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로 건네는 마음

by AskerJ


아들이 '미안해'라는 말을 배웠다.

영유아 검진을 갔더니 잠들면서 마시는 우유를 끊어야 한다고 해서

자려고 누워 자꾸만 우유를 찾는 딸에게 내가

"지금 우유를 마시면 배가 아파서 마실 수가 없어. 미안해~" 라고 하는 여러 번 말하는 것을 듣고 배운 것이다.


어느 날, 딸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두고 짜증을 내며 울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아들이 그런 딸을 보며 "미안해~"라고 했다.

말의 뜻을 얼마나 알고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일에

우는 상대를 달래기 위해 선뜻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걸 보고 겉으로는 너가 뭐가 미안하냐며 웃었지만 살짝 감동 받았다.

내 잘못이 아니어도 너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랑의 마음이 느껴져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미안하다는 말은 점점 하기도, 듣기도 어려웠는데

육아를 하니 내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자주 나오고

심지어 이제 막 세상에 나와 살아온 지 2년이 된 친구로부터 듣기도 한다.


내 미안해의 대상은 대부분 내 짜증과 화를 받은 아이들이고,

아이들 육아를 도와주시는 양가 어른들일 때도 있고,

정신 없어 내가 뭔가를 잊을 때는 남편이 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이슬아 작가는 글쓰기에 대해서

'나에 대한 부지런한 사랑'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내가 한 동안 글을 쓸 마음도, 쓸 내용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꽃 한 송이, 아이들 행동과 표정 하나하나에 감동하는 어머님을 보면서

나는 아무 것에도 감흥이 없는 걸 탓했고,

일상에서의 작은 집안일들에도 버거워하는 나를 보면서

그냥 좀 선선히 하면 안되겠냐고 탓했고,

하루를 어찌어찌 보내고 나면 오늘은 한 게 뭐가 있나 되돌아보면서

딱히 이렇다 할 것 없이 보낸 것을 탓했다.


그렇게 빽빽하게 나를 탓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내가 어떤 상태인줄도 모르고

내가 뭘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둘 여력이 없으니 역시 몰랐다.

나에 대한 부지런한 사랑은 커녕 나에 대한 부지런한 비난이 더 커서

이런저런 비난과 지적이 잔뜩 적힌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여

나라는 사람을 가려놓은 것이다.


오늘은 그 포스트잇을 하나 둘씩 떼어내며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미안해'를 건네야겠다.

사랑해 이 전에 미안해가 필요할 때인 것 같아서.

사랑해를 미안해로 건네야 할 때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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