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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에 장애인이 한 명이라도 온다면

Equity in Sport (1)

by 축축박사

"축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장애 인식은 개선되어야 한다."

연합뉴스 설하은 기자 (2023.06.06)


2023년 수원FC와 울산의 경기, 당시 울산의 감독이었던 홍명보 감독의 인터뷰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축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저런 게 발전이 안 되고 있다. 인권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데, 축구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좀 더 개선되어야 한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울산의 팬이 수원FC 원정 응원을 왔는데 원정석 장애인석을 이용하지 못하고 경기를 제대로 관람하기 어려운 경기장 트랙의 임시구역으로 안내받으며 생긴 홈 구단과 팬의 실랑이를 목격하고 한 인터뷰였습니다.


대부분의 K리그 경기장은 장애인 친화적이지 않습니다. K리그만의 문제는 아니고 다른 스포츠와 문화시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휠체어석은 운영하지만(일부 월드컵경기장은 매우 높은 휠체어석 접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휠체어 이용자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동선상의 문제(계단, 턱 등)도 있고 더 큰 문제는 경기장에서 그들을 위한 동선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규모가 크고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경기장의 특성상 비장애인도 익숙하지 않으면 길을 찾기 어려운 경기장에서 교통약자들은 아무 정보 없이 내가 갈 수 있는 길을, 그리고 내 좌석을 찾아가야 합니다. (2020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 디자인거버넌스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의 교통약자 안내표시 개선 사업을 진행한 적 있습니다. 서울시가 이런 건 참 잘하죠.)

서울 디자인거버넌스에서 진행한 서울월드컵경기장 유니버설 Wayfinding 서비스




K리그의 모두의 축구장, 모두의 K리그


2020년,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가 활발해지고 배리어프리(Barrier-Free)가 여러 영역으로 확산되던 시기 K리그도 이동약자의 경기장 접근성 향상을 위한 '모두의 축구장, 모두의 K리그'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시설을 직접 개선하는 건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았고 충분한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터라, 이동약자가 경기장을 방문할 때 필요한 정보를 방문 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의 문턱을 낮추는 것에 집중했었죠. 2020년부터 2023년까지 K리그 25개 전 경기장을 실제 휠체어 이용자와 방문하고 이용해 보며 이동약자 안내지도를 제작했습니다. (해당 지도는 아래 링크를 통해 파일로 볼 수 있고 map.kleague.com 에서 온라인으로도 이용이 가능하다.)

K리그와 하나금융그룹,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제작한 K리그 경기장 이동약자 안내 지도





그래서 장애인이 K리그를 몇 명이나 봐요?


캠페인을 진행하며 내가 가장 많이 요구받은 결과물은 '이용자'였습니다. "그래서 몇 명의 장애인이 K리그를 봤느냐" 또는 "캠페인 후에 장애인의 K리그 관람이 몇 명이나 늘었느냐"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받았습니다. 4년간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실제로 휠체어 이용자를 비롯한 이동약자의 K리그 경기 관람이 늘었느냐라고 묻는다면 솔직하게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아직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휠체어 이용자들이 경기장까지 오려면 아직도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대중교통 등의 기본적인 이동권도 아직 개선이 되어가는 중이고, 주로 도심 외곽에 자리하고 있는 경기장은 접근하기 더 쉽지 않습니다.


캠페인의 기획부터 지금까지 나는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는 몇 명이나 이 정보를 활용했고, 그래서 몇 명이나 장애인 팬의 관람이 늘었는지 같은 경제적 효율성이 아니라 인권과 형평성 대한 문제입니다. 누군가가 어떤 장소에 방문하기 위해 어떤 정보를, 어떤 시설을 필요로 했을 때 그 자리에 그 정보가, 시설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이동권과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이런 문화를 아예 향유할 수조차 없습니다. 이용자의 수가 적다고 해서 불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현장에서 축구를 경험하고 함께 응원하며 느끼는 설렘과 감동은 K리그를 사랑하는 팬 모두가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꼭 해야 되나요? 예, 꼭 해야 됩니다.


하지만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얼마 전 한 구단 직원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본인도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몇십 개의 휠체어석을 채우는 건 매번 5~6명뿐이라 별도의 예산을 투입해서 시설을 개선하는 건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장애인석의 경우 복도에 있어 접근성이 용이하고 시야가 확보되도록 좌석 구역의 가장 앞이나 뒤에 위치하다 보니 이를 프리미엄 좌석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구단도 있습니다.


하지만, 배리어프리는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과 사회적 포용을 위한 인프라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장애인 주차장을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배치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불편함을 느끼고 불평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그 공간이 보장되어 있지 않으면 아예 접근조차 불가능한 곳이 됩니다. 좋은 사회란 이런 배려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사회이며, 사회적 인프라와 문화가 이를 뒷받침해야 합니다.


2024시즌 K리그1으로 승격한 FC안양은 교통약자를 고려하여 가변석을 설치했다. K리그1으로 승격한 FC안양은 교통약자를 고려하여 가변석을 설치했다.




혼자 생활할 때는 이러한 어려움을 쉽게 체감하지 못합니다. 저는 아이를 키우고 나서야 유아차를 이용하면서 크고 작은 불편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휠체어를 사용해야 한다면 그 어려움은 훨씬 클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나 자신도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전체 인구 중 상당수가 교통약자에 포함되며 나 자신, 내 자녀, 혹은 내 부모가 언제든지 같은 어려움에 처할 수 있습니다.(2023년 기준 우리나라 교통약자 비율은 총인구 대비 약 31%입니다.) 배리어 프리는 특정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곳이 되길 바랍니다. K리그 경기장도 점차 그 문턱을 낮춰, 더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K리그의 '모두의 축구장, 모두의 K리그'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vPNHQkiul7Vj0mPGV-k7lE02f3M.jpg 휠체어 전용 가변좌석을 운영하고 있는 강원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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