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와 사이좋게 지내기로 했습니다.

나에게 건네는 다정한 말

by AskerJ



날씨가 좋은 주말, 아이들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주말을 불태우고

다시 자유시간이 있는 월요일로 넘어왔습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가 있는 동안 어떤 시간을 보낼까 생각을 하는데 문득

'나와 사이좋은 하루를 보내고 싶다.

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육아를 시작하고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면

가장 관계가 안 좋아진 것은 아이들과의 관계도 아니고

남편과의 관계도 아니고 바로 나와의 관계였습니다.


처음하는 육아이고, 처음 하는 부모노릇인데

잘 못하고,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용납해주지 않았고,

아이에게 열 번 다정해도 한 번 화를 내면 그 하루를 완전히 잘못한 것처럼 몰아세우곤 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좋은 말 10번을 듣는 것보다 싫은 소리 1번을 듣는게 마음에 더 남곤 하잖아요

그런데 심지어 잘했다는 칭찬 하나 없이 욕만 들으니 매일 매일 슬픈 마음으로 위축되어

'내일이라고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만 커져가는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날에는 작은 것 하나하나가 무섭기 시작하더라구요

아이들 하원시키러 오가는 길에 교통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아이들이 저녁을 잘 먹지 않으면 어쩌지, 떼부리는 걸 내가 참지 못하면 어쩌지..

기껏 주어진 자유 시간을 이런 저런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며 보내곤 했습니다.


뭔가를 잘 못하면 어쩌지...라는 걱정 이면에는

'잘해내지 못하면 안된다.' 는 그 누구에게도 가하지 않지만

나에게는 당당히 가하는 채찍질이 숨어있었죠.


'그 누구에게도 가하지 않는다'라곤 했지만 사실 나에게 그런 잣대를 들이밀면

다른 대상에게 그 잣대를 들이밀지 않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즉, 나도 모르게 이제 막 세상에 나온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나와 별 다를바 없는 초보 아빠인 남편에게도 그런 채찍질을 대놓고든 속으로든

들이밀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다행히 제 장점 중 하나는 문제라고 인식되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우선은 병원에서 그간 먹던 우울약과 더불어 불안이 높아질 때 먹으면 좋은 약

추가로 처방받았습니다. 플라시보 효과도 곁들여졌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무서워졌을

그것을 가라앉힐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고

실제로 약을 먹었을 때 마음 어딘가가 조금 더 단단해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약에 의지한다는 느낌이 싫고 궁극적인 해결방법을 찾고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 책에서 '긍정확언'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는데,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말을 해주려다보니 확실히 알겠더라구요

내가 평소에 내가 일일히 알아차리기도 어려울만큼 부정적인 말들, 비난하는 말들을

스스로에게 틈틈히 건네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아이들과 어디 놀러가려고 일정을 짜두고 나면 어디 놀러나가기 전에 챙겨야 할 것들,

가서 애들 챙기느라 고생할 것들부터 생각하고

하루를 미처 다 보내기도 전에 오늘 하루가 또 얼마나 힘들지를 생각하고 있더라구요.


긍정적인 말을 넣으려다 이미 그 안에 꽉 차 있는 부정적인 말들을 보고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저는 사실 주위 사람들에게(가족들 제외...) 꽤 다정하고 따뜻한 말들을 잘하는 사람인데

스스로에게는 자꾸 바닥으로 가라앉을 수 밖에 없는 말들만 건네고 있었던 거예요.


그 뒤부터는 긍정적인 말을 건네는 것보다 우선, 내가 습관적으로 나에게 건네는

어두컴컴하고 아픈 말들을 멈추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빠는 어느 날 전화를 걸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 딸은 워낙 성격이 참 밝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된다."구요

그 말을 듣고 어쩐지 목이 메어 간신히 흘러나오는 목소리로

'아닌데, 비슷한데요."라고 대답하고 말았지만, 아빠의 그 말은 며칠동안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정말 내가 변했나 싶어서요. 사실 아빠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나는 애초에 아빠가 생각하는 것만큼 밝지만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부정적인 생각이 더 많이 차 있는 사람도 아니었으니까요

사실 이 전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이제 기억도 잘 안날 뿐더러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나를 오랜 시간 너무 가혹하게

대했다는 점이고 이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나와 좀 사이좋게 지내길 원한다는 거죠.


오늘은 주말을 열심히 보낸 여파로 너무 피곤해서 집에 와서 좀 자고나서

이대로 계속 자버릴게 무서워 애써 몸을 일으켰고, 오늘 해야될 일들에 대해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원래의 나라면 한 시간 정도 자버린 것에 대해서도 나무랐을테지만

오늘은 자연스러운 그 잔소리를 멈추고 내 안의 모든 다정함을 끌어모아 얘기해주었어요.

"주말동안 아이들 열심히 보느라 고생했으니 푹 쉬어도 괜찮아."

이 다정한 말에 한결 안심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와 사이좋게 지내는 하루를 계속 연습하다보면

언젠가는 아빠의 걱정이 아니라

안심되는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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