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uity in Spo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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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분데스리가(독일프로축구리그)를 좋아합니다. 따로 서포팅하는 구단이 있지는 않지만, 리그 자체가 좋습니다. 분데스리가에는 낭만이 있습니다. 구단 지분의 51% 이상을 반드시 팬이 소유해야 한다는 50+1 규정은 분데스리가의 낭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규정입니다. 이는 구단이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외부 투자자의 전유물이 되는 것을 방지하며, 팬이 구단의 주인으로서 구단 운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지요. 합리적인 이적료 지출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분데스리가에서는 상대적으로 과도한 금액의 선수 영입이 없습니다.), 프리미어리그와 비교했을 때 훨씬 낮은 티켓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규정 때문입니다. 외부 자본 유입이 어려워 리그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우려가 간혹 나오지만, 독일 팬들과 구단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돈을 좇지 않는 프로스포츠라니 역설적이지만 제게는 너무나 낭만적으로 다가옵니다.
장애인의 접근성 개선, 분데스리가의 Reise Führer
당연하게도 분데스리가는 사회공헌도 잘하는 리그 중 하나입니다. 그중 오늘 한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분데스리가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Reise Führer(직역 : 여행 가이드)" 캠페인입니다.
https://www.bundesliga-reisefuehrer.de/
분데스리가는 장애인이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각 경기장의 장애인 좌석 위치, 장애인 출입구, 장애인 화장실 등의 정보를 상세히 안내하고 있고, 시각장애인을 위해 웹사이트에서 경기장 관련 정보를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적 장애가 있거나 독해 능력이 낮은 팬을 위해 쉬운 언어로 된 정보 페이지도 별도로 제공합니다.
경기장 인프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각장애인 팬을 위해 안내견 동반이 가능하고 경기 해설을 들을 수 있는 헤드셋이 있는 특별좌석이 경기장마다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헤드셋을 통해 경기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는 별도의 전문 해설자가 실시간으로 경기 상황을 전달합니다. 그리고 구단에서 이 모든 걸 관리하는 장애인 담당 직원이 별도로 존재합니다. 이들은 다양한 장애를 가진 팬들이 경기장 안팎에서 문제없이 분데스리가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프리미어리그도 비슷합니다. 황희찬 선수가 뛰고 있는 울버햄튼에서 2023년 방한을 추진했을 때, 한국으로 관람 올 울버햄튼의 장애인 팬들을 위해 울버햄튼의 장애인 담당관이 한국 내에서 어떻게 이동하고 관람할 수 있는지 국내 관련 단체에 문의해오기도 했습니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은 분데스리가를 볼 때면 너무 부럽습니다. 아직 가장 기본적인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에 대한 장애인 이동권을 논의하고 개선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데스리가도 하루아침에 이런 인프라가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유럽축구의 장애인 인프라 개선도 투쟁의 역사입니다. 유럽 축구리그는 워낙 팬이 많다 보니 다양한 장애인 팬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분데스리가가 있기까지는 장애인 팬 단체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항의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분데스리가 시각장애인 관람 지원의 시작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999년 10월 15일 레버쿠젠과 울름 경기에서 레버쿠젠 구단이 처음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 해설 라이브를 시작합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계기로 조금씩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 해설이 확산되긴 했지만, 2015년 리그 차원에서 시각장애인 오디오 해설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기까지 1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국제대회에서는 독일에서 개최된 유로2024에 이르러서야 전 경기 오디오 해설이 운영됩니다. 분데스리가의 시각장애인 관람을 위한 인프라는 무려 20년의 시간 동안 조금씩 개선되어 완성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있었거나 갑자기 어느 시점에 짠하고 생겨난 게 아닙니다.
결과물만 보는 우리들은 그렇게 되기까지 있었던 과정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그들도 여기까지 오기까지는 수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력이 있었을 겁니다. 결코, 쉽게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사회도 지금 변화의 문턱 앞에 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개선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고, 대중교통이 개선되면(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요구는 식당, 카페, 그리고 극장, 영화관, 스포츠시설 등 문화시설로 자연히 이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변화는 많은 이들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비용과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변화를 위해서는 옳은 방향으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올해 K리그는 장애인의 경기장 접근성을 높이는 캠페인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우리의 캠페인이 조금이나마 사회에 전달되는 목소리가 되어 조금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한 걸음 가까워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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