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민희네 집
내 친구 민희는 쌍둥이였다. 일란성쌍둥이. 내 친구가 1분 먼저 태어나서 언니라고 했다. 동생 민화는 같은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민희와 민화는 얼굴 생김도 헤어스타일도 말투도 똑같았다. 일란성쌍둥이를 가까이에서 처음 본 나는 한동안은 둘을 구분하지 못했다.(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민희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민희는 나를 무척 좋아했다. 마치 연인에게 구애를 하듯, 문구용품이나 편지 등을 주면서 이야기를 건네고 자판기 커피도 뽑아서 내게 건네주곤 했다. 우리 둘은 ‘회색 노트’의 주인공처럼 서로의 일상과 고민을 한 권의 수첩에 나눠 쓰고 있었다. (그 수첩은 5권가량 되는데, 아직도 잘 보관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sns 메시지를 보내는 것만큼이나 민희와 나는 무수한 쪽지를 주고받으며 바닷속 맷돌의 소금처럼 끊임없는 이야기를 만들고 또 쏟아냈다.
민희는 이벤트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중간고사 기간에 민희가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엽서를 보냈다.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우리를 위해 사연을 띄운다고 적었고, 우리는 공부보다는 라디오 사연에 더 집중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마침내 문세 오빠의 입에서 우리들의 이름이 나왔을 때, 우리는 전화기를 붙잡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민희네 집은 임대 아파트였다. 페인트는 바랬고, 시멘트 벽은 부슬부슬 떨어져 나간 집이었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에 주방이 있었고 주방 옆에는 오빠 방, 그리고 문 맞은편은 화장실, 왼쪽에는 엄마가 사용하시는 큰방과 민희 쌍둥이가 사용하는 작은 방이 오밀조밀 있었다.
민희와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단짝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몇 번인가 가본 뒤, 고3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에는 거의 살다시피 했다. 나를 비롯해 친구들이 가면, 민희는 인스턴트커피를 머그컵에 타서 쟁반에 얌전히 받쳐가지고 왔다. 어엿한 안주인이었다.
우리는 화장대, 침대가 빼곡히 들어차고 곰인형, 다트판, 신승훈 포스터 장식으로 여백이라고는 1도 없던 그 방에 다닥다닥 누워서 유행가를 듣거나, 화장법이라든지 남자 동창들, 연예인 이야기 등을 하면서 낄낄거렸다. 깔끔한 민희 성격답게 방은 무척 아늑하고 아담했다. 그곳은 우리의 아지트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서울로 취업을 해서 올라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결혼을 할 때까지 민희와의 우정은 이어졌다.
민희는 감수성이 풍부한 친구였다. 쉽게 흥분하고 감동하는 반면 쉽게 우울해하고 슬퍼했다. 롤러코스터였다. 그런 민희 앞에서 나는 가끔 난감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을 밋밋하게 보낸 나와 달리 민희에게는 고등학교 3년간 한결같이 좋아했던 남자 친구가 있었고, 흠모했던 선생님이 있었다. 사랑 없이는 못 사는 친구였다.
대학 졸업 후 오랜만에 민희를 만났을 때였다. 자신이 사귀는 사람이라며 한 남자를 내게 소개해줬다. 결혼까지 생각 중이라는 그 ‘오빠’는 일단 민희와 나이 차이가 많았고, 민희와 아무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너무 ‘평범한 아저씨’처럼 보였다. 작업용 점퍼 호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무심한 듯 커피숍으로 들어온 그 남자를 본 순간, 나는 그가 민희를 감당할 수 없을 것임을 예상했다.
무슨 공장에서 일을 한다고 했는데, 엄마가 교제를 반대한다고 했다. 나는 왜 민희가 이 남자와 사랑에 빠졌는지 이해가 되질 알았다. 민희가 좋아할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남자였다.
가족과 친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희는 결혼을 감행했다. 결혼식을 마친 뒤 약 3개월이 지난 후, 나는 민희의 신혼집에 놀러 갔다. 초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7시도 안되어 깜깜해졌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어디쯤엔가 내렸다. 민희는 나를 자꾸 캄캄한 곳으로 이끌고 갔다. 처음 보는 주택구조였다. 한 건물 안에 여러 집들이 병렬형으로 문이 달려 있었는데, 문들은 다 똑같았다. 쇠락하고 어두웠다.
“좀 후졌지?”
민희의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못한 채 나는 그저 애매하게 웃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집에 들어섰을 때 나는 너무나 환한 방에 다시 한번 놀랐다. 온갖 레이스와 곰인형, 자수, 촛불, 사진, 커다란 결혼식 액자 등으로 꾸민 민희의 방은 너무 밝고 포근해서 차라리 눈물이 났다. 좁긴 하지만 둘이 살기에는 딱 좋다면서, 누가 물어보지도 않은 말들에 민희는 자문자답하듯 말을 이어가며 인스턴트커피를 타서 나에게 건넸다. 고등학생 때 그랬듯, 쟁반에 얌전히 잘 받쳐왔다. 돈을 벌어서 이사 갈 거라고, 결혼 반대한 사람들 보란 듯 잘 살 거라고, 민희는 못 박듯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말하기 껄끄러운 부부관계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렸다.
민희네 집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민희는 어느 날부터인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는 민희 집을 찾아갈 수도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집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꿈결에 다녀온 집 같았다. 그 누구도 민희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몇 년 후, 한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민희가 이혼했다는 얘길 들었다. 그 친구는 민희와 연락을 하는 듯했다. 내가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자, 안타까운 듯 고개를 저었다.
“그냥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해.”
왜 나와 연락을 끊은 것인지, 민희는 왜 나를 잊고 싶은 것인지, 나는 당시 수백 번 스스로 물어보며 괴로워했다. 물론, 지금도 그 이유는 알지 못한다. 민희를 만난 적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알지 않으려 한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희에게는 민희 나름의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방에 숨고 싶을 때가 있듯이 말이다. 그 방에서 나오면 이젠 내가 민희에게 커피를 타서 건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