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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erJ May 22. 2024

남편 잔소리에 대처하는 자세

내 마음에 먼저 다녀오기

남편이 무슨 말만 하면 바로 ‘나를 무시하는구나!’ 하고 확신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시기, 바로 둥이 신생아 시절이다. 호르몬의 농간에 시달리고 새벽 수유로 잠을 제대로 못 자던 나는 평소처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못해 마이너스로 떨어진 상태였고, 그만큼 남편의 말을 더 크게 왜곡하고 더 크게 상처를 받았다. 남편 역시 네 가족의 가장이 된 부담감과 여러 힘든 일들로 상태가 나 못지 않게 피폐해서 실제로 날카로운 말들을 자주 했으니 서로 시너지를 낸 셈이다.   

   

그 때로부터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왔을까. 물론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그 때 보다는 여유가 생겼지만 여전한 것들도 있다. 가령, 남편은 이제 나에게 존댓말을 쓰지만 내 기준 마음 상할만한 말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다. K장녀로 남들에게 어지간해서는 기대거나 어리광 부리지 않지만 사실 우쭈쭈와 둥기둥기를 무척 좋아하는 나라서 남편에게 칭찬에 대한 기대가 아직 높아 실망도 종종 한다. 이 아쉬움은 그래도 꽤 여러 대안이 생겼다. 

1.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내가 나에게 해 준다.
2.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상담, 피드백, 코칭 등)에 대한 감사, 칭찬의 말로 해소한다.
3. 다정하고 지지적인 친구, 지인과 대화하며 충전한다.      


진짜 어려운 때는 사실 내겐 비난이나 다름 없는 ‘잔소리’를 들을 때다. 남편도 잘 참는지(?) 자주 하진 않지만 지난 주말, 간만에 그런 일이 생겼다. 키친타올이 떨어졌다는 걸 남편이 쓰려고 할 때 알게 되어서 주문하겠다 하고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는 결제하는 걸 놓쳤다. 나로서의 이유를 대자면 소비를 줄이고 돈 관리를 본격 시작하면서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넣어 놓고 바로 결제하는 대신 정말 사야 할 물건인지 한번 더 점검하는 습관이 생겨 그렇게 두었다가 그대로 잊은 건데, 남편이 다음 날 키친타올이 아직 오지 않았는지 물었을 때 내가 아차! 하는 걸 보고 나온 그의 한 마디. 

”당신은 매 번 마무리를 못 짓네요. 

아.. 이걸 쓰는 지금도 약간 발끈하게 될 정도라 그 때의 나는 순간 속에서 불이 일었다. (그나마 남편이 존댓말로 말한 노력+그 자리에서 바로 터뜨리지 않은 내 노력이 부부싸움을 막았다...)

‘와... 이 일을 이렇게 싸잡아서 비난한다고...?’내 입장에선 과한 욕을 먹은 것에 대한 울분과 억울함이 솟구쳤다. 일단 주문을 하고 나서도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려워 방에 들어가 혼잣말이라도 내뱉어야 했다. 

”진짜 이따위로밖에 말을 못하나?“


좋은 점도 정말 많은 남편에게 부탁하고 싶은 단 한 가지. 당연히 나에게 아쉽고 불만스러울 수 있다. 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니. 내 잘못을 부인하고 싶은게 아니라 표현하는 방식, 비난 공격하는 투의 태도와 말투를 좀 수정해달라는 것이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마음이 상하더라도 한 번쯤은 '무슨 사정이 있었나?' 한 번쯤 생각해주면 더더욱 좋을텐데... 어쨌든 내용보다도 그런 방식이 너무 나에겐 타격이 크다.

      

혼잣말을 내뱉고 화륵 올라온 마음을 알아주며 다독이고 나니 약간의 틈이 생겼다. 그 틈을 궁금해하는 데 쓰기로 했다. 남편이 왜 그렇게밖에 말할 수 밖에 없었을까에 대해. 나로선 억울했지만 그에게는 ‘자꾸 그런다’고 생각되는 이유. 잠잠히 생각해보니 몇 달 전에 남편이 주문 해달라던 음식 주문을 이번 일처럼 결제까지 안하고 잊은 적이 2~3번 있었다. 남편 나름대로 먹고 싶은 걸 요청한건데 내가 주문하겠다 해 놓고 왜 이렇게 안 오나 했더니 결제조차 안 되었다는게 허탈하고 속상했나보다. 그렇다고 한 마디 하자니 먹는 거 가지고 그러는게 좀 속 좁게 느껴져서 넘어간 게 내심 쌓였을테고... 그러다 비슷한 느낌의 일이 일어나니 툭 터지듯 나와서 필요 이상의 공격+비난의 형태가 되었겠지. 여기까지 혼자 꽤 신빙성 있는 추리를 하다 보니 또 나름 남편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차라리 그 때 그때 좀 더 가볍게 ”내가 요청한 건 신경 좀 써줬으면 좋겠어.“ ”기대하고 있었는데 안 오니 좀 허탈하네..“ 표현했다면 나도 정말 미안해하고 더 노력했을텐데... 여전히 아쉬운 게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순간순간 말하지 못하고 쌓아 둔 그의 마음도 쉽지 않았겠지 해 본다.     

 

내 마음에 대해 먼저 그럴 수 있겠다 해 주니 그의 마음에 대해서도 얼추 그럴 수 있겠다가 된다. 다만 그 맥락을 이해했어도 부탁은 분명히 해야겠다. 남편도 아예 모르고 있는 패턴은 아니겠지만 정확히 내가 어떤 마음을 느끼고 뭘 원하는지는 말해야 하니까. 말 한다고 바로 되진 않으니 둘 다 또 열심히 부대끼며 노력해야겠지. 내 맘 같지 않아 시원하게 욕하고 싶다가도 한 번은 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하는 노력, 그게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방식이고 내가 더 성숙해지려는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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