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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May 21. 2021

나 자리 잡았어

대학 살사들 이야기, 큰 목소리

직장에서 '자리 잡았다'는 어떤 의미인가?

우리 대학에서 자리잡기는 쉽지 않다. 학생, 교수, 직원이 자리 잡는 간은 서로 다르다.


학생은 입학하는 순간에 자리를 잡는 것처럼 보지만 신입생은 이방인이다. 강의실을 기본으로, 각종 행사장을 쫓아다니고, 농활과 동아리 활동에 빠짐없이 참가하면서 영역을 넓혀가지만, 여전히 신입은 신입이다. 캠퍼스를 이리저리 누비고, 선배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는가 싶은데, 곧 후배가 생긴다. 이때가 바로 학생이 자리를 잡는 시점이다. 대학에서 살아가는 학생으로서 필요한 자리는 선배와 후배의 사이를 잇고 있는 바로 그 자리다. 자리 잡는데 1년이 걸리는 셈이다.


교수가 자리를 잡는 시점은 부교수로 임용되는 시기다. 우리나라 교수 중 많은 수는 외국대학 근무경력을 가지고 있다. 국내 학사과정을 마치고, 석사는 우리나라와 외국 대학 중 선택을 한다. 해외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2년 정도의 조교수 생활을 하면, 국내 대학으로 돌아올 기회가 생긴다. 우리 대학은 전직 2년에 현직 2년을 더하여 4년의 조교수 경력이면 부교수 승진 기회를 부여한다. 부교수가 되면, 대학에서는 주요 보직을 맡을 자격을 갖게 되고, 발언권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운영에 참여하게 되고, 자신의 자리를 잡게 된다. 자리 잡는데 빠르게는 2년이 걸린다. (물론 학문적 성과는 기본이다)


우리 대학의 신입직원은 주임이 되기까지 12년 정도가 필요하다. 그 후 10년을 보내면 팀장, 다시 5 과장 자리에 오를 기회가 온다. 피라미드 형태의 계급구조 속에서,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이 기회를 잡게 되면, 독립 사무실이 생기고 공식적인 권한도 갖게 된다. 자리를 잡는데 필요한 시간은 27다. (요즈음 이 기간이 베이비 부머들이 한꺼번에 퇴직하는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이후엔 더 길어질 것 같다)


나에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주체적 역할을 다하며 산다'는 의미. 졸업과 정년이 있는 우리 대학에서, 어림잡아 학생은 4년 중 3년, 교수는 30년 중 28년, 직원은 30년 중 3년 정도의 기간 동안 주체적인 목소리를 크게 내며 살아갈 수 있다.


주체적 큰 목소리는 나태해지려는 대학을 끊임없이 일깨우고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다.


아쉽게도 30년 중 28년은 너무나 길고, 30년 중 3년은 너무도 짧다. 기울어진 밸런스가, 때론 너무 길어 나태해서, 때로는 너무 짧아 아쉬워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목소리 '나만 위한 목소리'꾸어 리기도 한다.


대학에 구조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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