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에 살고 있는 300여 명의 사할린 어르신들에 대하여
"내 마음은 호수요. 내 마음은, 호수. 자꾸 혼돈됩니다."
- 김포 사할린 한글교실 수업 中
김포엔 300여 명의 사할린 동포분들이 살고 있다. 일흔, 여든이 다 된 이분들은 2세대 동포들이다. 일본에 의해 가라후토(사할린)에 강제징용된 1세대 부모들은 대부분이 돌아가셨다. 3세대, 4세대 후손들은 대부분 러시아에서 살고 있다. 한국말도 잘 하지 못 한다. 증조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향이 한국임을 더듬을 뿐이다.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는 사할린 2세대 동포. 그 중 옥자 할머니가 있다. 아버지가 김포 사할린 지원사업을 추진하면서 알게 된 것이 벌써 10년이 지났다. 매번 아버지와 통화 끝에 내 안부를 물으신다. 딸은 잘 있습니까? 예. 잘 있죠. 언제 한 번 사할린을 같이 가보면 참 좋겠습니다. 묘하게 섞인 러시아 억양과 딱딱한 어투. 하지만 그 안엔 틀림없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할머니는 내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명절이 되면 사할린 고향마을은 텅텅 빈다. 물론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우리는 대개 자식들이 부모를 만나러 가지만, 이들은 부모가 자식을 만나러 간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비행기로 약 370km 거리에 있는 유주노사할린스크시로 날아간다.
1996년에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영주귀국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기엔 조건이 붙었다.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린 조선인들을 무 자르듯 잘라버렸다. 이 때문에 귀국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았다.
2021년 사할린 동포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일부 개정되었다. 배우자와 자녀 1명까지 지원 확대되었다. 그러나 사할린에 있는 4세대 손주들을 생각하면, 이조차도 쉽지 않다. 위로도, 아래로도 단절 상태다. 징용사태 이후 100여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한 번 갈라진 빙판은 눈 깜짝하면 건너지 못 할 만큼 멀어진다.
우린 명절이 되면 안산 고향마을로 향한다. 몇년 전 이사하신 옥자 할머니께 쌀, 주전부리 등을 드리러 간다. 빈 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다. 항상 처음 보는 러시아 과자들을 한 보따리 건네신다. 할머니 마음은 어딜 가나 똑같다.
집에 와서 과자를 한 입 베어문다. 이가 아릴 정도로 달다.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 먹으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맛이다. 할머니의 마음과도 같다. 은근하지도 희미하지도 않고, 무한히 퍼주는 단 맛이다. 사할린의 뼈를 얼게 만드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선, 이 정도의 강렬한 마음이 필요하리라.
그 투박한 목소리에서 우리 외할머니가 보인다. 미역귀다리도 있고, 정구지도 담가놓을테니 한번 내려오니라. 보여주려는 마음 속엔 보고싶은 마음이 있다. 뉴스에선 오늘도 러시아 전쟁에 대한 얘기가 들린다. 내일은 8월 24일. 러시아 전쟁이 터진지 벌써 6개월이 되었단다. 전쟁은 전쟁으로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