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애만 봐주다 늙어 죽을래?"

1993년 은미네 집

by 연두의 무한책임

어느 날 은미는 나를 조용히 불러냈다. 부탁이 있다고 했다. 파스를 붙여달라고 했다. 나는 은미가 잠을 잘 못 자서 근육이 뭉쳤겠거니 생각했다. 혹은 담이 들었거나.

은미는 나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화장실 한 칸으로 들어가더니 나보고 들어오라고 했다. 문을 닫더니 은미는 교복을 벗었다. 아무리 단짝친구라 하지만, 알몸을 본다는 건 민망스러운 일이었다. 은미는 내게 브래지어까지 무장해제 시킨 등을 내보였다. 등에는 내가 이제껏 보지 못한 붉고 푸른 멍이 피부처럼 들러붙어있었다.

나는 알면 안 되는 비밀을 알아버린 사람처럼 어쩔 줄 몰랐다, 은미는 태연하게 파스를 붙여달라고 했다. 나는 수선을 떨면서 멍자국의 정체에 대해 물었다. 은미는 조용하게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언니한테 맞았다,고.


내 친구 은미는 내가 무척이나 사랑한 친구였다. 우린 비 오는 교정을 함께 뛰면서 깔깔거렸고 <말테의 수기>를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하늘의 별처럼 이야기가 넘쳐났고 그럴 때 우리의 목소리는 빛났다. 나는 은미를 너무 사랑했다. 은미를 향한 내 마음은 무조건이었다. 그렇게나 각별했던 친구. 은미.

은미의 언니, 은정은 은미와 4살 차이가 났다. 우리가 고3때, 은정 언니는 대학교 3학년이었다. 근처 국립대학의 수학교육과를 다니고 있었고, 과톱을 놓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은정 언니와 우연찮게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잘 웃는 몽상가였던 내 친구 은미와는 달리 은정 언니는 야무지고 도드라지고 앙칼지고 현실적이었다.

은미가 은정 언니에게 멍이 지도록 맞은 이유는 은미가 공부를 안해서라고 했다. 혁대로 맞았다고 했다. 나는 화가 나서 은정언니 욕을 했고, 은미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내가 팔팔 뛰니까 나중에 은미는 ‘자기가 맞을 짓을 했다’는 식으로 말을 돌렸다.

은미는 언니와 함께 고향 시골을 떠나 자취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언니는 동생을 완벽히 통제하려 했다. 빠릿빠릿하고 야무지고 칼 같은 언니가 보기에 동생은 너무나 한심하고 천하태평처럼 보였던 것일까. 항상 닦달했다. 시골에서 고생하는 엄마를 대신해 엄마노릇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작용했을 수 있다. 둘은 자매이면서도 자매 같지 않았다.

나는 은미네 집에 놀러가고 싶었다. 은미네 자취집 뒤편에는 이슬람 성원이 있다고 했다. 오전 11시 가량이면 종소리가 난다고 했고, 그때에 맞추어 이슬람 신도들이 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90년대 초반, 이슬람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이슬람 성원은 중동에나 있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나는 은미네 집이 더욱 가고 싶어졌다. 출입을 금하는 금단의 사원을 향한 갈망 같은 것이었다. 은미는 언니가 없는 틈을 타서 나를 초대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한 번도 이뤄지지 못했다. 마음씨 좋은 1층 주인집 아주머니와 하얀 이슬람 성원 건물, 종소리에 자신의 기도를 파란 하늘에 날려 보내는 신도들……. 나는 은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집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은미네 집에 가지 못했다. 그 후로 우리는 서로의 결혼을 전후로 해서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며 드문드문 안부를 이어갔다. 내가 먼저 결혼을 하고 은미가 결혼을 다음 전까지는 그래도 연락이 그런대로 닿았다.

모든 것은 은미가 은정언니네 집에 취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은정 언니는 약사인 남편과 큰 약국을 차렸다. 약국은 무척 잘되었다고 했다. 맞벌이를 하는 까닭에 육아가 문제였다. 마침 은미네 아이들과 언니의 아이들은 비슷한 또래였다. 은미는 언니에게 월급을 받고, 언니네 아이들을 돌봐주러 언니네 집으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언니 집에 일찍 출근한 은미는 언니와 형부를 깨운 뒤, 아침식사를 준비해서 식구들을 먹인다. 그 와중에는 언니내외가 약국에서 먹을 도시락을 싼다. 언니 내외가 출근한 뒤 은미는 네 아이들의 식사와 목욕, 간식, 배변활동과 놀이 활동을 맡았다. 게다가 언니네 집 청소와 세탁까지. 언니 내외가 약국 문을 닫고 집에 돌아오면 식구들의 저녁식사까지 차려주고 자신은 집으로 퇴근한다고 했다. 정작 은미 자신의 집 냉장고에는 고추장 단지 하나만 있다며 웃었다. 은미네 식구들 모두 세 끼를 언니네 집에서 해결하기 때문이란다. 은미네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다.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었다. 나는 은미가 그렇게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은미야. 네 일을 찾아’

‘언니네 집에서 애만 봐주다 너 늙는다’

‘언니가 월급은 많이 주니?

순한 은미는 나의 다그침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기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를 댔다.

‘어차피 나도 아이들을 키워야 하니까 잘됐지 뭐.’

‘언니가 우리 애들 옷도 사주고 책도 사주고... 다 사줘.’

‘돈 쓸 일이 없으니까 돈이 남아’

하지만 은미는 자신만의 시간이 없었다. 나와 한 번씩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급기야 ‘너희 언니는 악덕 고용주다’라는 말을 했고 은미는 처음으로 내게 정색을 하며 ‘아니야. 그렇지 않아’라고 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가보다 라고 나는 나대로 서운했다.

2월의 어느 스산한 날. 나는 은미네 언니가 사는 아파트에 마침 볼 일이 있었다. 나는 은미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은미 언니네 동 앞에는 놀이터가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은미에게 큰마음 먹고 전화를 했다. 잠깐 네 얼굴을 보고 싶다고. 은미는 살금살금 기어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이유는 네 아이들이 모두 감기약을 먹고 이제 겨우 잠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조용히 잠깐 네 얼굴만 잠깐 보고 가겠다고 했다. 은미는 주저했다. 간신히 재운 아이들, 한 아이가 뒤채이면 네 명이 줄줄이 깨어나는 바람에 그 시간이 얼마나 유리처럼 아슬아슬한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은미의 부드러운 단호함이 못내 서운했다. 2월이었고 날씨는 흐렸다. 게다가 우리는 몇 달이나 못 본 상태였고, 이대로라면 몇 달, 몇 년을 못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끝내 은미를 만날 수 없었다.)


지금도 은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내가 가장 사랑한 친구였으나 그 친구의 집은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집을 떠올리면 가장 씁쓸한 친구. 지금쯤은 언니의 집에서 해방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이슬람사원.jpg 은미네 집 뒷편에 있었던 이슬람사원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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