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뭘 하고 살아야 할까?

by 유정

장기간 여행을 다녀왔더니 이제는 가고 싶은 곳이 전혀 없어서 그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집에 가만히 앉아 생각을 많이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난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잘못했는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등등.. 하고 싶었던 일을 했을 뿐인데 4년을 아주 힘들게 보냈고, 29살에 퇴사하여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 엄마가 가라고 했던 교대를 갈 걸 그랬어. 다시 수능을 봐볼까? 아님 남들 많이 하는 공무원? 아님 그냥 재취업? 아… 공부는 이제 아닌 것 같고, 회사는 죽어도 다시 가기 싫은데… 공무원도 싫어. 어떡하지.. 뭘 해야 할까…’


이미 나이는 충분히 먹을 만큼 먹었고, 회사에서 하던 일은 그 업계에서 나름 알아주던 일이었는데 박차고 나왔고, 그간의 커리어와 연결되지 않는 무언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내 20대를 통째로 버리는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30살이 코앞인데 다시 원점에서부터 진로 고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까지 내 인생은 항상 대학, 취업 등 항상 목표가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이 명확히 있었는데, 오히려 그것을 모두 이룬 다음 - 완벽하게 길을 잃었다. 인생은 많이 남았는데, 전혀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주변에 상담을 하거나 조언을 요청해 보면,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회사가 다 그렇지 뭐~ 그냥 취직해서 영혼 빼놓고 다녀. 다른 사람들 다 그렇게 살아.”라는 답변이 돌아왔는데, 나는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직장을 ‘그냥’ 다닐 수 없었다. 내 인생은 ‘내가 사용 가능한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만족도가 달라지는데,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는 직장을 그냥 다닌다고? 아무 데나? 60살까지?? 오… 난 그건 정말 용납할 수 없었다. 그건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대부분 회사의 업무시간은 오전 9시 - 오후 6시. 하지만 그 9시에서 6시까지 일하기 위한 준비시간, 통근시간, 다음날 근무를 위해 쉬는 시간도 ‘직장 때문에 소비하는 내 시간’이다. 예를 들면 직장인이 7시에 일어나서 1시간 준비 후 1시간 통근을 하고, 퇴근 후 한 시간 걸려 집에 와서는 너무 피곤해 3시간 동안 TV 보는 것 밖에 못하는 생활을 반복한다면? 그 사람은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자기의 하루 대부분을 회사 때문에 쓴 것이다. 6시에 퇴근해서 그다음 자기 생활을 하면 되지 않냐고? 회사 다녀본 사람 대부분은 알 것이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빨리 퇴근해도 밥 먹고 나면 8시이고 그 이후 할 수 있는 일들은 정해져 있다. 퇴근 후의 시간은 어찌나 빨리 가는지,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리고 직장을 다니기 위해 소비하는 비용, 직장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쓰는 돈, 남들 쉴 때 같이 쉬는 죄(?)로 더 비싸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사실 만만치 않다. 출근이 아니면 사지 않았을 옷, 커피값, 밥값, 스트레스 풀려고 마시는 술, 직업병으로 생긴 무언가를 치료하기 위해 드는 비용, 주말과 연휴에만 더 비싼 숙박료, 항공료 등. 모두 직업으로 인해 드는 비용 아닌가?


그래서 나는,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 열정을 쏟을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답은 하나였다. 나를 좀 더 잘 파악할 것. ‘이 전에는 그냥 남들이 하라는 대로 점수에 맞춰 대학교와 학과를 선택했고 그냥 멋있고 재미있어 보이는 직업을 선택했다면, 이제는 정말 나한테 맞는 일을 선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걸어온 일이 나랑 안 맞는다면, 과감히 버린다. 앞으로 더 나은 인생을 위해…’ 그게 내가 내린 답이었다.


나 자신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나는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것만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 직업은 적당한 성취감과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 나는 일만 하고 살면 불행한 사람이다. 내 취미생활과 자유, 그리고 휴식이 일과 적절히 어우러져야 행복할 수 있다.


2. 앞으로 내 직업은 다음의 3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일만 한다.

1) 기존 회사보다 더 많은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일

2) 기존 회사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

3) 하면 할수록 내 실력과 커리어가 쌓여, 회사가 없어도 내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일.


요약하자면 기존 회사보다 더 적은 시간 일해서 더 많은 수입을 얻고, 하면 할수록 내 가치가 올라가는 일을 하고 싶었다. 예전에는 내 꿈만 생각하고 모든 것을 희생하였지만, 이제는 꿈을 믿지 않으니 최대한 현실적으로 변했고, 직업과 내 삶을 분리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갖게 된 퇴사 후 첫 직업은 프리랜서 영어 강사다. 무슨 일을 하든지 우선 영어공부는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영어회화 스터디 그룹의 리더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멤버들이 어린이 영어 교육회사의 강사로 나를 추천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수입이 끊긴 지 6개월이 넘었는데 앞으로도 아무 계획이 없어 슬슬 불안해지던 찰나에 하루 2시간만 일해도 되고, 스케줄을 자유롭게 조절하며 시간당 페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3가지 조건에 아주 잘 부합했다. 강의를 하면 할수록 나의 강의 스킬은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 일을 할수록 시간당 페이도 늘어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선 어린이 영어 강사 활동을 하며 백수생활을 좀 더 안정적으로 영위하게 된다. 하루에 3-4시간만 일하면 월 120만 원-170만 원 정도의 수입이 생겼으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나머지 시간에는 회사 다니며 못 읽었던 책을 읽고, 진로 고민을 하고,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났다.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일이라 재미없으면 안 되고, 짧은 시간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할 만했다. 내가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러면서 꾸준히 영어회화 모임에 나갔다. 영어공부도 하면서, 또래 다른 직장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해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회사 다니는 4년 동안, “아~사람들이 이래서 다단계에 빠지면 못 나오는구나. 바깥과 단절되고 동일한 성향의 사람들만 모인 집단에 갇혀있으면 정상적인 사고를 못하게 되는구나.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배도 안 고프고 모든 욕구가 없어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상과 단절하고 일만 하며 살았으니 바깥 생각이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어회화 모임 공간에 붙어있던 어떤 작은 안내문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안내문은 이후의 내 인생을 상상도 못 했던 방향으로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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