과몰입으로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는 살피지 못하고 다 끝난 뒤에야 급격한 피로감, 소진을 알아차리는 남편은 주기적으로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누가 돈 주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어서 그 자체로 즐거운 그런 일을 찾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그런 때.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잘한다는 유능감, 인정욕구를 채울 수 있고 그걸 동력으로 달리고 있지만 그렇게 한참 달리다 소진이 찾아오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소위 말해 현타를 느끼는 것이다. 단순히 팀을 옮기고 업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회사 밖에 있을지도 모를, 자신으로서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싶다는 게 남편의 마음이었다.


실제로 남편은 꼭 일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시간을 '해야 하는 일'로 보내면서 살고 있다. 퇴근 후에는 아빠로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혹은 다시 스터디 카페로 가서 투자관련 공부를 했다. 누가 그렇게까지 하라고 몰아붙이지 않아도 모든 에너지를 다 쥐어짜서 일을 완성도 있게 해내야만 하는 사람인데다 퇴근 후의 시간마저도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하기 위해 공부를 한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 시작한 운동마저도 막상 시작했으니 '열심히 해야 하는 일'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 같았다. 그러니 어느 순간 지칠대로 지쳐 단물 빠진 껌처럼 살 맛이 다 빠져버린 채로 가라앉은 것이다... 사실 남편의 퇴근 후에도 혼자 육아해가며 남편에게 스터디 카페에 갈 시간을 준 건, 그 시간만이라도 남편이 읽고 싶은 책이나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길 바랐던 건데... 남편은 거기서마저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다. 그걸 확인하니 나는 마음이 답답해졌다.


당신이 이렇게 사는 거, 나도 정말 죄책감 들어요. 물론 나도 열심히 해서 자기가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준비하는거지만 그 때가 오기 전까지 이렇게 살아가는 거 보는게 힘들어...나 때문인 것 같고.


남편은 우리가 마치 부모와 자녀관계처럼 부모가 돈 버느라 힘들다고 해서 어린 자녀가 당장 알바를 뛸 수는 없는 것처럼 당신도 준비되기 전에 당장 가장이 될 수는 없지 않냐는 비유를 댔지만, 심지어 부모 자녀라고 해도 요청하지 않은 과도한 희생을 하고 자신을 갈아넣어가며 불행하게 사는 부모는 자녀까지도 불행하게 만든다.  나는 남편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나를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둘 다 지칠대로 지쳤지만 K장남장녀 부부의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 2편에서 이어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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