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responsibility in Sport (7)
스포츠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스포츠 단체에서 가장 우선하는 분야는 바로 '건강'입니다. 스포츠 활동 자체가 건강을 증진시키고 질병을 예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해당 스포츠 종목의 특성을 살린 참여형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되지만, 특정 질병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캠페인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앞서 소개한 NFL(미국 미식축구리그)의 유방암 인식 확산 캠페인 'Crucial Catch'가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유방암처럼 여성에게 많이 발생하는 질병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늘은 남성 질병에 대한 인식을 높인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NFL의 Crucial Catch 관련 지난 글 보기 : https://brunch.co.kr/@assist/28
도르트문트의 A Handball that could save your life
2022년 여름, 분데스리가(독일프로축구리그)의 도르트문트(Borussia Dortmund)는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스트라이커 세바스티앙 알레(Sébastien Haller)를 영입합니다. 직전 시즌까지 활약했던 엘링 홀란드(Erling Haaland)가 맨체스터 시티로 떠나면서 생긴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영입이었습니다. 알레의 이적료는 약 3,100만 유로(한화 약 486억 원)로, 도르트문트 역사상 두 번째로 비싼 금액이었습니다. (도르트문트의 가장 비싼 영입은 2016년, 우스만 뎀벨레(Ousmane Dembélé)를 3,500만 유로에 영입한 사례입니다. 현재 뎀벨레는 PSG에서 활약 중입니다.)
하지만 이적 몇 주 만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집니다. 알레의 고환에서 종양이 발견된 것이죠. 고환암 진단을 받은 알레는 수술을 받기 위해 구단을 잠시 떠나게 됩니다. 그 시기 분데스리가에서는 고환암이 큰 이슈가 되는데요, 알레를 포함해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선수 4명이 6개월 사이에 고환암으로 필드를 떠나게 되어 팬들과 리그 전체에 큰 충격을 주죠. 당시 우니온 베를린(Union Berlin) 소속의 티모 바움가르틀(Timo Baumgartl), 헤르타 베를린(Hertha Berlin) 소속의 마르코 리히터(Marco Richter)와 장 폴 뵈티우스(Jean-Paul Boetius)도 비슷한 시기에 고환암 확진 판정을 받습니다.
큰 기대와 함께 거액을 주고 영입한 알레를 비롯하여 분데스리가 내의 동시 다발적인 고환암 소식에 도르트문트는 한 가지 특별한 캠페인을 기획합니다. 바로 'A Handball that could save your life(너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핸드볼)' 캠페인입니다. 남성들은 축구장에서 'Ball(축구공)'에 열광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몸에 있는 'Ball(고환)'에는 큰 신경을 기울이지 않죠. 독일에서는 매년 약 4,000명의 남성이 고환암 진단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고환암의 경우는 조기 진단 및 치료를 한다면 완치율이 매우 높은 병이지만, 여성들의 유방암 검진이 이제는 비교적 일상화되어 있는 반면에, 남성들은 생식기의 암이다 보니 이상을 확인하거나 비뇨기과 검진을 받는 것을 여전히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에 도르트문트는 알레와 함께 고환암의 조기 검진의 중요성을 알리고 인식 개선을 위한 퍼포먼스를 준비합니다.
센터서클 위의 메시지
도르트문트는 남성 팬들로 가득한 홈구장인 지그날 이두나 파크(Signal Iduna Park)에서 깜짝 퍼포먼스를 진행합니다. 이 이벤트는 2월 4일, 도르트문트와 프라이부르크의 홈경기로 이 날은 세계 암의 날이며, 반년 간 암 투병을 마친 알레가 고환암을 이겨내고 처음 선발로 복귀한 경기이기도 했습니다. 더없이 상징적인 날이었죠. 경기 시작 전, 도르트문트 경기장의 센터서클에는 커다란 혹이 함께 그려졌습니다. 이는 동그란 고환의 종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시각적으로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죠. 이 장면은 팬들의 SNS 공유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고, 다양한 언론 매체들이 이를 보도하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프타임, 궁금증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무렵 도르트문트는 그 이유를 공개합니다. 전광판을 통해 알레가 등장한 영상을 송출하며 "남성들은 정기적으로 고환암 자가 검진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이후 비뇨기과 전문의들이 경기장에 등장해 인터뷰를 진행하며 방송 중계를 통해 고환암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손(Hand)을 이용한 자가 검진의 중요성과 '손으로 하는 검사(Handball)'가 당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있다는 슬로건도 함께요. 그리고 그날 알레는 'F*CK CANCER'라는 문구가 새겨진 축구화를 신고 뛰며 도르트문트에서의 첫 번째 득점을 기록, 도르트문트를 승리로 이끌며 이 캠페인의 화룡점정을 찍었습니다.
퍼포먼스와 메시지, 그리고 실제 경기 결과까지 더해져 캠페인은 강력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런 캠페인의 임팩트는 실질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었는데, 실제로 이 캠페인 직후 도르트문트에서는 비뇨기과 진료 예약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여러 프로스포츠 종목과 구단에서 다양한 건강 관련 캠페인을 하지만, 소속 구단 선수의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기획된 이 캠페인은 그만큼 더 진정성이 느껴지고 기억에 남습니다. 스포츠에서의 CSR은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겠지만, 도르트문트의 사례처럼 구단이 처한 상황이나 어려움을 사회 문제와 창의적으로 연결 지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캠페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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