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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a Mar 22. 2021

김말순 여사의 장례식 -17-

애주야로 총요당귀

새해를 맞이하면 꼭 하는 일이 있다. 신통한 점집을 수소문해서 한 해의 운세를 점친다. 반은 재미로, 반은 진심으로 하는 일인데 꽤 오랫동안 꾸준히 해오던 일이다. 비 오는 날을 미리 알면 우산을 준비할 수 있듯 무슨 일이든 대비하면 좋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대부분의 점집은 그럴듯하게 나의 과거에 대해 잘 맞추었고, 그들이 말해주는 미래의 한 자락을 붙잡고 상상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었다.

마침 친구 하나가 신내림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당을 알아놨다 하여 예약을 진행했다. 너무 용해서 예약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에 기대가 되었다.


무당은 예상했던 것보다 아주 젊었다. 차를 타고 꼬박 두 시간을 운전해서 찾아간 곳은 K시의 외곽 지역이었다. 입구에는 커다란 서낭당이 자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쌓여있는 돌무더기와 신목에 칭칭 감긴 오색 천을 보자 내가 정말 점집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자리에 앉자 이름도 생년월일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는데 무당이 혼자 줄줄 읊었다.


- 나이가 올해 서른 셋, 이전에도 이후에도 결혼과 인연이 없네. 전혀 없어. 평생을 외롭게 살 팔자지만 알아서 인연을 구하려고 노력을 하는군.

남편은 보이지 않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 할 동반자는 여럿 보이네. 어머니보단 아버지와 정이 더 깊고, 하나뿐인 동생과는 전혀 친하지 않고.

어렸을 때 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네. 돈을 아주 좋아하고, 사무직 보다는 돌아다니는 일을 할 팔자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독교와 깊은 인연을 맺지만 결국 본인은 불교에 귀의하는구나.


모두 맞았다. 흥미진진해진 나는 가까이 다가 앉았다. 무당은 눈을 감고 중얼중얼 하더니 오색 깃발을 돌려서 그 중 하나를 뽑으라고 했다. 마음가는 대로 뽑자 무당이 대뜸 말했다.


- 올해 회사를 결국 그만 두겠군. 이미 작년에 그만 두었을 수도 있어. 서서히 글 쓰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겠어. 오랫동안 바라왔던 만큼 가치가 있을 거야.


작년 말쯤 난 정말로 회사를 그만 두었다. 모든 것이 지긋지긋 했다. 고정수입이 없어진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내게도 나 자신을 돌아보며 쉴 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과감히 결단을 내린 일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정말 신통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글 쓰는 일을 좋아했다. 처음 써본 동화는 초등학교 4학년 때로, 쌍둥이 남매가 수호신과 함께 세상을 도우며 초능력을 발휘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난 이대로 계속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될 수 있는지 연구하며 진로까지 국문학과로 정해놓았다.


그 달콤한 꿈은 엄마가 내가 써놓은 글을 발견하고 갈기갈기 찢으며 산산조각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내가 천재라고 생각한 엄마는 오로지 내가 공부에만 전념하길 바랐다. 글을 쓰는 일은 어떠한 밥벌이도 되지 않는다는 잔소리와 함께.


 아빠의 꿈이 본래 소설가였다는 사실은 세월이 많이 흐른 후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래도 난 꾸준히 엄마의 눈을 피해 시간이 있을 때마다 짧고 긴 글을 써갔다. 글 쓰는 일은 쉽고 재미있었다. 나만의 공상 속에서 영원한 상상력을 펼치는 시간은 유일한 나의 힐링이었다.


그 후 경영학과로 진학했으나 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국문학과를 복수전공한 나는, 취업준비 때 왜 복수전공을 경영학도들이 흔히 하는 경제학이나 심리학과가 아닌 국문학으로 했냐는 면접관들의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글 쓰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진 않지만, 혹시 모르니 습작이라도 미리 많이 써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당은 또 깃발을 뽑게 하였다


- 올해는 새로운 인연이 있네. 이번 인연은 상처가 크지 않을 거야. 인연을 만나는 것이 어렵게 타고난 팔자인데 본인이 계속해서 노력을 하고 있군. 빠르면 여름, 늦으면 가을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거야. 아주 깊은 사랑일 수도 있고, 깊은 우정일 수도 있어.


