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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누리 Sep 22. 2022

PT 선생님은 정치인을 아냐고 물었다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


선거 때니까, 몇개월 된 얘기다.

이 때 아니면 누가 정치 얘기를 꺼내려고 하겠는가.


안지 한 달밖에 안 된 트레이너와 단둘이 1:1 PT샵에서 쉬는 시간을 보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음악도 정적을 메꾸지 못한다. 고릴라랑 같이 있는 게 이보단 낫겠다.

(지금은 아니다. 선생님이랑 친하다. 진짜진짜.)


PT 선생님은 창문 밖을 멍하니 보더니, 내게 물었다.


"저 선거 현수막 중에 아는 후보 있어요?"


나도 뒤를 돌아보았다. 당연히 다 알죠. 다 아버지랑 일하던 분들인데요.

라는 말을 삼키고, "어. 글쎄요." 라고 했다. 미주알고주알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당연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하나도 모르겠어요. 보세요. 저 옆에 '기호 5번, 정누리' 붙어있어도 아무도 모를 걸요? 회원님이 당선될 걸요?"


하하하. 웃었다.


"사실 저 어릴 때 친구 중에 아버지가 시의원이었던 애가 있거든요. 생각보다 별 거 안 해요. 정치인들이 돈 버는 게 제일 쉬운 것 같아."


하하하하. 또 웃는다. 속으론 땀을 삐질 흘린다. 선생님. 당신 눈 앞에 있는 회원이 그 친구같은 사람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한다. 그때 "저희 아빠도 정치인이에요."라고 말하면 어땠을까?


아마 선생님은 당황하면서 스쿼트 들어가자고 하겠지. 그런 경우를 몇 번 겪었다. 내 앞에서 정치인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아버지 직업을 알게 되면 "너희 아빠는 다르겠지."라고 뜬금없이 위로(!)를 해준다. 이상하다.


 쌉싸름한 녹차를 마시다 달콤한 싸구려 왕사탕을 먹는 기분이다. 난 몸에도 좋고 머리도 맑게 해주는 녹차가 좋은데. 약이 될 비판은 사라지고 시끄럽게 바스락거리는 사탕 포장지만 남는다. 정치인들을 옹호하는건 아니지만, 그들에겐 정작 가까이서 손가락질해줄 청렴한 시민이 없다. 처음 보는 사람 얼굴에 대고 쓴소리하는 게 쉽겠는가. 그러나 시민과 정치인의 거리는 아직도 너무나 멀다.


 문득 영화 음악을 만드는 중년 선생님의 한탄이 생각난다. "이 나이 되면 솔직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 다 괜찮대. 경력이 저주야,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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