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정우선배의 자취방
내가 다니던 대학 후문에는 유난히 자취하는 학생들이 많이 살았다. 방 값도 저렴한 데다 학교와 가까워서 타 지역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자취를 했다.
나와 나이 차이가 여섯 살 나는 예비역 정우 선배도 그 자취생 중 한 명이었다. 동아리 남자 선배들은 정우 선배 자취방에 삼삼오오 자주 드나들었다. 학교와 가깝기도 했거니와 다들 허물없는 사이여서 수업이 없을 때면 자취방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라면을 끓여먹거나 낮잠을 자곤 했다.
남학생 자취방은 지저분할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처음 따라갔던 나는 정우 선배 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선배의 방은 무척 깔끔했고 잘 정돈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던 게 아닌가 싶다. 성인 남자 다섯 명 정도가 나란히 누우면 꽉 들어찰 그 방은 앉은뱅이책상 하나와 비키니 옷장 하나만 있었을 뿐이었다. 방바닥은 윤이 났고, 부엌은 먼지 한 톨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정우선배는 평소 털털하고 덤벙거리는 스타일이었지만, 한 번 맡은 일은 꽤 꼼꼼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손재주가 좋아 손끝이 맵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예전에 동아리방 대청소를 할 때, 걸레질을 어찌나 깨끗이 하는지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떠들썩한 자취방이었지만 집주인 할머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방안에만 계셨던 것인지, 아니면 집에 안 계셨던 것인지... 그 시끌시끌한 속에도 도통 인적을 내비치지 않았다. 언제가 한번 햇볕이 쨍한 여름에 선배들을 따라 라면을 먹으러 정우 선배네 집에 갔다. 콘크리트 마당이 유난히 하얗게 빛났고 정우 선배 방이 마치 냉장고처럼 서늘하게 느껴졌던 그 여름. 그날 마당에 나와서 우리를 지그시 바라보던 할머니를 보며, 저분이 주인이신가 보다 했다. 정우 선배에게 들은 얘기로는 김치랑 쌀도 가끔씩 가져다준다고 했는데, 그 할머니가 맞는지는 아직도 모를 일이다.
시험기간에 정우선배 자취방은 느닷없는 합숙소 내지는 시험 캠프(?)로 변했다. 정우선배 집에서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다. 학교 도서관과 무척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 자리를 맡기 위해서 단체로 그곳에서 합숙을 했던 것. 물론 모두 남자 선배들이었다.
까마득한 1학년이었던 나는 선배들이 새벽에 맡아놓은 자리에 오전 9시쯤 느지막이 나와서 그 자리에서 공부를 하곤 했다.
당시 선배들은 다섯 명 정도 합숙(?)을 했는데, 내기를 해서 한 명에게 몰아주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선택된 그 한 명은 나머지 네 명의 책가방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새벽에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우르르 올라가서 새벽에 신문을 돌리듯 여기저기 가방을 던져놓음으로써 자리를 맡는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정우선배 집으로 돌아와 남은 사람들을 깨운 뒤, 라면을 끓여서 아침을 준비한다고 했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 도서관으로 자리를 맡으러 가는 것도 서러운데 아침 식사 준비까지 해야 한다니... 그 전날 당번을 정하기 위해 게임을 하기도 하고 가위 바위 보를 하기도 한다는데, 꼭 걸리는 사람만 걸렸다. 그 당번에 자주 당첨(?)되었던 희석 선배는 매번 투덜투덜하면서 자리를 맡곤 했다. 새벽에 배낭 다섯 개를 메고 도서관으로 향했던 희석 선배는 지금도 만나면 그때 일을 이야기하며 서러움을 토로하곤 한다.
선배들이 모두 졸업반이 되었을 때, 정우선배는 개인적인 일로 휴학했다. 자연히 그 집은 비우게 됐고, 우리들의 아지트도 사라졌다. 그리고 1년 후 정우 선배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운이 좋게 다시 그 자취집, 그 자취방에 거처를 구할 수 있었다. 함께 어울려 지내던 선배들이 모두 졸업을 하고 학교를 떠나자 정우 선배의 자취방도 고요해졌다. 왁자지껄하고 정신없었던, 시험기간 새벽 5시면 자명종이 울리고 훈김 나던 그 자취방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내가 대학교 2학년 겨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정우선배랑 몇몇 후배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헤어지는데, 정우 선배는 내게 자기 집에 들렀다 갈 수 있냐고 했다. 나에게 꼭 줄 게 있다고 했다.
2년 간 뻔질나게 드나들던 집이었지만 왠지 갑자기 두려워졌다. 초저녁이었지만 겨울이어서 깜깜했다. 더구나 선배 자취방은 외진 곳에 있었다. 그 시간에 남자 자취방에 단 둘이 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 선배에게 별 다른 마음이 있어서는 그런 것은 아니려니, 생각하고 내심 쿨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선배를 따라가는데 가슴이 쿵쿵거렸다. 당시 나는 사귀는 사람이 있었고, 정우 선배와는 동기간이었다. 정우선배는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정우 선배를 가로막고 ‘선배, 저 사실은 사귀는 사람 있어요’라고 커밍아웃(?)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혼자 별 생각을 다 했다.
선배 자취방 대문에 이르자 선배는 나를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혼자 방에 들어갔다 나온 선배는 뭔가를 가지고 나왔다. 손재주 좋은 선배가 나무로 직접 깎아서 만든 비행기 조각품이었다. 매우 날렵하고 정교했다. 윤까지 반들반들 낸 뒤여서 기성품을 보는 것 같았다. 선배는 파일럿이 되고 싶었지만 색맹이어서 그 꿈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저한테 이걸 왜 주세요?”
선배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냥’이라고 말하며 씩 웃었다.
선배는 나를 큰길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함께 논둑길을 걸어가는데 달이 유난히 환하게 비쳤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선배는 그 썰렁해져 버린 자취방에서 혼자 그 나무 비행기를 깎았던 거다. 지난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한 후배에게 그 작품을 건네주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그때 선배의 앞을 가로막으며 ‘선배, 저 사실은 사귀는 사람 있어요’라고 오버액션을 했더라면? 지금도 그날 밤 동짓날 논둑길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생각해보니, 그 날이 선배 자취방에 갔던 마지막 날이었다.
자취집뿐 아니라 그 마을 자체가 이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상전벽해. 논둑길은 일찌감치 콘크리트로 메워졌고 지금은 근사한 전원주택과 잘 가꾸어진 조경수, 외제차들만 드문드문 있을 뿐이다.
정우선배의 자취방을 떠올리면, 달이 유난히 밝았던 그날, 가르마처럼 하얗게 빛나던 그 논둑길만이 내 가슴에 말줄임표처럼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