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향숙 언니네자취방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서울의 한 작은 신문사에 취업을 했다. 향숙 언니는 그곳에서 만났다. 나는 취재기자였고 언니는 편집 디자이너였다. 나보다 4살이 더 많았다. 향숙 언니는 어리숙한 나에게 직장생활의 이것저것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각 부서 사람들의 특징과 성격, 식사 시간, 그 외에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를 언니는 다정하게 알려줬다.
언니는 나를 대학로에 데리고 갔다. 서울 지리를 모르는 나는 언니를 따라다니면서 신문물(?)을 경험했다. 서울에 오기 전, 피자를 먹어보긴 했지만 라자냐를 먹어본 것은 그때 처음이었다. 하얀 치즈가 쭉쭉 늘어나는 라자냐를 보면서 나는 이게 서울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22살, 언니는 26살이었다. 언니는 가끔씩 지각을 해서 편집국장한테 한 소리 듣곤 했다. 넉살 좋고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언니는 그럴 때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늦지 않을게요.’라며 싹싹하게 말한 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커피를 타서 돌렸다. 커피 위에는 계핏가루를 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건 언니의 취향이었다.
언니와 함께 대학로, 인사동의 피맛골 골목식당, 종로 시내, 홍대 앞 등을 함께 돌아다녔다. 언니와 나, 그리고 신문사 총무부 여직원이었던 도윤 언니까지 우리는 삼총사처럼 몰려다녔다. 그때 처음으로 스티커 사진을 찍으며 신기해했고, 노래방에서는 세 명이 어깨동무를 하며 에코의 ‘행복한 나를’을 열창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다 보니 시간이 늦어졌다. 나는 당시 신세를 지고 있던 송파동의 외숙모 집으로 가지 않고, 언니의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경기도 양평이 고향인 언니는 이문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인적 없는 거리를 언니와 나는 함께 걸었다. 불빛이 환하던 대로를 걷다가 언니는 어느 컴컴한 골목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노란 가로등만이 드문드문 거리를 밝히고 있었지만 꽤나 어두웠다. 갑자기 사위는 조용해졌고 나는 언니를 놓칠세라 부지런히 따라 걸었다.
언니는 어느 집에선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문을 삐걱 열었다. ‘아~ 이 집인가 보다’ 생각하며 나도 조심스레 문 사이로 몸을 집어넣었다. 언니는 공손하게,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닫았다. 어두워서 정확히 볼 수 없었고, 기억도 희미하지만 그 집이 꽤 규모 있는 큰 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언니는 그 집을 끼고 뒷마당 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작은 쪽문 앞에 멈춰 서더니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빼서 꽂았다. 그곳이 언니가 기거하는 자취방이었다. 나는 뭔가 모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언니의 사적인 공간을 엿보다는 설렘도 있었고, 누군가의 집에 오랜만에 가보았다는 반가움도 있었다. 그렇다고 집에서 한 잔을 더 하거나, 야식을 먹기에 주변은 기괴하리만치 조용하고 뭔가 가라앉아있었다. 아마 언니의 소곤거리는 소리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언니는 이 야심한 시간에 큰 소리를 내면 집주인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서였는지 ‘씻어’ ‘이걸로 옷 갈아입어’라는 말들을 아주 간결하고 조용하게 했다. 쓸 말이 한정되어있어 신중히 골라 쓰는 느낌이었다. 평소 말도 맛깔스럽게 구사하고, 침묵을 못 견뎌하듯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말을 붙이던 언니. 언니를 수다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밤, 언니네 집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는 간단히 씻고 자리에 나란히 누웠다. 방의 불빛도 조도가 낮아서였는지, 불을 켰음에도 회색빛 필터가 써져있는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 난 지금도 언니의 집 안을 상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마치 꿈속에서 다녀온 것처럼 모든 게 흐리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언니와 함께 나란히 누웠을 때 창에 비쳐 들어온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었다. 골목에 있던 가로등 불빛이 정확히 언니의 창밖에 비 쳐들어왔다. 방안의 불을 끄니 오히려 더 밝은 집이었다.
언니는 익숙한 듯 눈을 감고 이내 잠에 빠져들었지만 난 언니네 환한 가로등 불빛 때문에 쉽게 잠을 들 수 없었다. 천정은 높았고, 불빛은 밝았다. 몇 달 전까지는 남동생하고 함께 지냈는데, 동생은 입대를 해서 언니는 혼자 산다고 했다. 가끔은 혼자 사는 게 무섭다고 했다.
언젠가 언니가 농담처럼 하지만 진지하게 했던 결혼 이야기가 떠올랐다. 언니는 빨리 결혼을 해야겠다고 내게 말했다. 결혼을 하고 싶다가 아니라 해야겠다는 말에 나는 의아하게 물었다.
언니의 말에 의하면, 일요일 오전에 분명 책을 읽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눈을 떠보니 깜깜한 저녁이었다고 했다. 언니는 잠시 기절을 한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었지만 언니에게는 간질 증세가 미약하게 있었다. 언제 어떻게 또 기절을 하게 될지 모르는 불안 때문에 언니는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단다.
언니는 피곤했는지, 아니면 안도했는지 곧 잠이 들었고 나는 언니의 그 이야기를 난데없이 떠올리며 언니를 보았다. 언니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빨리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다음 해까지 우리는 별 일 없이 직장을 잘 다녔다. 여전히 어울려 다니며 라자냐, 피자를 먹었고 맥주를 마셨다. 피맛골 골목에서는 부침개도 먹고 낙서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는 또 지각을 하는 듯했다. 하늘이 곧 무너져 내릴 듯 흐렸던 2월 어느 날이었다. 오전에 취재를 다녀온 나는 오후쯤 사무실에 복귀했다. 그때까지 언니는 출근하지 않았다. 편집국장은 계속 창밖만 보며 참담한 얼굴로 담배만 피웠다. 언니는 그 후로 계속 출근을 하지 않았다. 아니하지 못했다. 나는 언니를 그 후로 볼 수 없었다. 언니는 잠을 자던 도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오렌지색 가로등 불빛이 수면을 방해했던 그 조용하고 어두운 집에서 혼자 삶을 마감했다.
2월 흐린 날이면 나는 향숙 언니가 떠오른다. 살아있다면 올해로 쉰 살이 된 향숙 언니. 까마득한 시간이다. 언니가 20대를 보낸 이문동의 어느 자취방은 지금은 자취조차 없을 것이다. 언니가 떠나간 시간을 떠올릴 때면, 나는 내가 그 집을 정말 가긴 갔던 걸까…….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 집이 정말 있긴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