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윤정이네 집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장난을 했던 시절. 새가슴이었던 나는 직접 하지는 못하고 친구들이 하는 걸 한구석에 숨어서 지켜보기만 했다. 전자음 비슷한 소리가 나거나 멜로디가 울려 퍼지면, 스피커에서 잠시 후 ‘누구세요?’라는 주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애들은 와다다다 한구석으로 숨어서 주인이 문으로 나오길 기다렸다. 주인아주머니는 문을 열고 나온 뒤 누군가 장난쳤다는 사실을 알고 씩씩거리거나 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초연했다. 대개 그런 초인종이 있는 집은 양옥집이었으며 우리 눈에는 퍽 으리으리해 보였다.
윤정이네 집도 양옥집이었다. 윤정이는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1학년에 단짝이었는데, 내가 2학년 때 새로운 학교로 옮겨가며 연락이 끊긴 친구였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같은 반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는 서로가 너무 크고 달라졌음을 깨닫고 어색해하며 반가워하기도 했다.
윤정이는 키가 컸고 어깨가 넓었다. 눈썹이 짙었으며 쌍꺼풀이 짙은 두 눈은 총명해 보였다. 윤정이에게는 언니 둘과 오빠가 있었는데, 특히 둘째 언니는 정말 예뻤다. 어깨가 넓고 다부진 윤정이와 달리 호리호리하고 가냘펐으며 특히 한쪽 눈만 쌍꺼풀진 눈은 어딘가 모르게 우수가 드리워졌고, 센치해 보였다. (윤정이는 항상 그 점이 불만이었다. 자신과 큰 언니는 살집이 있는 엄마를 닮아서 뚱뚱하고, 둘째 언니와 오빠는 호리호리한 아빠를 닮았다고 속상해했다.)
중학교에 다시 만난 윤정이와 나는 금세 단짝이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윤정이 집에 갔을 때, 나는 초인종이 있는 윤정이의 양옥집을 우러러보았다. 어쩌면 초인종 장난을 한 번쯤 쳤을지도 모르는 그런 집 중의 하나였다. 윤정이는 초인종 장난을 치는 사람들 때문에 귀찮아 죽겠다고 투덜거렸다. 나는 그 말에 뜨끔했는데, 알고 보니 윤정이가 말한 대상은 둘째 언니를 쫓아다니는 중학교 고등학교 오빠들이었다.
윤정이네 집에 들어가면 나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대문을 열고 들어사면 잘 가꿔진 정원과 마당이 있었고, 현관문을 들어서면 나무에 칠한 유약 같은 냄새가 은은히 떠돌았다. 거실에는 가죽 소파가 떡하니 있었고 그 밑으로는 카펫이 깔려있어서 품격을 더해주었다. 거실 큰 유리창 앞에는 관엽식물들이 줄줄이 놓여있어 숲 속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샹들리에가 매달려있는 천장과 밟을 때마다 기분 좋은 끼익 소리가 나는 2층 나무 계단, 어찌나 광을 내놓았는지 자칫 미끄러질 듯한 밝은 갈색의 마룻바닥은 내가 처음 접한 것들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나는 윤정이네 집의 앤티크 전화기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지금도 화려한 앤티크 전화기를 보면 설렌다) 화려한 조각으로 꾸며진 금속 재질도 황홀하거니와, 수화기를 올렸다가 내려놓을 때의 그 촉감, 뭔가를 살포시 누르는 듯한 그 고급스러움을 나는 무척 사랑했다. 윤정이가 다른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몰래 그 전화기의 수화기를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윤정이네 집은 꽤 부유했다. 아버지는 시내에서 금은방을 하고 있었고, 또 친구와 동업으로 극장을 운영했다. 내가 자란 소도시에서는 내로라하는 유지였다. 그러나 내가 ‘부잣집이란 이런 것’을 피부로 체험한 것은 잘 가꾸어진 정원이나 샹들리에, 앤티크 전화기가 아니었다. 4형제에게 다 각자의 방이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부자’로 인식되었다. 여기가 내 방이야,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윤정이의 모습에서 난 언니와 함께 쓰는 내방 또는 온 식구가 한 방에서 의식주를 함께 해결하는 다른 친구의 집들을 떠올렸다
2층 윤정이 방에 들어서니 침대와 피아노가 있었던 것 같고, 한쪽 벽은 큰 유리창이 있어 정원은 물론 그 주변 집들이 한눈에 보였다. 책상 위에는 윤정이의 어릴 적 사진들이 오종종한 액자에 담겨 지난 시절을 회상하듯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있었다. 그중 하나는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윤정이 유치원 시절에 찍은 것이라 했다. 머리를 양쪽으로 묶고 색동 한복을 입고 서있는 윤정이는 마치 배우처럼 치마 한쪽을 왼쪽으로 여미며 고개를 45도 각도로 꺾고 오른쪽을 보고 있었다. 깜찍한 포즈였다. 아역배우 같았다.
“나, 이때는 정말 예뻤는데... 김지연은(윤정이의 둘째 언니) 어렸을 때 못난이였어. 못난이.”
윤정이가 극비리(?)에 보여준 사진 속의 둘째 언니 모습은 머리를 남자아이처럼 깎았고, 빼빼 마른 데다 신경질적인 모습이었다.
윤정이 방을 구경하고 물건들을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린 나에게 윤정이는 ‘배고프지? 부엌에 가서 뭐 먹자’라고 했다. 부엌 한가운데는 커다랗고 둥근 나무 식탁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식탁 유리 밑에 나풀거리던 레이스 식탁보도 잊을 수 없다. 오후 햇살이 비쳐 든 그 부엌에서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싫지 않은 다양한 양념 냄새와 나무 향기, 오후 햇살의 먼지 향기 같은 것들이 섞여 있었다.
“이거 먹을래? 칠면조 고기야.”
물론 나는 먹지 않았다. 칠면조를 먹는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왠지 칠면조를 먹는 사람들과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미국 사람들은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를 먹는다고 윤정이가 알려줬다. 그리고 시범을 보이듯 칠면조 고기를 마치 닭고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먹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나는 그 소도시를 떠났다. 윤정이와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십 수년이 흐른 뒤, 내가 그 소도시를 다시 찾아갔을 때 윤정이네 집은 찾을 수 없었다. 윤정이 아빠가 운영하던 그 금은방도 찾을 수 없었다. 도시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서 어디가 어딘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근거 없는 추측이지만, 어쩐지 윤정이는 ‘미쿡’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고기를 먹고 핼러윈데이에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며. 늘 둘째 언니와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꼈던 친구.
다시 만나면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네가 사실 더 예뻤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