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봉투 들고 나들이
대학 살사들 이야기, 뒤집어 볼까나?
딩동댕~ 사무실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시작된다. 오늘은 자연보호의 날입니다. 각 부서에서는 필수인력을 제외하고, 1층 현관에 있는 장비를 챙겨서 자연보호 활동에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책상 밑에 놓아두었던 운동화로 갈아 신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사무실을 나왔다. 1층 로비에서는 이미 몇몇 직원들이 까만 봉투와 막대 집게를 하나씩 받아 들고, 현관문을 나서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있는 초가을의 맑은 날씨다. 자~ 나가볼까?
캠퍼스의 이 곳 저곳을 누빌 수 있는 기회다. 우선, 보여줄 수량을 채우기 위해 으슥한 곳을 찾는다. 강의동 출입구 주변과 벤치가 있는 나무 그늘 아래에는 여지없이 담배꽁초가 수두룩하다. 빠른 동작으로 집게질을 해서 까만 봉투에 담는다. 종이컵과 빈 깡통 몇 개를 더 채우는 데에는 10분이면 족하다. 까만 봉투가 부풀러 오른다.
무야호~ 이제부턴 나들이 시간이다.
보고서 제출기한에 쫓겨, 사무실 의자에 바람 빠진 모습으로 축 쳐져있던 나에게 '까만 봉투 나들이'는 그야말로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햇살도 좋고, 공기도 시원하고, 얘기 나눌 사람이 옆에 있으니, 정해진 1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언제부터인가 사라졌지만, 오래전 우리 대학 캠퍼스에는 이런 자연보호 행사가 있었다. 단 10분간의 집게질로도 주변은 훨씬 깨끗해졌고, 50분간의 나들이가, 쳇 바퀴도는 생활에 시들해진 우리에게, 일탈의 즐거움과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주었다. 50분 일하고 10분을 쉬는 것은 학교 다닐 때도, 일을 할 때도 암묵적으로 지켜지는 규칙이다. 한 번의 뒤바꿈이 주는 신선함은, 규칙을 깨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바꾸어 생각하고 뒤집어서 해보는 것이, 때로는 문제를 풀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평범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약간의 변화도 삶에 활력을 준다. 코로나로 답답한 오늘, 하루의 피로를 말끔하게 날려주던 '그 나들이'가 다시 그리워진다.
어제 했던 일 말고, 오늘 하는 일 말고, 새로운 일 하나를 지금 시작해야겠다.
자~ 내 생각을 한번, 뒤집어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