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라도 또 놀러 와.밥 먹고 자프면."

2015년 동화작가의 집

by 연두의 무한책임

마지막 집 이야기의 주인공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한 동화작가다. 쾌활하고 에너지 넘치고 목소리가 낭랑한 분이었다. 목소리에는 햇살이 미끄러지는 듯한 발랄함이 가득했다.

그날, 우리는 작가님 집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그 집은 구조가 무척 독특했다. 몇 개의 방을 이어서 붙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이 얼른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작가님의 인생 스토리를 듣고서야 짐작할 수 있었다.

가난한 셋방살이로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작가님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전업주부로 지냈다고 한다. 남편의 실업과 보증, 몰락 그리고 투병생활... 집에 계속 있다가는 끝내 미칠 것 같았던 그 시간, 작가님은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소 자신의 꿈이었던 동화작가가 되기 위해, 주경야독 습작과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40대에 동화작가가 되었다. 3개의 단칸방으로 이어져있던 한 채의 집을 구입했고, 방을 터서 하나로 이어서 집은 무슨 설치미술품과 같은 독특한 모습이 되었다. 개성 있는 건축가가 만든 예술품 같기도 했고, 그냥 막 아무렇게나 이어져있는 미로와 같기도 했다.

허나 분명한 건, 그 집은 무척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뻔하지 않은 집. 작가님은 방을 다니면서 소개를 해줬다. 방의 벽을 하나씩 헐고 서로 이어 붙이면서 부스러기처럼 생겨났던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어찌 보면 궁상스러울 수도 있었으나 작가님은 무척 쾌활하고 흥미롭다는 듯 자신의 집을 소개했다. 그리고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자신의 힘으로 차근차근 구입한 집이라고. 잡지에 나올만한 집은 아니었으나 이 집 때문에 빚을 진 일도 없고 마음 상한 일도 없었으니 이만하면 과분한 집이라고 말했다.

작가님 집 마당에는 동백꽃이 있었다. 동백꽃은 모가지를 뚝뚝 떨어뜨리며 땅에서 또 한 번 피어나고 있었다. 한 송이를 주워서 우리는 그 핏빛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동백꽃 앞에서 인터뷰를 했다.

주제는 4.16 세월호였다. 때는 2015년 4월, 세월호 1주기를 앞둔 시점이었다. 작가님은 다른 작가들과 함께 진도 팽목항에서 공동작업을 하고 있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글들을 적은 타일들을 팽목항에 설치한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는 작가의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 집은 40분가량 떨어져 있는 시골에 있었다.

낮은 산 중턱에 위치한 그 집은 앞으로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있었는데 전혀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호쾌한 기분이 들었다. 공기는 상쾌했고, 눈 맛이 시원했다.

작가의 부모님은 우리 촬영팀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대부분의 시골집이 그렇듯 거실로 이어진 마루 사방을 비닐로 빙 둘러서 추위를 막았다. 아늑했다. 마루에는 두툼한 카펫을 깔아놓아 안온했다. 시골집인데도 발이 시리지 않았다. 작가의 노부모님은 우리를 아랫목으로 끌어당기며 여기 앉으라고 했다.

작가님은 부엌에 들어가서 어머니가 시골밥상을 차리는 것을 도왔다. 다리를 하나씩 펴야 되는 둥근 나무 밥상을 펴놓고 나물, 김치, 생선, 찌개, 두부부침 등 정갈한 반찬들을 하나씩 단정하게 올려놓았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외할머니가 차려주던 빛나는 밥상이었다.

밥을 다 먹고 난 뒤, 작가님은 뒷방으로 가더니 나에게 손짓을 했다. 라면 상자가 있었고 그 안에는 뭔가 작은 것들이 꿈틀거렸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주 여리고 작은 병아리들이었다. 개나리처럼 샛노란 빛깔이었다. ‘어디서 이런 노란 빛깔이 왔을까’싶은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순정한 색채. 작가님은 병아리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본 뒤 낭랑한 목소리로 ‘삐약아’라고 병아리들을 불렀다.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작가님의 평소 성품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부모님 댁 마당에는 작은 축사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오리, 강아지, 고양이 닭들이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활보하고 있었다. 작가의 노모는 먹이를 가지고 축사로 들어가서 골고루 먹이고 자애롭게 쓰다듬었다.

나는 그때 막 낳은 따끈따끈한 달걀을 처음 만져보았다. ‘이런 것이 생명이구나...’이 작고 따뜻한 것. 체온만으로도 찌르르한 전율과 애틋함이 전해지는 이 뭉클함의 정체는 바로 생명이었다.

작가님과 노모는 앞산이 훤히 병풍처럼 둘러있는 마당에서 인터뷰를 했다. 이제 연한 연둣빛이 막 시작된 산에는 드문드문 산벚나무가 번지고 있었다. 모녀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손을 쓰다듬기도 하고,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촬영을 마치고 집을 떠나야 하는데 나는 그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오고 싶었다. 그냥 언제든 지나다 들러도 손 한번 따뜻하게 잡아줄 어르신이 계시는 집이었다.

“어머님. 이 집 너무 좋아요. 또 오고 싶어요.”

“그려. 언제라도 또 놀러 와. 밥 먹고 자프면(싶으면).”

“네. 꼭 올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알았다. 이 집에 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이 집이, 그 노부모가, 샛노란 생명이 그리울 때면 휴대전화 속 사진을 보고 또 볼뿐이라는 걸. 산새가 울던 그 조용한 시골집을 떠나오며 나는 노부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작가님과 다음에 진행할 진도 팽목항 촬영 스케줄을 잡고, 촬영 내용을 상의했다. 타일에 무슨 글귀를 쓸지 결정했다고 했다.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애들아. 이제 집에 가자’

‘이제 집에 가자’라는 그 다정하고 평범한 말.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너무 슬픈 말. 이루어질 수 없는 말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 말을 되뇌어보았다. 벚꽃잎이 하늘거리며 땅으로 떨어졌다. 차들이 요란스럽게 지날 때마다 땅에 떨어진 연분홍 꽃 비늘은 순하게 풀썩 펄럭였다 이내 땅으로 낙하했다. 그곳이 끝내 자신들이 돌아갈 곳이라는 듯. 동화처럼 순한 작가님과 나는 하늘과 땅 사이를 가르며 그렇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작가의집.jpg 작가님 시골부모님 집에 있던 병아리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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