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의 흥행이 지역의 브랜딩으로 확대된다는 것
고성의 미스터리 초콜릿 방앗간, 보나테라
"보나테라." 차량 뒷좌석에 앉아있던 엄마가 갑자기 입을 연다. "초콜릿 공장이래. 표지판 있네." 의례적으로 떠난 여름휴가. 인구 5만 명의 아주 작은 마을, 고성. 그 순간 도로를 떠돌던 우리의 목적지가 정해졌다.
"내비게이션 맞나? 이러다가 북한 가겠는데." 핸들을 잡은 아빠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확실히 초콜릿 공장이 있을 것 같진 않다. 길가에 네다섯 명의 할머니들이 대야에 앉아 나물을 뜯고 있다. 그 순간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음이 나온다. 우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보라테라다. 고성지역 초중학교 동창모임회 옆에 상당히 이질적인 초콜릿 공장이 있다.
그전까지 내가 아는 거라곤 '찰리와 초콜릿 공장' 뿐이었다. 괴짜들만 초콜릿을 만들 수 있는 걸까? 윌리 웡카도 괴상한 단발머리를 한 초콜릿 회사 대표인데, 이곳 보나테라 대표도 그에 버금가는 희한한 사람인 것 같다. 여기 누가 온다고 공장과 가게를 차렸나?
1층엔 아무도 없다. 도토리 같은 카카오만 수북이 쌓여있다. 커다란 기계도 몇 대 있다.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간다. 사람 소리가 들린다. 카페다. 와! 윌리 웡카의 공장에 들어간 찰리처럼 탄성을 내뱉었다. 평일 오후인데도 손님들이 많다. 우리처럼 휴가 온 가족부터 커플, 홀로 커피를 즐기는 사람까지. 절대 우연찮게 들릴 순 없는 곳이다. '대충 저기나 가볼까'라는 나태한 마음은 안된다. 모두 확실한 의지로 이곳에 온 것이다.
그래도 아직 이해할 순 없다. 여기가 뭐라고? 난 키오스크로 대표 메뉴를 몇 개 시킨다. 나의 선정은 틀린 적이 없지. 엄마에게 테이크 아웃으로 시켰으니 받아달라고 말한다. 난 화장실에 간다. 5분 뒤 엄마가 화를 내며 따라온다. 왜 이상한 걸 시켰냐고 화낸다. 난 부랴부랴 나온다. 이런. 내가 시킨 '다크초코라틀'은 오로지 매장에서만 먹을 수 있는 대표 메뉴였다. 그럴 수밖에 없겠다. 도자기 컵 한가운데 양초를 넣어, 걸쭉한 다크 초콜릿을 맛보게 되어있다. 난 머리를 긁적거린다.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매장에서 빨리 먹고 나가야지.
매장에 앉아 티스푼으로 초콜릿을 한 스푼 떠먹는다. 눈이 번쩍 뜨인다. 뭐지. 왜 피로가 풀리지? 엄마에게 호들갑을 떤다. 그녀도 시큰둥한 표정으로 초콜릿을 떠먹는다. 똑같은 표정이 된다. 우린 같이 호들갑을 떤다. 재밌다. 원산지 보르네오 85%의 카카오 초콜릿을 먹었는데, 1시간 동안 노천온천에서 몸을 푼 기분이 든다. 맛있으면서 해로운 게 아니라, 맛있으면서 개운하다. 발효, 슈퍼푸드, 72시간… 다양한 문구들이 매장에 쓰여있지만, 몸으로 느끼는 효과가 최고다. 괴짜 같다는 말을 취소한다.
왜 하필 이런 곳에?
산과 바다, 맑은 계곡과 적당한 바람, 양호한 사계절 온도 차이. 다크 초콜릿 제조 공정에서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의 가장 적합한 장소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상업적 측면으로는 최고의 험지이지만, 다크 초콜릿 품질의 완성도에서는 단연 으뜸이라는 확신을 갖고 동해 최북단에 보나테라 제조장을 설립했습니다.
- 보나테라 홈페이지 中
남들이 오지 않는 오지에 깃발을 꽂는다. 우리 지역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카페 진정성'이라는 밀크티 가게다. 김포 하성면에 있는 것이 '본점'이고 서울 현대백화점 본점에 있는 것이 '분점'이다. (현재는 현대백화점 지점을 정리하고, 여의도·논현점을 포함한 6개 지점을 운영 중이다.)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나와 지역 친구들은 크게 당황했다. "사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게 아니라, 태양이 지구를 도는 거랍니다!" 수준의 충격이다. 난 여태까지 우리 동네가 중심인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김정온 대표는 조용하고 차분하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뛰놀 수 있는 넓은 카페를 원했다. 건물 안쪽에서는 부모님이 차를 마시고, 유리 밖 마당에선 어린이들이 숲과 함께 하는 곳. 이를 위해선 상당히 넓은 부지가 필요했고, 당시 김포 외곽의 폐업한 식당터가 눈에 띈 것이다. 초반엔 찾아온 손님들이 "이런 데서 어떻게 장사를 하냐"라고 했지만, 지금은 밀크티로 가장 유명한 김포 대표 카페가 되었다. 현재는 이외에도 다양한 대형 카페들이 개성 있는 인테리어를 뽐내고 있다.
지역에 색깔을 더한다는 것
'이러다 땅값 오르면 옮기겠지. 우연히 괜찮은 가게들이 나타났을 뿐.' 난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기초의원이었던 아빠는 의외의 요소에서 눈을 반짝거렸다. 그는 보나테라를 다녀온 뒤 말했다. "표지판이 인상 깊어." 표지판? "시에서 보나테라를 제법 홍보해주는 것 같더라고. 우리도 시에서 표시해준 이정표를 보고 온 거잖아." 그랬지.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행정이 가게의 콘텐츠를 도시의 콘텐츠로 만들고 있다. 그곳을 알림으로써 자연히 고성의 좋은 공기, 맑은 계곡, 적당한 바람, 완만한 사계절 온도 차이를 알리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강원도 고성을 국내 최초의 ‘초콜릿 도시’로 지역민과 함께 디자인하고 이런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강원도 최고의 관광 콘텐츠로 육성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더불어 지역 인재 육성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도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 보나테라 홈페이지 中
강원도 고성을 국내 최초의 '초콜릿 도시'로 스토리텔링 하겠다는 말이 인상 깊다. 기업과 행정이 같은 곳을 바라볼 때 그것은 곧 지역의 콘텐츠가 된다. 단순히 가게의 흥행으로 끝나느냐, 지역의 브랜딩으로 이어지느냐. 영세업자의 흥행은 결코 지역의 부흥과 무관하지 않다. 우동투어버스가 다니는 우동마을 다카마쓰, 레몬 마을 포지타노, 와인마을 쉬린제 등. 우연으로 넘기지 않고 행정이 주목할 때 그것은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 그리고 곧 지역의 정체성이 된다. 막을 수 없는 젠트리피케이션, 어쩌면 몰개성적 자본논리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확실한 개성이 있는 지역의 정체성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