신기하게도 무당들은 나의 성향을 눈치채치 못해도 항상 정확하게 짚는다. 깊은 사랑과 깊은 우정 사이라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 외 가족의 건강, 나의 재물운 등등 약 한 시간 가량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빠가 가슴앓이를 많이 하여 심장쪽을 체크해 보아야 한다, 엄마는 관절이 좋지 않을 것이다, 나는 폐 쪽을 조심하라 등등 아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를 주었다. 나는 군데군데 메모를 하며 가족들에게 잘 전달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무당은 한 번만 더 봐주겠다며 깃발을 다시 고르게 했다. 내가 고른 깃발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무당은 이전과 달리 느릿느릿 말했다.


- 집안의 큰 분이 돌아가셨네. 그리 오래 전은 아니지만 그래도 슬픔이 어느정도 걷힐 정도는 되었어.


벌써 일 년 전의 일이다. 할머니 장례식을 치른 지. 그 후로 친척들과는 별 교류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무당은 얼굴을 찡그리더니 눈을 감고 중얼중얼 무엇인가를 읊었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흰자위에 시퍼런 빛이 감돌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무당은 이전과 달리 날카로운 목소리로 공기를 찢었다.


- 어허, 이 분께서 하늘의 명을 받아 가신 게 아니구나. 원래대로라면 좀 더 사셨어야 맞는것을. 누군가가 강제로 명을 꺾었구나! 


순간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으며 등줄기에 싸늘한 무엇인가가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까지 무당이 한 말 중 이미 실현된 부분은 모두 맞았다. 가슴이 미칠 듯이 두근거렸다.


문득 아빠가 장례식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막걸리를 먹고 싶어했던 할머니가 그렇게 쉽게 돌아가셨을 리가 없다고. 부검을 해야 한다고 난리를 쳤던 아빠의 행동이 떠올랐다. 당시엔 갑자기 어머니를 잃은 아들의 치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아빠의 날카로운 촉이 발동을 한 것일수도 있었다. 그 때 가족 중 누구 한명이라도 아빠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더라면.


나는 홀린 듯 무당의 입만 바라보았다. 무당은 손에 쥔 깃발뭉치를 흔들며 온통 중얼중얼 대더니 말했다.


- 명을 꺾은 자는 언젠가 대가를 치를 것이고. 하지만 그 분은 자신을 해친 자를 전혀 원망하지 않는구만. 꺾은 이유가 있어. 어디 보자....


이미 무덤에 계신 할머니를 다시 꺼내서 추가 부검이라도 해야 하는지 고민되었다. 1년이 지나면 시체에서 온전한 부분은 얼마나 남는 것인가.


지금에 와서 무덤을 파헤치고 부검을 해서 범인을 색출해내면 뭐가 달라지는 것인가. 이쯤되면 나도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려웠다. 선무당의 헛소리일수도 있지만 그렇게 치기엔 이미 이 무당이 한 시간 동안 내게 말해준 것들이 너무도 현실과 일치했기에,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무당의 이야기에 너무도 믿음이 갔다.


- 전달을 위해 명을 꺾은 것이네. 그 분도 원했던 일인게야. 그래, 내가 그 분의 말씀을 직접 전해주지.


무당은 자세를 가다듬더니 갑자기 어린 학생의 목소리를 흉내내었다. 흉내낸다기 보다는 원래부터 그녀가 그런 목소리였던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무당의 목에서 흘러나온 음성은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막내 작은아버지의 자살했던 딸.

워낙에 목소리 자체에 애교가 많이 섞여 있어서 한 번 들은 사람은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목소리.

그녀는 민아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온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 17편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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