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반의 미덕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by 구론산바몬드

1987년 여름에 개봉한 영화 <Back To the Future 1> 마지막 장면에 미래에서 돌아온 브라운 박사가 등장한다. 박사는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를 차에 집어넣어 연료로 사용한다. 당시엔 꿈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전문가가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바이오에너지를 주목하고 있는 걸 보면 역시 시대를 앞서가는 영화적 상상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음식물 쓰레기는 줄어들게 되는 것일까. 그보다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과연 음식물 쓰레기는 없어져야 하는 것일까.


집 떠나 대학을 다니던 시절, 무던히도 배가 고팠다. 이삼일 굶는 것은 일상이고 보름여까지 굶은 적도 많았으니 나의 생존 능력은 가히 탁월하다. 노가다와 갖가지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은 학비와 생활비를 위해 아껴야 했다. 독서실 월세-당시 나는 독서실에 살았다-와 책값 등 필수적인 지출은 감내해야 했지만 그 외의 지출은 일체 없앴다. 특히 식비는 사치품목이었다. 살기 위해 먹어야 했지만 먹기 위해 돈을 쓸 수는 없었다.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했다. 친구들과 선배들에게 조금만 비굴해지면 밥 한 끼 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었다. 서울깍쟁이, 인천 짠돌이도 가끔은 나를 위해 밥값을 지불했다. 생각해 보면 무던히도 많은 사람들에게 밥을 얻어먹었다. 나의 주머니 사정을 알 리 없는 후배가 밥이라도 사 달라고 안겨들 때면 죽이고 싶었다. 그래서 후배들을 피해 다녔고 지금도 딱히 떠오르는 후배가 없다.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후배가 있었다면 나는 기꺼이 독재자의 편에 섰을 것이다. 후배들을 향해 아낌없이 화염병을 던졌을 것이다.


저녁에는 대학가 술집을 다녔다. 어둠이 내리고 술꾼들이 거나하게 한 잔 할 시간이 되면 아무 술집이고 들어갔다. 반드시 아는 이가 있을 거란 믿음은 어김이 없었다. 누군가를 찾는 양 두리번거리는 척하고 있으면 동석하라고 권하는 놈들이 있었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앉아 공짜술과 안주를 먹었다. 반드시 모임이 끝나기 전에 먼저 자리를 뜨는 것이 나의 핵심 전략이라고 할까. 다만 너무 남용하면 입소문이 난다는 단점이 있었다.


대학 구내에는 신기하게도 200원짜리 라면이 있었다. 인건비와 재료비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모자란 가격이었지만 전통이라 그 가격을 고수한다 했다. 나 같은 학생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배고플 때면 라면 한 그릇으로 하루를 버텼다. 참으로 많이 먹었다. 영양보다는 염분이 더 많은 음식이었지만 그래도 먹고 나면 배는 불렀다. 단돈 200원도 없을 때면 라면 코너 옆 자율 배식하는 단무지를 먹었다. 일하시는 분들 눈을 피해 단무지만을 먹었다. 배부를 때까지 먹었다. 어제도 먹고 오늘도 먹었다. 단무지를 많이 먹으면 정말 얼굴이 노래진다. 혀도 노랗고 침도 노랗고 오줌은 싯노랗다. 공짜 단무지도 단점이 있었다. 한 달 여 단무지만 먹다 보면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는 시점이 온다. 소설 <노란 손수건>을 내가 싫어하는 이유다.


손쉽게 그것도 맛있게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방법은 또 있었다.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교수 연구실이 줄지어 있는 복도에는 가끔 문 앞에 짜장면 그릇이 놓여 있었다. 몇 가닥의 면발이 남은 그릇이라도 발견하면 지나가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후다닥 면을 빨았다. 행복했다. 군만두를 자주 남기는 국어교육과의 모 교수님을 나는 누구보다도 존경한다. 교수의 역량은 역시 학식이 아니라 소식이다.


2022년 1월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국내에서 하루에 배출되는 식품 관련 쓰레기는 2만 톤이 넘는다고 한다. 온 국민이 하루 400g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꼴이라 한다. 장 지글러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5초에 한 명씩 기아로 죽어가는 현실을 토로한 것과 비교하면 버려진 음식물은 쓰레기가 아니라 죄악에 가깝다. 하지만 가끔은 음식을 남기는 것도 미덕이 된다. 배고픈 누군가에겐 일용할 양식이 된다. 물론 음식 남기는 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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