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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a Mar 22. 2021

김말순 여사의 장례식 -18-

베리타세룸 세 방울

또르르, 신호가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내 작은아버지가 전화를 받았을 때 난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망설였다.

그를 만나야 하는지도 고민이 되었지만, 전화로는 못할 이야기였다. 문자로는 더더욱 말하지 못할 이야기여서 만나서 이야기 하는게 맞는 일이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잘 전달할 것이라는 확신도 들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마주해야 하는 진실이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아빠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아빠는 효자였고 형제보단 어머니를 택할 것이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바로 경찰에 신고할 것이다.

그랬다간 이 증거도 정황도 없는, 오로지 무당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로 생사람을 잡는 내가 얼마나 우스워지겠는가. 최악의 경우 나를 정신병원에 집어넣을 수도 있었다.


- 그,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나는 이 그가 근무하고 있는 건물까지 찾아갔다. 우리는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빈말로 저녁 때 오면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기겁을 했다. 그저 커피 마실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막내 작은아버지는 잘 지내냐는 상투적인 인사를 건네고  흘끗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무시간이어서 아마 바쁠 것이다. 보통 대표는 시간 단위로 스케줄이 짜여 있으니. 길게 시간을 뺏을 생각은 나 또한 없었다.

이렇게 단둘이 만나기에는 우린 친하지도 않고 굉장히 어색한 사이였.


나는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쏟아내듯 빠른 속도로 이야기 했다. 나는 말을 돌려서 하는 방법을 모른다.

하지만 무당을 만났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기독교 집안 사람신점이나 보러 다닌다는 소리를 하면 그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며칠 전 할머니가 꿈에 나왔다, 고 시작한 나의 이야기는 할머니가 민아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어서 날 찾아왔다는 것으로 시작했다. 사람게는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종교도 없으니 할머니를 이해해 줄 것 같아서 굳이 내 꿈 속으로 왔다는 사족까지 곁들었다.


중간중간 막내 작은아버지의 눈치를 보았으나 그는 아무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동안 일말의 교류도 없었던 전혀 친하지 않은 조카가 갑자기 만나자고 하며 자신의 죽은 어머니와 큰 딸까지 건드리고 있어서 화를 낼 법한데도 그는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그냥 그래야만 해서 죽은 거라고, 어떠한 경우에도 아버지의 잘못은 없다고. 죽음이 곧 자신의 의지고 목표였다고. 자신은 오직 죽기 위해서 긴 세월을 버텨왔던 거라고.


그 허무한 답변이 한 때 막내네의 모든 가족원이 미치도록 답을 구하고 싶었던 민아의 죽은 이유였다. 무당의 입을 빌어 직접 들었던 그 이야기를 막내 작은아버지에게 전하며 난 내 자신이 자꾸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 무당이 용하긴 했지만, 내가 굳이 이렇게 당사자에게 전할 만한 이야기인가 라는 의문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래도 말해야만 했다. 전하지 않으면 하늘의 뜻을 어기는 듯한 착각이 자꾸만 일었기에.


그리고 나는 중요한 대목을 꺼냈다.


- 할머니가 더 사실 수 있었는데, 명을 끊어낸 사람이 있다고 해요. 하지만 그 사람을 원망하지는 않는대요. 오히려 할머니가 민아의 이야기를 듣고 전해 줄 기회를 만들어 줘서 안...심이 된다고 해요.


안심을 말하다가 삑사리가 났는데 누구도 웃지 않았다.

막내 작은아버지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도 굳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전달자에 불과했으니.

그의 눈 속 깊숙이 동공이 조금 확장되었다가 축소되었다가, 그저 그런 움직임을 응시했다.


천천히 작은아버지의 눈이 시뻘개지더니 눈물이 고였다. 너무 당황스럽게도. 나는 그의 눈물을 못본 척 하고 싶었지만 이내 넘칠 듯 고인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서 휴지를 내밀었다. 휴지를 받았으나 그는 눈물을 닦는 대신 잔뜩 움켜쥐고 한숨 쉬듯 말을 내뱉었다.


- 내가, 어머니 귀에 속삭였어. 이대로 죽게 되면 제발 민아를 만나서 그 애에게 물어 라고.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 건지 제발 좀 물어봐 달라고.


그는 휴지를 꼭 쥔 채 어린 아이처럼 어깨를 떨면서 울었다. 할머니 장례식 때도 말 없이 고요히 눈물만 흘릴 뿐, 이렇게 감정을 모두 드러내며 울진 않았던 그였다. 


그의 말이 내게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기에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당신이 죽였다고?당신의 어머니를 그런 하찮은 이유로 죽였다고?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세상을 배울 만큼 배운 당신이 그런 이유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나를 앞에 둔 채 그는 엉엉 소리내며 울기 시작했다.


카페 안의 사람들이 우리를 흘깃흘깃 바라보았다. 시선을 둘 데 없는 젊은 여자와 소리내어 통곡하는 나이 든 남자, 어떠한 연유에도 같이 있는 게 이상해 보이는 계의 이데아. 그리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그는 내가 진실을 토하게 하는 약물이라도 먹인 양 모든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속삭임이 끝나고 베개로 할머니의 얼굴을 눌렀을 때 그녀는 한 치의 반항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는 듯이 가셨다. 한참 후 정신이 들어 황급히 베개를 떼어냈을 때 그녀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까지 띄고 계셨다. 


누구든 사건을 눈치채면 자수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패륜을 스스로도 믿기 힘들었다. 신은 그저 오랫동안 큰 딸이 왜 그랬는지 끊임없이 답을 찾고 있었고 이 모든 일에 너무 지쳤을 뿐이었다고. 정말로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고.


그의 믿기 힘든 이야기가 끝나자 나는 무당이 마지막으로 해준 말을 덧붙였다.


- 막내야. 내가 어미된 도리로서 내 자식들에게 살아 생전 크게 해준 것이 없어 항상 미안했다. 죽기 전에 네 바람 한 가지는 들어주고 싶었다. 사랑한다.


그는 목놓아 오열했다. 뒤늦은 후회와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 그의 목덜미를 조여오고 있었다.


-18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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