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에스더의 집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의 집에 간 적은 많았다. 방송국에서 근무하면서 촬영이나 인터뷰 차원에서 집을 방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의 ‘집’은 나와 연관이 있는 누군가의 삶터, 숨결이 생생히 배어있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촬영 대상으로서의 오브제에 가까웠다. 카메라를 여기저기 배치해놓고 촬영하기에 넉넉한 공간이 허락된 집, 채광이 좋은 집, 걸쳐서 찍을 예쁜 소품이 있는 집, 인테리어 잡지에 소개되는 집처럼 깔끔함과 여유, 산뜻함이 있는 집들이 었다.
인터뷰어들은 자신의 집에서 찍자고 하면 대부분 꺼린다.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선뜻 보여주기 꺼려지는 것이다. 이해한다. 아마 나라 해도 그럴 것이다.
많은 집을 다녔다. 그러나 그 많은 집들 중, 내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경우는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생각나는 집도 있다.
2013년 나는 이주민이나 이주노동자의 삶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었다. 1주일에 1회 방송되는 분량을 찍기 위해 참으로 다양하고 많은 장소를 다녔다.
필리핀 결혼이주민 에스더의 집도 그 집 중 하나였다. 사전 인터뷰를 하기 위해 내가 집에 찾아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에스더는 흔쾌히 승낙했다. 에스더의 집은 그 도시의 변두리에 있었다. 어떤 집에는 빨간 깃발이 달린 장대들이 꽂혀있었다. 그곳은 무속인들이 사는 집이라고 예전에 누군가 알려줬던 기억이 났다.
에스더가 알려준 집 주소를 찾아갔다. 근처에 주차를 해놓고 비탈진 길을 걸어올라야 했다. 나는 그 지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오고 퍽 오래 살았음에도 그 동네에 처음 왔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에스더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둔 12월 중순이었다. 밟으면 끼익 소리를 내는 갈색 마루가 있는 단독주택이었는데, 마룻장은 차가웠고 외풍이 심했다. 나는 외투를 벗을 수가 없었다. 에스더는 털이 복슬복슬한 실내화를 건네주었다. 한눈에 봐도 낡은 집이었다. 거실 한쪽 소파에는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다. 필리핀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성대한 축제다. 달 이름 이 ‘~ber’로 끝나는 달부터, 즉 9월(September)부터 크리스마스 준비를 시작한다고 했다.
에스더와 나는 방으로 들어가 전기장판 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스더는 한국말을 띄엄띄엄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건넸다. 에스더가 필리핀에서 살았던 꿈 많았던 20대에 한 남자를 사랑했다. 둘은 무척 사랑했지만 결혼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남자의 집이 부자였는데 가난한 집의 딸인 에스더를 남자 측 부모님이 반대했다는 거다. 내가 놀랐던 것은 그 남자의 부모가 에스더를 만나, 돈이 들어있는 하얀 종이봉투를 건네며 그만 헤어지라고 했단다. (한국 막장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얼마면 돼?’ 상황이 필리핀에서도 실제 일어났다는데 깜짝 놀랐다) 그때 에스더는 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 에스더는 그 남자와 헤어지고 혼자 아이를 낳았다. 딸아이였다. 그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사우디아라비아로 일하러 떠났단다. 에스더는 돈을 버는 대로 엄마에게 부쳤다. 딸을 제대로 안아보지도 키워보지도 못한 채, 에스더는 타향에서 돈을 벌며 자신의 인생에 다시는 결혼도, 연애도, 남자도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단다. 오로지 딸만을 위해 살 거라고.
그러던 중 에스더는 우연히 한 한국 남자를 만나게 됐다. 지금의 남편이다. 남편 김경묵 씨는 에스더를 열렬히 좋아했다. 싫다고 거절하는 에스더에게 손짓 발짓해가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고 마침내 구혼까지 했다고 한다.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에스더는 경묵 씨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 후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에스더는 남편에게 자신의 딸 이야기를 했다. 끝내 비밀로 부친 채, 필리핀에 사는 엄마의 딸로 남겨놓을 수도 있었지만 에스더는 용서를 구하고 진실을 얘기했다. 경묵 씨는 오랜 고민 끝에 본가의 부모님에게도 알리고 딸을 한국으로 데려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당시 딸, 쥴리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되는 나이였다. 낯선 환경 낯선 문화에 온 쥴리는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고, 적응되지 않는 한국의 추운 날씨 탓에 이를 딱딱거리며 떨어야 했다.
나는 촬영 일정을 잡았다. 다행히 경묵 씨와 쥴리, 그리고 남편의 본가 부모님께서도 모두 적극 협조해주었다. 에스더는 크리스마스트리 옆에 앉아서 인터뷰를 했고, 한국말을 더듬거리며 구사하다가 북받치는 울음을 몇 번이나 삼켜야 했다. 나는 에스더에게 혹시 시골에 있는 경묵 씨의 본가 촬영이 가능한지 물었고, 다행히 경묵 씨의 어머님도 흔쾌히 승낙했다. 에스더와 쥴리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개가 컹컹 짖었다. 시골집에서 나온 경묵 씨의 어머니는 버선발로 나오며 두 모녀를 끌어안았다.
“추우니까 얼른 들어가자.”
안방 아랫목에 둘을 앉힌 다음, 그들에게 솜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쥴리의 손을 잡고 손등을 어루만졌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방인이겠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쥴리를 딸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이상, 당신의 손녀라고 생각하신 듯했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의 가슴까지 뜨끈하고 훈훈해졌던 것은 그 시골집의 뜨거운 아랫목 훈김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촬영 마지막 날, 에스더 집에서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렸다. 근처에 사는 필리핀 결혼이주민들이 고향 음식을 만들어왔다. 그들은 정말 흥겹게 놀았다. 너무 썰렁해서 외투를 벗을 수 없을 정도로 추웠던 그 집은 흥겨운 필리핀 음악소리와 웃음소리, 맥주 거품 같은 환호성, 이국적인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 냄새 같은 것들로 가득 찼다.
세속적인 판단 기준으로 보면 에스더의 집은 과히 좋은 곳은 못되었다. 교통편이나 교육시설, 주변 환경을 보아도 그곳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꺼리는 주거환경이었다.
하지만 에스더는 자신의 집이 너무 좋다고 했다. 높은 곳에 위치해서 전망이 좋고, 뒤에 산이 있어서 공기가 맑다고 했다. 시장을 가려면 좀 걸어야 하지만 일부러 산책 겸 다녀올 수 있으니 잘되었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기준과 가치가 있듯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그보다 더 복잡다단한 집들이 있다. 집이 집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사회, 집이 사는(LIVE) 곳이 아닌 사는(BUY) 곳으로 소비되는 모습들을 볼 때면 나는 에스더의 집을 떠올린다. 아울러 시골 개가 컹컹 짖던, 절절 끓던 아랫목이 있던 에스더 시댁도.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면 더욱 생각나는 집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